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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24 (수)

    이슈 미술의 세계

    '라그나로크' 다울 작가 "저보다 나혼렙 많이 본 사람 없을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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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혼렙' 스핀오프 웹소설 집필…"완벽하게 짜인 세계에서 다음 이야기 쓴 셈"

    단행본 빼곡히 인덱스 붙이며 연구…"홀린 듯 쓰다 보니 장성락 3주기에 완결"

    (서울=연합뉴스) 김경윤 기자 = 웹소설·웹툰 업계에서 가장 성공한 작품을 꼽으라고 하면 '나 혼자만 레벨업'(이하 나혼렙)을 빼놓을 수 없다.

    글로벌 누적 조회수 143억회를 기록한 대작이자 미국, 일본, 프랑스 등 세계 각국에 팬들이 있다. 게임과 애니메이션으로도 만들어져 성공을 거뒀고, 곧 넷플릭스 시리즈로 실사화된다.

    이처럼 엄청난 성과를 거둔 작품의 세계관을 그대로 이어받는 공식 스핀오프(파생작)를 쓰라는 제안을 받는다면 어떨까. 그야말로 '독이 든 성배'를 받아 든 것과도 같을 것이다.

    연합뉴스

    웹소설 '나 혼자만 레벨업 : 라그나로크'
    [카카오페이지 갈무리. 재판매 및 DB 금지]


    '나혼렙'의 스핀오프 '나 혼자만 레벨업 : 라그나로크'(이하 라그나로크)를 쓴 다울 작가는 16일 연합뉴스와 인터뷰하며 "잘해도 본전, 못하면 전 세계적으로 욕을 들을 일이었다. 나중에는 누군가가 '독이 든 독배'라고까지 하더라"고 집필을 제안받던 무렵을 돌아봤다.

    그렇지만 다울 작가는 그 위험한 잔을 받아들였다.

    그는 "제가 20대 땐 미술만 했고, 30대에는 소설만 썼다"며 "제 다음 인생 계획을 세우던 시기에 이 제안을 받았고, 30대를 마무리하기에 황송한 피날레라고 생각해 수락했다"고 말했다.

    물론 쉽지는 않았다. 나혼렙 웹소설 원작자인 추공이 이미 243화에 걸친 본편과 외전, 후일담을 통해 완성한 세계관 위에서 새롭게 이야기를 펼쳐야 했기 때문이다.

    다울 작가는 "작가는 하나의 이야기가 다 끝날 때 완결을 짓는다"며 "완벽하게 짜인 '나혼렙'이라는 하나의 세계가 있었고, 거기서 제가 더 보탤 것이 없었다"고 당시의 고민을 털어놨다.

    '나혼렙'의 세계관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본편 주인공 성진우의 아들 성수호 이야기를 풀어가기 위해 노력했다고 한다. '나혼렙'의 모든 것을 숙지하기 위해 특히 공을 들였다.

    다울의 작업실에는 빼곡하게 인덱스가 붙은 '나혼렙' 단행본 여러 권이 쌓여 있었다. 작가는 형광펜 밑줄과 손때로 점철된 단행본을 보여주며 "셀 수도 없이 읽었다. 종이책도 많이 봤지만, 그보다 원고 파일을 수십 배 더 봤고, 웹툰도 수백번 봤다"고 말했다.

    "단언컨대 제가 전 세계에서 '나혼렙'을 가장 많이 읽은 독자일 거예요. 성경을 이만큼 읽었으면 목사님이 됐을 것이고, 수능 공부를 이렇게 했으면 서울대에 갔을 것 같아요.".

    통독하는 게 아니라 세계관, 설정, 인물, 대사 하나하나를 파고들었다. 빨간색 인덱스는 주인공, 주황색은 조연 캐릭터, 파랑은 시스템 설정 등으로 나눠가며 표시했고, 이를 바탕으로 본편보다도 긴 375화 분량의 이야기를 쌓았다.

    추공 작가가 건네준 설정집도 파고들었다. 설정집에 담겨있던 이타림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춰 '신들의 전쟁'이라는 뜻을 따서 '라그나로크'라는 제목도 붙였다.

