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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06 (토)

    이슈 김정은 위원장과 정치 현황

    김정은 "미국과 마주 서지 못할 이유 없다"... 북미대화 가능성 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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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은, 北 최고인민회의서 대미·대남 연설
    “한국과 마주 앉을 생각 전혀 없어”
    비핵화 전제하면서 남한은 배제
    이 대통령, BBC 인터뷰서 '동결도 찬성' 시사
    사실상 '북핵 보유 인정' 우려도


    한국일보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22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3차 회의가 9월 20일과 21일 만수대의사당에서 진행됐다고 보도했다. 김정은 당 총비서는 이날 연설에서 한국과 마주 앉을 일이 없으며 그 무엇도 함께 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평양=노동신문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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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미국과 마주 서지 못할 이유가 없다”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대화에 나설 수 있다는 입장을 처음으로 내놨다. 앞서 지난달 25일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과의 만남에 대해 "올해 그를 만나고 싶다"고 말했다. 이재명 대통령도 22일 공개된 영국 BBC와 인터뷰에서 북핵 폐기가 아닌 ‘동결’에 대한 북미 간 합의가 이뤄질 경우, 이에 “동의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로써 북미 대화 성사 가능성이 한층 높아졌다. 다만 이 대통령이 제시한 북한 비핵화 3단계 중 '동결'에서 북미 간 협의가 멈출 경우 북한을 사실상의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이날 김 위원장이 전날 평양 만수대의사당에서 열린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3차 회의 연설에서 “나는 아직도 개인적으로는 현 미국 대통령 트럼프에 대한 좋은 추억을 가지고 있다”“만약 미국이 허황한 비핵화 집념을 털어버리고 현실을 인정한 데 기초해 우리와의 진정한 평화 공존을 바란다면, 우리도 미국과 마주 서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김 위원장 여동생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이 지난 7월 27일 대미 담화에서 “우리 국가수반과 현 미국 대통령 사이 개인적 관계가 나쁘지 않다는 사실을 부정하고 싶지 않다”고 한 적은 있지만, 김 위원장이 직접 트럼프 대통령과의 관계를 언급하며 대화 의지를 내비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는 북한이 ‘새로운 조건의 북미 협상’에 나설 준비를 마쳤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그간 북한은 핵무기 보유 확대와 더불어 우크라이나전 파병을 통한 북러 밀착을 보여주며 안보를 단단히 해왔다. 여기에 중국 전승절 참석을 계기로 외교적 위상을 높였고, 북중 관계 회복으로 경제 교류 발전 기반까지 마련해둔 상태다. 전문가들은 전승절 참석을 통해 러시아와 중국 등에 향후 북한 행보에 대한 구상을 설명하고 이에 대한 암묵적 지지를 받아뒀을 것으로 분석했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김 위원장의 이날 발언은 꽤 이례적으로, 협상의 시작점을 제시한 것”이라고 보면서 “트럼프 1기 행정부 때 생각으로 북미 협상에 임하면 안 될 거란 경고도 포함된 것”이라고 봤다.

    비핵화 요구 못 박고 남한과 대화는 차단



    한국일보

    김정은(왼쪽)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당시 대통령이 2018년 6월 싱가포르에서 열린 정상회담 직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싱가포르 통신정보부·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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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히 김 위원장은 ‘비핵화 포기’를 대화 조건으로 분명히 했다. 이날 연설엔 트럼프 대통령이 영변 핵시설에 대한 부분적 비핵화 조치를 하겠다는 북한 제안을 거절하며 ‘노딜’로 끝났던 2019년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때와는 자신의 위상이 확 달라졌다는 점이 분명히 제시됐다. 김 위원장은 “‘핵보유’가 이미 북한 헌법에 명시됐다”거나 “핵을 포기시키고 무장해제시킨 다음 미국이 무슨 일을 하는가에 대해서는 세상이 이미 잘 알고 있다”고 언급했다. 그는 “(대북)제재 풀기에 집착해 적수국들과 그 무엇을 맞바꾸는 것과 같은 협상 따위는 없을 것이며 앞으로도 영원히 없을 것”이라며 배수의 진을 친 모습을 보였다.

    문제는 남한이 관여할 공간을 확 줄여놨다는 점이다. 김 위원장은 이날 연설에서 “우리는 한국과 마주 앉을 일이 없으며 그 무엇도 함께하지 않을 것”이라고 못 박았다. 북미 대화의 ‘페이스메이커’ 역할을 자처한 이재명 정부가 설 자리를 사전 차단한 셈이다. 그간 최악의 시나리오로 꼽힌 ‘코리아 패싱’이 현실화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무엇보다 북한의 요구와 트럼프의 묵인, 우리의 '북핵 동결' 동의가 결합될 경우 북한 비핵화는 사실상 물 건너갈 수 있다는 우려가 많다. 이 대통령은 이날 공개된 BBC와 인터뷰에서 북한이 연간 15∼20기 정도의 핵무기를 추가로 생산하고 있다는 점을 언급하면서 “핵 동결은 일종의 임시적인 비상조치이자 실현 가능하고 현실적인 대안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비핵화 3단계인 북핵 동결→중단→폐기 중 첫 번째 단계에서 대화를 시작하는 데 동의할 수 있다는 뜻이다.

    트럼프 2기 행정부는 출범 후 북한 비핵화에 대한 일관된 목표를 유지했지만, 정작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을 두고 핵무기를 가지고 있는 국가란 의미의 ‘뉴클리어 파워(Nuclear power)’라고 칭하며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는 듯한 발언을 이어갔다. 북한 비핵화 논의가 '동결' 단계에서 멈춰 서 고착화될 경우 사실상 '북핵 인정'은 현실화될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유엔총회-APEC 통한 한미 간 긴밀 대화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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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엔총회 참석차 출국하는 이재명 대통령과 김혜경 여사가 22일 성남 서울공항에서 공군 1호기에 탑승하며 환송객들을 향해 인사하고 있다. 성남=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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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문가들은 북미 대화 전략 등을 두고 한미 간 대화를 한층 긴밀하게 이어가야 한다고 조언한다. 특히 이 대통령으로선 이날부터 방미 일정을 시작한 유엔총회 기조연설을 비롯해,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참석이 예고된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진행 과정을 적극 활용해 우리의 요구를 분명히 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는 "유엔총회와 APEC에서의 미중 정상 만남 등 빅 이벤트가 예정된 상황에서 (북한도) 자신의 입장을 정리해 발표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라고 분석하면서 "이럴 때일수록 (우리가 원하는 비핵화 요구 등을) 미국과 한층 상세히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형준 기자 mediabo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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