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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06 (토)

    이슈 전두환과 노태우

    "노태우 300억 뇌물, 법 보호 영역 아냐" 승패 가른 결정적 한 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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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태원 · 노소영 이혼소송 파기환송]
    노소영 재산분할액 대폭 축소 전망
    항소심 "300억 노소영 기여분 인정"
    대법 "불법성 재산, 보호 가치 없어"


    한국일보

    노태우 전 대통령이 최종현 전 회장과 악수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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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조3,800억 원대 재산 분할이 걸려 '세기의 이혼소송'으로 불린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법정 다툼에서 승패를 가른 결정적 변수는 '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 300억 원'에 대한 판단이었다.

    1심이 인정한 재산분할 금액 665억 원이 2심에서 크게 늘어난 배경에는 '노태우의 금전 지원'을 '최 회장 재산 형성에 대한 노 관장의 기여'로 규정한 판단이 자리했다. 그러나 대법원 1부(주심 서경환 대법관)는 16일 이를 "법적 보호가치가 없는 행위"라고 못 박았다. 최대 쟁점인 '노태우 비자금 300억 원'에 대해 대법원이 "이혼 재산 분할에서 기여로 참작할 수 없다"는 선을 그으면서 파기환송심에서는 재산분할액이 크게 줄 전망이다.

    2심 "당시 기준으로 형사처벌 대상 아냐"


    노 관장은 항소심이 진행 중이던 2023년 6월, 모친 김옥숙 여사가 남긴 '비자금 메모'를 법원에 제출했다. 메모에는 노 전 대통령의 동생인 노재우씨를 비롯한 여러 이름 옆에 2억~300억 원의 금액이 기록됐다. SK의 전신인 선경의 이름 옆에는 '300억 원'이 적혔다.

    김 여사가 보관한 봉투에는 '채권 500억 - 쌍용, 선경’이라는 문구와 함께 '선경 300', '쌍용 200'이라고 쓴 소봉투 두 개가 들어 있었다. 노 관장 측은 이 문서가 노 전 대통령이 1991 년 고 최종현 선경그룹 회장(최태원 회장의 부친)에게 금전 지원을 한 뒤 받은 증빙자료라고 주장했다.

    이 기록은 앞서 노 전 대통령이 재직 기간 동안 기업인들에게 2,708억9,600만 원을 받은 뇌물 혐의로 징역 17년과 추징금 2,628억9,600만 원을 선고받을 당시에도 공개되지 않았던 내용이다. 뒤늦게 공개한 까닭에 대해 노 관장 측은 "대내외 억측과 불필요한 논란을 우려해 가족만 알고 있었다"고 했다.

    서울고법 가사2부(부장 김시철)는 이를 토대로 '노태우 비자금 300억 원'이 SK그룹 측에 유입돼 기업 성장의 토대가 됐다고 봤다. 최 회장 측은 선대 회장이나 계열사 자금을 활용했을 뿐이라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증거가 부족했다고 봤다. 1991년 당시 태평양증권 등을 인수할 즈음 선대 회장 명의의 계좌에서 현금 대신 자기앞수표, 당좌, 약속어음 등이 대규모로 입출금된 내역이 근거가 됐다.

    당시 최 회장 측은 비자금의 기여도를 인정하면 범죄 수익을 합법화하는 셈이라는 주장을 폈지만 법원은 "1991년 당시는 범죄수익은닉규제법이 시행되기 전으로 형사처벌 대상이 되지 않아 불법원인급여는 아니다"라고 판단했다.

    대법 "뇌물, 보호 대상 아냐"



    한국일보

    최태원 SK그룹 회장(왼쪽)이 지난해 3월 12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법에서 열린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과의 이혼 관련 항소심 변론기일을 마치고 차량으로 향하고 있다(공동취재). 오른쪽은 항소심 변론기일에 출석하는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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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법원 판단은 달랐다. '노태우 비자금 300억 원'은 불법 자금으로 처음부터 법의 보호영역 밖이라는 취지다. 대법원은 이날 "이 돈의 출처는 노 전 대통령이 재직 시 수령한 뇌물로 보이는데 이를 함구해 수사가 이뤄지지 않았고 해당 자금 상당액도 추징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설령 당시 이를 직접 금지한 규범이 없더라도 내용이나 성격, 목적이나 연유 등에 비추어 선량한 풍속 그 밖의 사회질서에 반하고 그 반사회성·반윤리성·반도덕성이 현저하여 법의 보호영역 밖에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특히 민법 제746조가 '불법의 원인으로 재산을 급여한 때는 그 이익의 반환을 청구하지 못한다'고 정한 입법 취지는 이혼 재산 분할 청구에서도 고려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대법원은 "(노 관장 측이) 노 전 대통령 돈의 반환을 요구하는 게 아니라 재산분할에서 기여를 주장한다고 해도 불법성은 절연될 수 없다"며 "법적 보호가치가 없는 이상 기여를 참작해선 안 된다"고 했다.

    대법원은 이번 판결의 의미에 대해 "사회적 타당성이 없는 행위를 한 사람을 법적으로 보호하지 않는다는 민법 제746조의 취지를 재확인한 것이 이번 판결의 의의"라고 밝혔다. 비자금이 재산분할 근거에서 배제되면서 파기환송심에서는 SK 주식 가치 상승에 노 관장의 다른 기여가 있었는지 등을 집중 심리하는 가운데, 분할액은 크게 줄어들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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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박종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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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현우 기자 wit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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