    연합뉴스

    다울 작가가 연구한 '나혼렙' 단행본
    [작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세계관을 지키는 것은 물론, 본편에서 구해낸 세계를 망가뜨리지 않기 위해 분위기도 좀 더 가볍게 가져갔다고 했다.

    다울 작가는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은 지구가 망하고, 주인공 성진우는 없는 상황에서 아들 성수호가 아버지를 닮아 레벨업하는 방식의 아포칼립스(멸망 후 세계) 장르였다"면서도 "하지만 원작에서 성진우가 애써 지켜낸 평화와 지구가 망가진다고 생각하니 독자인 제가 용납되지 않더라"고 설명했다.

    썼다가 고친 이야기가 수도 없이 많았다.

    그는 "닥터 스트레인지처럼 일일이 에피소드를 써보고 '아, 이 미래는 아니구나'라고 생각되면 몇 번이고 다른 길로 다시 갔다"며 "원작에 조금이라도 위배되면 마감 직전이라도 처음부터 다시 쓰는 일이 반복됐다. 연재 지연으로 독자들에게 혼날 것을 알았지만, 그럼에도 다 지우고 처음부터 다시 썼다. 그것만이 제가 할 수 있는 원작에 대한 최대한의 존중이자 최선의 노력이라 생각했다. 나중에는 꿈에서도 다음 편을 쓰고 지우기를 반복했다"고 했다.

    '라그나로크'에 혼신의 힘을 쏟은 다울 작가는 '나혼렙' 세계관의 여행 안내자이자 도슨트를 자처했다.

    "모든 독자가 성진우의 오랜 소꿉친구이고, 성수호에게 이모나 삼촌 같은 이들이라고 생각했어요. 제가 수호를 맡아 키우면서 동시에 이들에게 집 구석구석 소개해주고, 근황을 알려주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했지요."

    2023년 4월 시작된 '라그나로크'는 올해 7월 23일 완결됐다. 공교롭게도 완결일은 '나혼렙' 웹툰을 그린 고(故) 장성락 작가의 3주기였다.

    다울 작가는 "완결 전에는 신기할 정도로 글이 잘 써졌다"며 "매일 지각하던 제가 뭐에 홀린 듯이 하루에 2편씩 연재했다. 완결 날짜가 정해진 것도 아닌데 그냥 쭉쭉 써졌다"고 회고했다.

    연재를 마치고서야 댓글을 보고 3주기인 것을 알게 됐다며 "마치 장 작가님이 제 소설을 완결할 때까지 지켜봐 주신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고 했다. 그는 "제가 봐도 '라그나로크'는 아쉬움이 많은 작품"이라면서도 "하지만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이 이상 더 할 수 없을 만큼 최선을 다했다"고 말을 맺었다.

    연합뉴스

    다울 작가가 연구한 '나혼렙' 단행본
    [촬영 김경윤. 재판매 및 DB 금지]


    다울 작가는 2000년 천리안·하이텔에서 연재했던 1세대 판타지 소설가다.

    고교 시절 데뷔했고, 한국에서 두 번째로 '환생 트럭'(트럭에 치이고 나서 환생하거나 빙의하는 이야기) 설정을 도입한 작가라고도 했다.

    이후 홍익대 미대에 진학했고 20대에는 광고 프로덕션 기획팀장으로 미술에만 열중했다. 이런 경험은 '라그나로크'에서 미대생이 된 성수호의 모습에도 일부 투영됐다.

    다울은 20대 후반 양세준 작가의 조언으로 다시 소설가로 돌아왔다.

    부천으로 이사해 웹소설 작가들과 함께 모여 글을 쓰기 시작했고 '무한리셋'이라는 작품을 내놨다. 그다음에는 네모난 원룸에 앉아 '던전리셋'이라는 웹소설을 써서 인기를 얻었다.

    '라그나로크'라는 대작을 마친 다울은 조금 더 쉴 법도 하지만 어떤 글이든 쓰고 싶은 상태라며 의욕을 내비쳤다.

    "지금은 쓰고 싶은 소재도 많고, 닥치는 대로 뭐든 쓰고 싶어 손이 근질거리는 상태에요. 어려운 숙제를 끝내고 나니 작가로서 조금은 성장한 것 같아요."

    heev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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