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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1.01 (목)

    이슈 하마스·이스라엘 무력충돌

    ‘가자지구 집단학살’ 보고서 낸 필레이 위원장 “이스라엘, 틀린 부분 있으면 말해봐라”[시스루피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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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아공 최초 비백인 여성 고등법원 판사

    르완다 국제형사재판소장, 유엔 인권최고대표 지내

    “이스라엘 제노사이드, 국제 사회 행동에 나서야”

    “피난 불가능한 ‘가자 감옥’이란 잔인한 시스템”

    “미국, 이스라엘 집단학살 공모···트럼프, 국제법 공부해야”

    경향신문

    유엔 팔레스타인 점령지 및 이스라엘에 관한 독립 국제조사위원회 위원장인 나비 필레이가 지난달 16일(현지시간) 제네바에서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서 집단학살을 저질렀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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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비 필레이 전 유엔 인권최고대표(84)는 오랫동안 입지전적 인물이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의 그는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에 의해 남아공 고등법원 최초의 비백인 여성 판사로 임명됐다. 르완다 국제형사재판소(ICTR) 판사와 소장을 지냈으며, 국제형사재판소(ICC) 판사를 지냈다. 악명 높은 아파르트헤이트(인종분리 정책) 철폐에 힘써온 그는 ICTR에서 강간·성폭력이 집단학살과 반인도적 범죄가 될 수 있다는 판례를 확립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남아공 헌법에 인종·성별·종교·성적 지향에 따른 차별을 금지하는 평등 조항을 포함시키는 데 기여했다.

    그런 그가 최근 중요한 경력을 추가했다. 유엔 팔레스타인 점령지 및 이스라엘에 관한 독립 국제조사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그는 지난달 16일(현지시간)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서 집단학살(제노사이드)을 저지르고 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72페이지 분량의 보고서는 2023년 10월7일부터 2025년 7월31일까지 벌인 조사를 기반으로, 1948년 제정된 집단학살 방지 협약에 근거해 이스라엘이 집단학살을 저지르고 있다는 판단을 내렸다. 그는 국제사회의 행동을 촉구하며 “행동의 부재는 공모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국제적 파장은 컸다.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전쟁에 대한 반대 여론이 높아졌으며 서방 주요국들이 팔레스타인 국가 인정을 발표하는 데도 영향을 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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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9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백악관 국빈식당에서 열린 기자회견을 마친 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악수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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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레이 위원장은 1일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와의 인터뷰에서 “한 국가가 노골적으로 반항하며 국제법을 위반하고 있다. 이것이 우리가 직면한 현실이고 그래서 이 보고서가 중요하다”며 “이것은 유엔 보고서이고 각국이 지금 당장 행동해야 한다는 경종을 울려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프랑스·영국·캐나다·호주 등 서방 주요국들이 팔레스타인을 국가로 승인하기로 결정한 것이 “정치적 해결책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필레이 위원장은 이스라엘의 집단학살에 미국 역시 공모했다고 비판했다. 그는 “미국이 이스라엘에 군사 장비와 군사 자문을 제공하는 최대 국가라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미국의 책임에 대한 구체적 조사는 아직 이뤄지지 않았는데 이는 위원회가 세계 각국이 이스라엘로 무기를 이전한 사례에 대한 조사 권한을 추가로 부여받았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필레이 위원장은 가자지구 전쟁이 다른 분쟁들과 매우 다르다고 밝혔다. 그는 “다른 분쟁의 경우 사람들이 이웃 국가로 피난을 가서 보호받을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는 ‘가자 감옥’이라는 매우 잔인한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다”며 “사람들은 의료적 이유로도 떠나는 것이 허락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필레이 위원장은 가자지구 주민들이 이스라엘의 봉쇄로 떠날 수 없을뿐더러 그들이 자신들의 땅을 떠나고 싶어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떠나느니 차라리 여기서 죽겠다’고 말하는 것을 들을 수 있다”며 “가자지구를 즉시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으로 만들어야 한다. 모든 것을 재건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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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9월 16일(현지시간) 가자시티에 대한 이스라엘의 대피 명령이 내려진 후 피란민들이 소지품을 들고 남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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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는 남아공 출신이라는 경험과 배경이 어떤 영향을 미쳤냐는 질문에는 “우리는 굶주림과 기아, 구금에 익숙하다”며 “내 남편도 테러방지법에 의해 아무런 이유 없이 구금됐다”고 말했다. 이어 “전 세계적으로 갈등이 벌어지고 있고 남아공에도 아파르트헤이트가 있었다. 하지만 가자지구 상황은 최악”이라며 “굶주림을 이용해 집단을 부분적으로 파괴하고 있다. 식량도, 의료 지원도, 인도적 지원도, 물도 없다. 정말 화가 나는 것은 너무나 많은 아이들이 죽거나 다쳤고, 마취도 받지 못한 채 사지가 절단됐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필레이 위원장은 이스라엘과 그 지지자들로부터 ‘반유대주의자’라는 비판을 듣고 있다. 그는 “유엔 인권최고대표로 재직한 6년(2008~2016) 동안 아무도 저를 반유대주의자라고 비난하지 않았다. 내가 이 조사위원회 위원장직을 수락한 이후에야 제기된 주장”이라며 “이스라엘 정부와 지지자들은 우리 조사 결과에 틀렸거나 편향된 부분이 어디인지 지적해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필레이 위원장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어떤 조언을 하겠느냐는 질문에 “국제법에 대해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 대통령뿐만 아니라 상·하원에 있는 그의 지지자들도 국제법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다. 국제법이 한 국가만이 아니라 모든 국가의 이익을 위해 작동한다는 것, 모든 국가가 준수해야 한다는 것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고 말했다. 그는 “왜 모든 국가들이 함께 모여 이러한 조약과 협약, 의정서를 만들었는지 알아야 한다. 그들이 ‘다시는 안 된다’고, 제3차 세계대전 같은 일이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된다고 했기 때문이다”라고 강조했다.

    유엔 조사위원회의 필레이 위원장과 다른 두 명의 위원은 모두 최근 사임한다고 밝혔다. 필레이 위원장은 고령과 건강 문제 등 개인적인 사유를 언급했다. 그는 국제 변호사로서의 활동은 계속 이어갈 계획이다.


    ☞ ‘이스라엘 제노사이드’에 움직이는 국제사회
    https://weekly.khan.co.kr/article/202509261502001


    이영경 기자 samemin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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