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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07 (일)

    이슈 교권 추락

    한국어가 제1외국어인 베트남, "교원·교재 확충해 질적 도약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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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트남 한국어 교육 선구자 쩐티흐엉 교수
    한국어 유일하게 제1 외국어로 채택한 나라
    초중고부터 대학, 이주노동 수요까지 다양


    한국일보

    쩐티흐엉 베트남 하노이 국립외국어대 한국어·한국문화학부 학부장이 지난달 29일 대학 학과 사무실에서 현지 한국어 열풍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하노이=허경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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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트남 내 한국어 교육은 완연한 성장기에 들어섰다. 그러나 지금의 열기를 이어가려면 베트남인 교원 양성과 맞춤형 교재 등 인프라 확충이 필요하다.”

    쩐티흐엉(46) 하노이 국립외국어대 한국어·한국문화학부 학부장은 한글날(10월 9일)을 앞두고 지난달 29일 한국일보와 만나 베트남 한국어 교육의 과제를 이렇게 짚었다. 베트남은 전 세계에서 세종학당이 가장 많이 설치된 나라이자 유일하게 한국어를 제1외국어 중 하나로 채택한 국가다. 원하는 학교는 영어를 제치고 한국어를 제1외국어로 가르칠 수 있다는 얘기다. 명실상부한 세계 최대 한국어 교육 거점으로 자리 잡았지만, 급격한 성장에 비해 기반은 여전히 미흡하다는 지적이다.

    33명에서 1,000명으로… 비약적 발전


    흐엉 학부장은 베트남 내 한국어 교육의 선구자로 꼽힌다. 베트남 정부가 초·중등 과정에서 한국어를 제 1·2 외국어로 채택하는 데 기여한 공로로 지난해 한국 교육부 장관 표창을 받았다. 흐엉 학부장이 경험한 한국어 교육은 ‘상전벽해’ 수준으로 달라졌다.

    그가 하노이 국립외대 러시아학부 산하에 한국어 학과가 처음 개설된 1997년 입학했을 당시 학생은 33명뿐이었다. 교수진도 마땅치 않아 한국국제협력단(KOICA·코이카) 봉사단원이 수업을 맡았다. “북한 근무 경험이 있던 베트남인이 한국어 문법을 가르친 적도 있다”며 “책이 부족해 코이카가 서울대, 연세대 한국어학당 교재를 한두 권 공수해오면 학생들이 복사하느라 분주했다”고 회상했다.

    한국일보

    베트남 하노이 국립외국어대 한국어·한국문화학부 학생들이 사용하는 한국어 교재. 하노이=허경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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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8년이 지난 지금,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 국립외대 한국어 전공자는 1,000여 명으로 30배 이상 늘었고, 2012년 학부 승격 이후 통번역·한국어학·한국어 교육 등 세부 전공도 다양해졌다. 해마다 250여 명의 신입생을 선발하는데 상위권 학생만 합격할 정도로 경쟁이 치열하다. 2018년에는 베트남 최초의 한국어 석사 과정도 개설됐다. 흐엉 학부장은 “제2외국어로 선택하는 학생도 많아 캠퍼스 내 한국어 학습자는 연간 2,000여 명에 이른다”고 말했다.

    이 학교뿐만이 아니다. 올해 3월 기준 베트남 48개 대학이 한국어·한국학 전공을 운영하고 있다. 초·중등 과정에서 한국어를 정규 교과로 채택한 학교는 79곳, 제2외국어로 운영 중인 고등학교는 80여개교에 달한다.

    뜨거운 학습 열기 중심에는 ‘기회’가 있다. 2000년대 초 드라마와 케이팝 등 ‘한류’가 한국어 성장을 이끌었다면, 지금은 취업이 주요 동력이다. 삼성, LG 등 한국 기업의 베트남 진출로 ‘경제 언어’로서 위상이 커졌다는 의미다. LG가 공장을 세운 북부 하이퐁시 일부 초등학교에서는 3학년부터 한국어를 제1외국어로 배우기도 한다. 흐엉 학부장은 “학부모들이 눈앞의 취업 기회를 보고 자녀가 한국어를 배우길 바라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한국일보

    베트남 하노이 국립외국어대 한국어·한국문화학부 학생들이 사용하는 한국어 교재. 하노이=허경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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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적 성장에도, 인프라는 아직 제자리


    폭발적 열풍은 역설적으로 교원 부족 문제를 낳았다. “한국 교육부가 교사 양성 프로그램을 지원하고 우리 대학도 관련 과정을 확대하고 있지만, 학습자 증가 속도를 따라가기엔 역부족이다.” 흐엉 학부장은 이렇게 진단했다.

    교재 다양화도 시급하다. 베트남은 한국어 학습자 층이 다른 나라보다 훨씬 넓다. 초·중·고교생부터 대학 전공·비전공자, 한·베 가정 자녀, 취업 준비생, 한국 이주노동 희망자 등 목적과 수준도 제각각이다.

    그만큼 세분화된 교재가 필요하지만, 여전히 한국 대학 어학당에서 세계 여러 나라 외국인 학습자를 위해 만든 공용 교재를 복사해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하노이 국립외대 차원에서 현지 실정에 맞춘 교재를 개발 중이지만 아직 초기 단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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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5월 베트남 하노이 다이남대 한국어능력시험(TOPIK·토픽) 시험장에서 응시자들이 고사장으로 입실하고 있다. 하노이=허경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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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프라뿐 아니라 평가 제도 개선도 뒤따라야 한다고 지적했다. 현재 외국인의 한국어 수준을 객관적으로 보여주는 지표는 한국어능력시험(TOPIK·토픽)이 유일하다. 베트남 내 토픽 응시자는 2020년 1만6,000명에서 지난해 6만3,000명으로 4배 급증했다. 한국어 학습자가 급증하면서 시험 수요도 함께 커졌다. 그러나 시험장 수가 이를 모두 수용하지 못해 접수 경쟁이 치열하다. ‘접수 대행 서비스’까지 등장할 정도다.

    “토픽은 한국 유학이나 기업 취업의 필수 조건인데 응시 자체가 쉽지 않다. 접수에 실패해 한국이나 태국까지 가서 시험을 치르는 학생도 많다”는 게 흐엉 학부장의 설명이다. “시험장 확대와 함께 토픽 외 표준화된 한국어 평가 체계 도입도 고려해야 한다”고도 덧붙였다.

    그는 한국어가 단순한 외국어를 넘어 양국 관계의 매개가 됐다고 강조했다. 그는 “베트남의 한국어 학습은 ‘문화가 좋아서’ 배우는 단계를 넘어, 현실적 필요에 따른 자발적 선택으로 발전했다”면서 “양국이 경제 연계와 사돈 국가로 맺어진 특별한 관계를 바탕으로 한국어 교육 협력도 심화한다면 지금의 양적 성장에 이어 질적 도약도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글·사진= 허경주 특파원 fairyhk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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