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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06 (토)

    국민 北억류 사실 모르는 李대통령… 미국은 온 내각이 발 벗고 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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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국민 최소 6명 억류, 생사 조차 확인 안 돼

    가족들 “살아있다는 소식만이라도” 호소

    정부, 남북관계 경색 우려… 억류 문제 장기화

    美는 고위급 방북하고 前대통령 특사로도 활용

    野의원 “억류자 외면하면 어떤 대북 정책도 정당성無”

    조선일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18년 5월 워싱턴 DC 인근 앤드루스 공군 기지로 마중을 나가 북한에서 풀려난 김학송(왼쪽에서 세번째) 선교사와 악수를 하고 있다. 김 선교사 왼쪽은 함께 풀려난 김동철 목사, 오른쪽은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다. /EPA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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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명 대통령은 3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진행한 외신 기자회견에서 북한에 억류 중인 우리 국민 10명에 대한 대책을 묻는 NK뉴스 기자 질문에 “처음 듣는 얘기”라고 했다. 이어 “한국 국민이 잡혀있다는 게 맞느냐” “언제, 어떤 경위냐 한번 얘기해 보시라”며 안보 수장인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에 마이크를 넘겼다. 위 실장 역시 “들어가서 못 나오고 있거나 알려지지 않은 다른 경위로 붙들려 있는 경우가 많다” “시점은 파악해 봐야겠다”고 말을 흐렸다. 이는 미국 등 다른 나라가 지도자의 끊임없는 석방 요구, 고위 인사들의 방북(訪北) 끝에 자국민 송환을 이뤄낸 것과는 대조적으로 국내에서 북한 억류자 문제가 어떤 위상으로 다뤄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다.

    현재 북한에는 최소 6명의 우리 국민이 억류돼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국에서 강제 북송(北送)된 탈북민까지 고려하면 그 수를 헤아리기 어렵다. “북한 당국이 인도주의적 입장에서 생사(生死)라도 확인해달라”는 억류자 가족과 유엔 등 국제 사회 요구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2023년 10월 기준 선교사 3명(김정욱·김국기·최춘길)과 탈북민 3명(고현철·김원호·함진우) 등 우리 국민이 최소 6명 억류돼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북·중 접경 지역인 중국 단둥에서 탈북민 쉼터, 국수 공장을 운영하며 대북 인도적 지원에 힘써온 김정욱(62) 선교사는 2013년 평양에서 보위부 요원들에 체포돼 북한 당국에 억류된 지 꼬박 12년이 됐다. 김씨의 친형인 김정삼 기현정밀 대표는 본지에 “2019년 건강이 안 좋다는 얘기를 들은 후 전혀 동생 소식을 접하지 못하고 기도로 버티고 있다”고 했다.

    북한은 억류 중인 우리 국민에 대해 수년째 생사 여부 조차 함구하고 있다. 변호권, 영사 접견권, 통신·서신 교환의 권리 등 국제법이 보장하는 가장 기본적인 인권도 보장받지 못한 채 구금돼 있는 상태다. 2014년 단둥에서 선교 활동을 하다 체포된 김국기 목사의 배우자 김희순씨는 지난 2023년 3월 자필 편지로 “살아계신다는 소식만이라도 확인이 됐으면 좋겠다”고 했지만 아무 대답이 돌아오지 않았다고 한다. 앰네스티 같은 국제 인권 단체들이 우리 정부에 “북한 억류자 생사·소재 확인을 위해 노력해 달라”고 촉구하는 일이 다반사였지만, 남북관계 경색을 우려한 한국의 진보 정부는 북한과의 양자 대화나 유엔 같은 다자(多者) 무대에서 이 문제를 언급하는 것을 꺼려왔다. 2023년 8월 한·미·일 정상이 합의한 ‘캠프 데이비드’ 성명에 ‘억류자 및 미송환 국군포로 문제의 즉각적 해결을 위한 3국 공조’가 명시됐고, 한때 통일부가 장관 직속 전담팀도 꾸렸지만 현재는 동력을 잃은 상태다.

    미국의 경우 대통령, 국무장관 등 최고위급이 나서서 억류자 문제를 푸는 데 앞장섰다. 필요하면 빌 클린턴(2009년), 지미 카터(2010년) 전 대통령 등도 ‘특사’ 역할을 마다하지 않았다. 가장 최근에는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미·북 정상회담 개최를 한 달 앞둔 2018년 5월 평양에 들어가 한국계 미국인인 김동철·김상덕·김학송씨를 데려왔다. 당시 새벽 2시가 넘은 시간에 워싱턴 DC 인근 앤드루스 공군기지에 내린 이들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멜라니아 여사 부부가 직접 맞았다. 북한의 고문을 받고 혼수상태로 풀려났다가 숨진 미국인 대학생 고(故) 오토 웜비어도 조셉 윤 당시 미 대북정책 특별대표의 협상 끝에 2017년 6월 자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2014년 11월에는 제임스 클래퍼 당시 미 국가정보국(DNI) 국장이 비밀 협상을 벌여 한국계 미국인 케네스 배, 6·25 전쟁 참전용사인 매슈 토드 밀러 등이 고국(미국)으로 돌아왔다. 캐나다 역시 2017년 8월 대니얼 장 당시 국가안보보좌관이 방북해 2년 넘게 억류돼 있던 한국계 임현수 목사를 송환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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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이 추수감사절 연휴를 맞아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에 억류됐던 미국·이스라엘계 인질들과 그 가족을 초청한 모습. /X(옛 트위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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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이 억류된 자국민 송환에 얼마나 진심인지는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에 억류됐던 미국·이스라엘계 인질을 구출하는 과정을 봐도 알 수 있다. 트럼프는 취임 후 자신의 첫째 사위인 재러드 쿠슈너와 룸메이트였던 기업인 애덤 볼러를 ‘인질 문제 담당 대통령 특사(SPEHA)’로 지명, 카타르 도하 등에서 하마스와 직접 접촉해 인질 구출 협상을 진행하도록 권한을 위임했다. 미국이 하마스와 직접 접촉한 것은 1997년 하마스를 테러 조직으로 지정한 이후 처음이라 맹방인 이스라엘의 강력한 항의가 있었지만 이를 관철해 미국인 인질을 구출해냈다. 트럼프는 지난 10월 하마스의 10·7 테러 2주년을 맞아 억류됐다 풀려난 에단 알렉산더와 만났고, 지난달 추수감사절 연휴를 맞아서는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이 인질과 가족을 초청해 만남을 가진 사실을 인증하기도 했다.

    북한이 2023년 7월 공동경비구역(JSA) 견학 중 돌연 월북한 주한미군 병사 트래비스 킹을 70여 일 만에 돌려보내는 등 미 국적 억류자들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유연한 모습을 보인 것은 사실이다. 다만 한국인 억류자 문제의 경우 정부의 무관심 속 장기간 방치되면서 생사 조차 확인이 어려운 상황이다.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을 지낸 김건 국민의힘 의원은 “대한민국 대통령에게 국민의 생명과 안전보다 더 중요한 것이 어디 있냐”며 “선진국이라면 이런 상황을 최우선 과제로 다룬다. 북한에 억류된 국민을 외면하는 정부는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얻을 수 없으며, 어떤 대북 정책도 정당성을 가질 수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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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백형선


    [워싱턴=김은중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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