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년 101세…오이타현 병원서 노환으로 숨져
1995년 “아시아 여러 나라에 손해와 고통 줬다”
‘무라야마 담화’ 발표로 韓日 과거사 극복 물꼬
무라야마 도미이치 전 일본 총리가 2016년 5월 25일 제주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제11회 제주포럼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아베 총리가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사죄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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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역대 총리 최초로 재임 시절 한국의 식민 지배에 대해 사죄하는 담화를 냈던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 전 일본 총리가 17일 별세했다. 향년 101세. 그는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친필 서명의 사죄 편지를 보낸 최초의 일본 총리이기도 하다.
NHK와 아사히 신문 등 일본 현지 매체에 따르면 무라야마 전 총리는 이날 규슈 오이타현 오이타시 한 병원에서 노환으로 사망했다.
무라야마 전 총리는 1995년 8월 15일 당시 ‘전후 50주년의 종전기념일을 맞아’라는 제목의 성명을 발표했다. 그는 성명에서 “지난 대전이 종말을 고한 지 50년의 세월이 흘렀다”며 “다시금 그 전쟁으로 인해 희생되신 내외의 많은 분을 상기하면 만감에 가슴이 저미는바”라고 밝혔다.
이어 “우리는 과거의 잘못을 두 번 다시 되풀이하지 않도록 전쟁의 비참함을 젊은 세대에 전하지 않으면 안 된다”며 역사 인식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무라야마 전 총리는 “우리나라는 멀지 않은 과거의 한 시기, 국가정책을 그르치고 전쟁의 길로 나아가 국민을 존망의 위기에 빠뜨렸다”며 “식민지 지배와 침략으로 많은 나라들, 특히 아시아 제국의 여러분에게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줬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의심할 여지도 없는 이와 같은 역사의 사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여기서 다시 한번 통절한 반성의 뜻을 표하며 진심으로 사죄의 마음을 표명한다”고 했다. ‘통절한 반성’, ‘진심’, ‘사죄’ 등 명확하고 직설적인 언어로 총리가 사과 입장을 밝힌 것은 역사적으로도 그 의미가 크다는 평가가 나왔다.
2014년 서울 영등포구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위안부 피해자 할머지들의 작품 전시회에 참석한 무라야마 도미이치 전 일본 총리가 위안부 피해자 강일출 할머니의 손을 맞잡고 있다.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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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야마 전 총리는 “이 역사로 인한 내외의 모든 희생자 여러분에게 깊은 애도의 뜻을 바친다”며 “패전의 날로부터 50주년을 맞이한 오늘, 우리나라는 깊은 반성에 입각해 독선적인 내셔널리즘을 배척하겠다”고 했다.
이어 “우리나라는 유일한 피폭국이라는 체험을 바탕으로 해서 핵무기의 궁극적인 폐기를 지향해 핵확산금지체제의 강화 등 국제적인 군축을 적극적으로 추진해 나가는 것이 간요(肝要)하다”며 “이것이야말로 과거에 대한 속죄이며 희생되신 분들의 영혼을 달래는 길이 되리라고 저는 확신한다”고 말했다.
이 발표는 일본의 최고 지도자가 공식적으로 침략과 식민지 지배를 사죄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담고 있다. 총리 혼자 발표한 담화가 아니라 발표 전 일본 내각의 회의를 거쳐 발표를 결정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한일 양국 간 불행한 역사를 극복하고 미래지향적 관계로 나아가기로 한 1998년 ‘김대중-오부치 선언’ 역시 이 무라야마 담화를 토대로 나올 수 있었다.
2015년 11월 25일 무라야마 도미이치 전 일본 총리가 일본 도쿄 주일 한국대사관에 마련된 김영삼 전 대통령 분향소를 찾아 조문하는 모습. 동아일보 D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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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야마 전 총리는 2014년 10월 한국을 찾아 숭실대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기도 했다. 당시 그는 “일본 정부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는 헌법을 무용지물로 만드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당시 일본 총리의 무라야마 담화 수정 시도 등 일본 내 움직임에 대한 견해를 밝힌 것.
당시 무라야마 전 총리는 “일본 헌법에 전쟁을 해서는 안 된다고 나와 있다. 아베 정권이 해석을 변경해서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시도하고 있는데 인정할 수 없다”고 했다. 일각에서 무라야마 담화를 수정하려는 움직임에 대해선 “담화 수정은 불가하다. 국제적인 약속이기 때문에 아베 총리도 지켜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일 정상회담이 열린다면 최우선으로 논의돼야 할 사항으로 위안부 문제와 야스쿠니 신사 참배 문제를 꼽기도 했다.
2015년 5월 이뤄진 동아일보 인터뷰에서는 “일본의 우경화가 더 심해지고 있다”며 “전후 70년간 일본이 걸어온 평화의 길을 다른 방향으로 바꾸려 하고 있다”고 아베 총리를 비판했다.
한편 그가 재임한 1년 6개월 동안 일본에서는 대형 사건·사고가 빈발하기도 했다. 1995년 1월에는 ‘고베 대지진’이 발생했고, 두 달 뒤에는 옴진리교가 도교 지하철역에서 사린 가스 살포 사건을 벌였다. 항공기 공중 납치 사건도 그의 재임 시절이었다.
무라야마 전 총리는 개인적으로는 온화하고 청렴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특별한 파벌도 없었다. 때문에 오히려 소극적이고 존재감이 약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그는 100살이 넘어서도 현역과 다름없이 왕성하게 활동했다. 일본의 우경화 행보를 거침없이 비판했고 한일 관계 회복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2015년 동아일보와 인터뷰 중인 무라야마 도미이치 전 일본 총리. 당시 ‘일본의 살아있는 양심’으로 불렸다. 동아일보 D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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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언론은 무라야마 전 총리의 별세 소식을 전하며 “전후 50년째를 맞이한 1995년에는 이른바 무라야마 담화를 발표했다. 식민지 지배와 침략에 의해 많은 나라들, 특히 아시아 국가들의 사람들에게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줬다고 인정했다”고 전했다.
일본 교도통신은 “총리 취임 뒤 미·일 안보 체제 견지와 자위대 합헌, 히노마루(일장기) 용인 등을 표명해 사회당의 기본 정책을 전환했다”고 평가했다. 산케이신문은 “전후 50년 과거의 식민지 지배와 침략을 사과하는 담화를 발표하고 위안부 보상을 위해 아시아여성기금을 창설했으나 위안부 문제는 종결되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미국 AP통신은 “일본의 항복 50주년을 맞아 총리로서 발표한 사과문은 일본의 전쟁 및 식민지 과거에 대한 주된 반성의 표현으로 여겨진다”며 “이후 모든 총리가 이를 지지했으나, 2013년 민족주의 성향의 아베 총리가 사과를 중단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무라야마는 당시 정부가 아시아 여성들을 강제로 일본군에게 성매매시켰다는 사실을 구체적으로 명시한 공식 문서를 만들지 않아 위안부에 대한 사과의 신뢰성을 떨어뜨리려는 민족주의 의원들의 시도가 늘어나고 있다고 비판했다”고 전했다.
이혜원 기자 hye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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