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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09 (화)

    이슈 책에서 세상의 지혜를

    기후위기 현장으로 간 ‘시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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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향신문

    환경운동연합이 시인들과 함께한 경주 월성 원전 답사 현장에서 한 시인이 원전 부지를 바라보고 있다. 환경운동연합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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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루되었다는 걸 문득 알아챕니다 // 내 이야기가 되기도 하고 / 네 이야기가 되기도 하는 / 녹색이란, 안전장치가 되기도 하고, 정치가 되기도 하고 (…) 공모자가 됩니다”(‘제한구역 알림’ 중)

    최근 발간된 기후 시집 <여름, 연루>에 수록된 ‘기후 시’ 중 하나다. 시집은 환경운동연합이 기획하고 권누리·마윤지·박은지·윤은성·윤지양·정재율·한연희·희음 8명의 시인이 참여해 만들었다. 이들은 지난 봄과 여름 경기도 화성 습지, 경주 월성 원자력발전소 앞바다, 부산 가덕도를 찾았다.

    낯선 현장을 찾은 시인들은 환경 파괴의 현장에서 인간과 자연이, 우리의 일상과 기후 위기가 깊게 연루되어 있음을 느낀다. 수도권에 살며 그 생활양식을 유지하기 위해 지역의 자연을 파괴하는 것을 감각하며 가해자이면서 피해자로서 고통을 연대한다.

    6월 여름의 초입 찾은 가덕도는 태고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곳이었다. 부산의 명소를 소개하는 ‘비짓부산’ 홈페이지에도 가덕도는 “아름다운 풍광은 마치 무엇인가에 홀린 것처럼 넋을 잃고 바라보게”만드는 곳으로 소개된다.

    시인들은 한낮 동백나무가 자생하며 군락지를 이룬 국수봉 일대를 돌아봤다. 밤에는 반딧불이를 보러 갔다. 모든 불빛을 끄고 산속으로 걸어들어갔다. 숨죽인 채 하늘을 보자 반딧불이 떼가 반짝반짝 빛났다. 시인 희음은 지난 24일 인터뷰에서 당시 상황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이곳이 현실 세계가 맞나 싶을 정도로 작은 빛들이 무수하게 빛나는데, 장관이라는 말로는 표현할 수 없었어요. 모두 말문이 막혀서 그냥 멀뚱멀뚱 쳐다보고만 있었어요.” 그날의 감각이 시에 담겼다.

    “한여름의 밤이었는데도 / 우리는 입김을 내뿜었다 / 입김이 잿빛으로 변해갈 때 / 홀연히 뒤따라와 어루만지는 / 빛의 체온이 있었다 // 왔니. // 괜찮니. // 다치지 않았니. // 어떻게 살았니. // 별일 없었니. // 우리는 여기 있다. // 우리는 여기 // 살고 있어. / 있었어.”(‘반딧불이 쪽으로’ 중)

    이곳에 신공항 건설 사업이 예정돼 있다.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 23일 부산을 방문해 가덕도 신공항 사업을 적극 챙기겠다고 말했다. 환경단체들은 국수봉에 대표적인 환경 지표종인 반딧불이가 서식하고 있음에도 가덕도 신공항 사업 전략환경영향평가 보고서에 반딧불이에 대한 언급이 단 한 줄도 없다며 비판해왔다. 가덕도와 새만금 등 전국적인 신공항 건설 사업이 실질적인 수요에 의한 것이라기보다 토건 세력을 위한 것이고, 이 과정에서 탄소 배출량이 높은 항공 산업을 무리하게 확장해 기후 위기를 가속화 한다는 것도 비판의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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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덕도의 자연 환경. 환경운동연합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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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덕도 전경. 환경운동연합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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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짙은 파란색 바다 앞으로 / 우리는 걸었지. // 바다에 몸을 담그고 웃는 게 / 기이하지 않은 여름을 상상했지─. (…) 핵발전소가 줄지어 선 곳 맞은편 / 바다가 너무 파랗고 / 시리게 빛났을 때.”(‘프레임 안팎의 베크렐’ 중)

    월성 원전에서는 11년째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월성원전이주대책위원회’ 활동가들을 만났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제한 구역으로 설정돼 가까이 갈 수 없는 원자력 발전소를 멀리서 지켜봤다. 화성 습지에서는 새들이 인공적으로 변한 자연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갈 곳을 잃은 채 떼 지어 나는 장면을 목격한다.

    책의 기획에 참여한 권우현 환경운동연합 활동가는 “기후 위기 현장에 대해 가지는 사람들의 부채감 등 여러 감각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운동으로 어떤 것을 요구하기 전에 이런 감각을 시의 언어로 연결하는 작업을 할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해 이번 시집을 기획했다”며 가덕도 등 세 지역을 답사 현장으로 고른 것에 대해 “파괴의 참담함과 자연의 아름다움이 공존하는 곳을 찾았다”고 말했다.

    ‘기후 시’라는 명명이 낯설지만 처음은 아니다. <지구는 난간에 매달려> <알았으면서도> 등이 기후 시집 혹은 기후 위기 시집 등으로 나온 바 있다. 기후를 뜻하는 Climate(클라이밋)과 소설을 뜻하는 Fiction(픽션)을 합친 ‘기후소설’(클라이파이, Cli-fi)이라는 장르도 존재한다.

    다만 이번 기획은 기후 위기에 대해 ‘쓰는 것’을 넘어서 함께 현장을 답사하고 그 경험을 문학으로 녹여냈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희음은 “현장에 방문하고 인간뿐 아니라 비인간의 존재를 포함한 그곳의 얼굴들을 바라보는 일이 좋았다. 문학과 예술을 하는 분들이 기후에 대한 감각을 수용하고 이를 재배치하는 작업을 이어나가면 좋겠다”고 말했다.

    고희진 기자 goj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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