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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12월 13일 서울 워커힐호텔에서 개최된 제5차 남북고위급회담/사진제공=통일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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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입장은 나라의 분열이 영구 고착되는 것을 막고 통일을 실현하려는 염원으로부터 하나의 국가로 유엔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1991년 북한은 남한의 유엔 단독 가입을 이처럼 반대했다. 당시 우리 정부는 반대 논리로 '쌍방 국호 사용'을 강력히 주장했다.
그로부터 34년이 흐른 지금 북한은 남북관계를 적대적 두 국가로 공언하고 있고, 한국은 통일을 포기할 수 없다며 반박하는 '역설적 상황'을 맞았다.
최종적으로 남한은 '대한민국', 북한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란 국호를 명기하기로 했다. 이는 같은 해 12월13일 체결된 '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 즉 남북기본합의서에 담겼다.
통일부는 2일 이 같은 내용이 담긴 총 3172쪽 분량의 '제7차 남북회담 문서'를 공개했다. 1990년 9월부터 1992년 9월까지 여덟 차례에 걸친 남북고위급 회담의 내용이 담겼다. 이 기간 남북 간에는 △남북고위급회담 8회 △고위급회담 준비 실무대표접촉 2회 △유엔 가입 문제 관련 실무대표 접촉 3회 등이 이뤄졌다.
남북은 이 시기에 유엔 가입 문제와 불가침, 핵문제 협의를 놓고 회담을 진행했다. 1990년 9월 서울에서 열린 1차 남북고위급회담에서 양측은 각자의 입장 차이만을 확인한 채 성과를 내지 못했다. 남한은 상호 체제 인정과 교류·협력, 그리고 정치·군사적 신뢰 구축의 병행을 주장했지만, 북한은 하나의 조선 정책과 정치·군사 문제의 우선 해결 입장을 고수했다.
1990년 11월 9일 판문점에서 이뤄진 유엔가입문제 관련 제3차 실무대표접촉/사진제공=통일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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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해 9월부터 11월까지 판문점에서 유엔 가입 문제와 관련한 실무대표의 접촉도 이뤄졌다. 북한은 당초 남북 단일 의석의 공동 가입을 주장했다. 남한은 단일 의석 가입은 유엔 헌장에 위배된다고 반박했다. 이어지는 접촉과정에서도 북한은 '하나의 조선'을 고수했으며 남한은 동시에 가입하되 '통일을 지향하는 특수관계'를 강조했다. 양측의 주장은 계속해서 엇갈렸고, 세 차례 접촉 모두 합의 없이 끝났다.
당시 남한은 유엔 가입 문제가 남북고위급회담을 가능케 한 주요 원인 중 하나라고 봤다. 이어진 회담 끝에 1991년 남북은 유엔에 동시 가입했다. 더욱이 단일의석 공동가입을 주장한 북한은 남한이 먼저 가입할 것을 우려해 한 달 먼저 가입신청을 하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남북은 화해와 불가침조약, 핵과 화학무기 제거까지 논의했다. '사료집 회의록편 5권'에 따르면 1991년 11월11일 5차 고위급회담 준비를 위한 실무대표 접촉에서 북한은 "화학무기 제거에 쌍수들고 환영한다"며 "남조선에 있는 미국 핵무기를 비롯 대량살육무기 제거도 염두에 둔 것이냐"고 물었다. 같은 해 12월13일 5차 고위급회담에서 북한은 "핵 문제는 쌍방이 마주 앉아 진지한 협의를 통해서 해결해야 한다. 핵무기를 두고서 우리 겨레가 하루도 편안하게 살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 시기에 이어진 남북회담은 1991년 12월13일 '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교류·협력' 전문과 25개 조항으로 구성된 '남북기본합의서' 채택이라는 결과를 도출했다. 이와 함께 한반도에서 핵무기가 없어야 한다는 인식을 공유하는 '핵문제 합의'도 이뤄냈다.
24일 북한 핵무기연구소 관계자들이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를 위한 폭파 작업을 했다. 3번 갱도 폭파순간 흙과 돌무더기가 무너져 내리고 있다.(사진공동취재단) 2018.5.25/뉴스1 /사진=사진공동취재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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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남북 간 회담은 1992년 9월 제8차 남북 고위급 회담을 끝으로 중단됐다. 북한은 공식적으로는 팀스피리트(1976년부터 1993년까지 한반도에서 실시된 한미 연합 군사 훈련)를 문제 삼아 회담을 거부했지만, 내부적으로는 유엔 가입 문제와 불가침 협정 체결 등 자신들의 주요 목적을 이미 달성했기 때문에 회담을 이어가지 않은 것으로 분석된다
김웅희 전 통일부 남북회담본부장은 "북한은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면 남북회담을 중단하고 그랬다. 남북기본합의서를 통해 불가침 협정이 체결되니 회담에 더는 미련을 가지지 않은 것 같다"고 설명했다.
한편 북한의 '핵문제 합의'도 일종의 기만행위였던 것으로 풀이된다. 김 전 본부장은 "당시 북한의 비핵화 의지는 진정이 없다고 평가된다"며 "북한이 비핵화 진정성으로 나왔다기보다 국제적 핵사찰의 압박을 피하고 지연전술을 펴기 위한 차원에서 남북회담에 나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덧붙였다.
조성준 기자 develop6@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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