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국보>의 가부키 무대 한 장면. 부산국제영화제 제공 ⓒ Shuichi Yoshida/ASP/2025 Kokuho Film Partner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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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도 마니아층이 향유하는 전통극 가부키를 소재로 한다. 러닝타임은 3시간에 가깝다. 그런데도 이상일 감독(51)의 영화 <국보>는 일본에서 1000만 관객을 돌파했다. 역대 일본 실사 영화 중 두 번째로 높은 흥행 성적을 거뒀다. 이 기록적인 성과는 어떻게 가능했을까.
“천 만명의 이유는 잘 모릅니다. 상상도 못했습니다.”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은 이 감독은 21일 부산 영화의전당에서 열린 갈라 프레젠테이션 섹션 <국보> 기자회견에서 서툰 한국말로 말했다. 그는 이어 유창한 일본어로 “가부키는 일본인에게 익숙하지만, 자주 볼 수 있는 예능은 아니다. 관객들에게도 발견하는 자리가 됐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일본영화대학에서 연출을 전공한 그는 재일교포(자이니치) 3세이기도 하다.
이상일 감독이 21일 부산 해운대구 우동 영화의전당에서 열린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 갈라프레젠테이션 <국보> 기자회견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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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행의 열쇠는 ‘온나가타(여성 역할을 하는 남자 배우)’들의 예술혼을 장엄하고 아름답게 그려낸 작품 안에 있다. <국보>는 ‘핏줄’이 중요한 가부키 세계에서, 재능만으로 인간 국보가 된 키쿠오(요시자와 료)의 일생을 그린다. 이 감독의 전작 <악인>(2010)과 <분노>(2016)에 이어 이번에도 일본 작가 요시다 슈이치의 동명 소설이 원작이다.
야쿠자 집안에서 태어난 키쿠오는 가부키 명문 당주 하나이 한지로(와타나베 켄)에게 거둬지며 수행을 시작한다. 가문 안에서 예명이 세습되는 가부키 세계에서 핏줄은 때론 전부다.
영화 <국보>에서 유년기 키쿠오와 슌이치가 춤 연습을 하고 있다. 국내 관객들에게도 친숙한 <괴물>(2023)의 구로카와 소야가 키쿠오의 어린 시절을 연기한다. 부산국제영화제 제공 ⓒ Shuichi Yoshida/ASP/2025 Kokuho Film Partner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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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이 특출하지만 정통성이 없는 키쿠오. 핏줄을 타고났지만 실력은 평균 이상에 불과한 한지로의 아들 슌스케(요코하마 류세이). 두 사람은 10대때부터 라이벌이자 친구로 성장한다. 각자의 좌절 속에 질투를 느끼면서도 동지애를 쌓으며 연기에 정진한다. 최고의 경지를 열망하는 이들의 삶은 구도자의 것처럼 보인다. 영화는 가부키 세계의 화려함과 고독함을 지루할 틈 없이 담아낸다.
이 감독은 “이름에 따라 짊어진 고민이 엮이다가 예술가로서 정체성을 찾아가는 이야기”라면서 “모두의 삶은 아니지만, 고도로 예술을 추구하는 사람만이 볼 수 있는 풍경이 있겠다 싶었다. 그것이 주는 감동을 보여드리고 싶었다”고 했다.
영화 <국보>의 가부키 무대 한 장면. 부산국제영화제 제공 ⓒ Shuichi Yoshida/ASP/2025 Kokuho Film Partner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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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의 배우들은 사랑을 이룰 수 없게 된 연인이 소네자키 숲에서 동반자살하는 극 ‘소네자키 신주(曾根崎心中)’ 등 가부키 무대를 직접 소화한다. 가부키 톤이 익숙하지 않은 관객이라도 극이 거듭할수록 빠져들게 된다. 극중극이 인물들의 무대 밖 이야기와 연계되며, 하얀 분칠 아래 흔들리는 표정을 숨죽여 지켜보게 되기 때문이다.
키쿠오 역의 요시자와 료는 “크랭크인 전 무용 연습을 1년 6개월을 했다”며 “감독님께는 예쁘게만 춤추는 게 아니라 키쿠오의 감정을 넣어야 한다는 지도를 받았다”고 말했다.
촬영은 <가장 따뜻한 색, 블루>의 촬영감독이었던 튀니지 감독 소피안 엘 파니가 맡았다. 이 감독은 “가부키에 대한 선입견이 없는 인물에게 촬영을 부탁하고 싶었다”며 “가부키를 처음 본 후의 심정과 그 아름다움을 포착해주길 바랐다”고 했다.
영화 <국보>의 주인공 키쿠오(요시자와 료)가 분장을 하고 있다. 부산국제영화제 제공 ⓒ Shuichi Yoshida/ASP/2025 Kokuho Film Partner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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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는 개봉 102일 만인 지난 15일 1000만 관객을 돌파했다. 흥행 수익은 142억 엔(한화 약 1335억4390만원) 이상이다. 일본 역대 실사 영화 중 <춤추는 대수사선2: 레인보우 브릿지를 봉쇄하라>(2003)에 이어 2위에 달하는 기록이다. 유명 가부키 배우들이 유튜브 등 SNS에 후기나 감상 인증을 남기며 더 화제를 모았다.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국제장편영화 부문 일본 대표 출품작으로도 선정됐다.
<국보>는 핏줄이 재능의 발목을 잡지만, 고독하게 나아가는 예술가의 이야기다. 그 안에 이 감독의 재일한국인 정체성은 얼마나 반영됐을까. “제 피에 대해서는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한국어로 한 문장을 말한 이 감독이 다시 일본어로 말했다.
“<국보>에서 표현하고 싶었던 건 ‘아웃사이더’입니다. 사회 변두리 인물에게 눈이 갔던 건 사실입니다. 제 정체성이 작용했을 것 같은데, 어떻게 직접적으로 이 작품과 관련된 것일지는 여러분의 상상에 맡기도록 하겠습니다.”
부산 | 전지현 기자 jhy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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