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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이 세상에서 미움을 몹시 받은 지가 오래입니다. 단정히 앉아 깊이 생각할 때는 양심이 살짝 드러나다가도 사람과 마주하고 세상사와 접할 때면 번번이 아첨하며 받아들여지기를 구하곤 합니다. 농부를 만나면 농사일만 말하고, 상인을 만나면 장사 일만 말하는데, 대부분 자신을 버려두고 다른 일만 좇고 있으니 진실로 평생의 고질입니다.(<방산에게 답하다>)
18년간의 유배생활 속에서도 늘 학문에 정진했던 다산 정약용의 고백이다. 그가 말하는 학문은 좋은 삶을 빚고 세상을 다스리는 데 필요한 지식과 지혜를 핵으로 한다. 오늘날의 인문사회 학술이 이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런 학문이 세상으로부터 증오된 지가 오래라고 하니, 새삼 언제는 세상으로부터 각광받은 적이 있나 하는 생각마저 든다.
게다가 다산은 학문이 세상으로부터 심히 미움받는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고 있다. 자신이 닦고 익힌 학문을 제쳐두고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그들의 관심사만 얘기하는 등 기꺼이 아첨하는 자신을 문제 삼았다. 다산 같은 높은 선비도 이러했으니 그렇지 못한 선비들은 어떠했을까? 그러니 학문을 토대로 대화하려 하면 사람들로부터, 세상으로부터 백안시당하며 미움을 받게 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귀결일 수도 있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어떨까? 얼마 전 카이스트 졸업식에서 대통령은 “단단한 이공계 안전망을 구축해 적어도 돈이 없어서 연구를 멈추는 일은 없도록 만들겠다”고 확언했다. 과학기술만큼은 우리 사회에서 미움받지 않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지난 정부에서 국가 R&D 예산을 대폭 삭감했을 때도 다산처럼 문제의 원인이 자신에게도 있다는 자성의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았지만, 사람들과 세상은 과학기술을 응원하며 정부의 조치를 크게 비판했다.
반면 다산이 말한 학문, 오늘날의 인문사회 학술에 대한 미움은 여전한 듯하다. 적어도 정부와 국회 등 공공부문은 확실히 그렇다. 그러나 인문사회 학술은 환금성은 떨어질지라도 국가와 사회의 인격적, 지적 인프라이다. 게다가 급속히 전개되고 있는 인공지능(AI) 시대는 인문사회 학술이라는 인프라를 더욱 크게 요구한다. 무관심이 큰 해악인 이유다.
김월회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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