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이 동영상·음악·게임 등 모든 콘텐츠 제작의 장벽을 무너뜨리고 있다. 오픈AI가 최근 공개한 동영상 생성 모델 '소라2'는 단순한 텍스트 입력만으로 실사에 가까운 영상을 만들어내며, 누구나 '1인 제작자'가 될 수 있는 시대를 열었다. 콘텐츠 제작자와 소비자의 경계선이 흐려지고 있는 셈이다.
AI 콘텐츠 시장 크기도 덩달아 급성장할 전망이다. 시장조사기관 마켓유에스에 따르면 AI 기반 콘텐츠 제작 시장 규모는 지난해 152억달러(약 21조5000억원)에서 2033년 1753억달러(약 248조6000억원)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연평균 성장률이 32.1%에 달한다.
고성장을 이끄는 공신은 오픈AI다. 오픈AI가 최근 공개한 소라2는 출시 5일이 채 되기도 전에 100만 다운로드를 기록했다. 챗GPT의 기록도 뛰어넘었다. 소라2 인기로 AI 영상 제작 환경은 더욱 개선될 전망이다.
과거에는 영상 편집이 일종의 '전문 기술'로 여겨졌지만, 이제는 아이디어만 있으면 누구나 양질의 영상을 만들 수 있게 됐다. 명령어 한 줄로 영상 분위기나 카메라 앵글, 배경 음악까지 자동으로 완성된다. 영상 제작 난도가 급격히 낮아지며, 개인 유튜버나 틱톡 이용자 같은 일반인들이 AI를 활용해 수준 높은 콘텐츠를 대거 생산할 것으로 보인다.
음악이나 게임 분야에서도 특성화된 AI가 등장하면서 제작 장벽은 대폭 낮아지는 추세다. 음악 생성 AI 'suno(수노)'를 통해 자기가 듣고 싶은 음악을 직접 만들어 듣는 사례도 있을 정도다.
직장인 김 모씨(32)도 최근 AI 음악 생성 프로그램 Suno로 음악을 만들어 직접 즐기고 있다. "퇴근길 마음이 따뜻해지는 음악을 만들어줘"라고 요청하자 잔잔한 감성의 음악이 흘러나왔다. 이어 "가사에 '퇴근길 불빛'을 넣어줘"라고 요청하자 AI는 이를 반영해 새로운 노래를 만들어냈다. 김씨는 "'내 기분에 맞춘 노래를 내가 만든다'는 느낌이 들어 신기했다"고 말했다.
음악 분야에서는 이미 소비자가 직접 음악을 만들어 듣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수노나 유디오(Udio) 등 AI 음악 플랫폼에서는 사용자가 기분·장르·악기 등을 입력하면 즉시 음악을 생성한다. 과거 수동적 감상자에 머물던 소비자들이 '프로슈머', 직접 만드는 소비자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음악 소비자들은 AI를 활용해 자신만의 '꿈의 음악'을 만들기도 한다. 기존 가수들의 목소리로 새로운 음악을 기획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걸그룹 에스파가 보이그룹 방탄소년단의 노래를 커버하는 음악을 AI를 활용해 만드는 식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가수의 목소리로, 자신이 좋아하는 다른 가수의 노래를 부르는 'AI 커버'가 유튜브에서 화제를 모으고 있다. 실제로 블랙핑크 목소리로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수록곡 '테이크 다운'을 부른 영상은 조회수 110만건을 돌파하기도 했다. 과거에는 이 같은 이색 조합이 연말 특별 행사에서나 가능했지만, 지금은 명령어 하나만으로도 손쉽게 만들 수 있게 됐다. 유튜브에는 'AI 이찬혁이 콜드플레이(Coldplay) 노래 부른다면?' 같은 AI 커버 영상이 매일 쏟아진다.
이 같은 흐름을 빅테크 기업들도 적극 활용 중이다. 아마존은 AI 음악 생성 서비스 수노를 자사 음성비서 '알렉사(Alexa)'에 탑재했다. "자장가 불러줘"라고 말하면 AI가 즉석에서 새로운 자장가를 작곡해 들려준다. 콘텐츠 제작이 명령 한마디 수준으로 단순화된 셈이다.
게임에서도 DIY(Do It Yourself·개인이 스스로 하는 것) 트렌드는 굳게 자리 잡았다. '로블록스(Roblox)'는 이용자들이 플랫폼 내에서 게임을 만들고 이를 직접 판매할 수 있는 게임 플랫폼인데, 최근 생성형 AI 툴이 도입됐다. 이용자가 보다 수월하게 게임을 설계하고 아이템을 제작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최근 로블록스는 콘퍼런스에서 코드 한 줄 없이도 게임 맵을 만들 수 있는 기능을 공개해 화제를 모았다. 로블록스의 지난 2분기 일간 활성사용자(DAU) 수는 1억1180만명에 달한다.
AI가 콘텐츠 제작을 도와주는 수준을 넘어 사용자가 스스로 콘텐츠를 창조하는 시대가 현실로 다가왔다. 정보기술(IT) 업계 관계자는 "과거에는 플랫폼이 콘텐츠를 공급했지만 이제는 이용자들이 플랫폼을 채워 넣는 구조로 바뀌고 있다"며 "일종의 AI 민주화가 '제2의 유튜브 혁명'을 만들 것"이라고 분석했다.
국내에서도 이 같은 움직임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블로그 등을 바탕으로 강력한 사용자 제작 콘텐츠(UGC) 풀을 보유한 네이버는 서비스 전반에 AI 내재화를 진행 중이다. 네이버는 AI가 자동으로 숏폼 영상을 생성해주는 '오토클립 AI'와 주요 장면을 추출하는 'AI 하이라이트' 기능을 공개하며 크리에이터 도구 지원을 넓혔다.
웹툰에서도 누구나 짧은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공유할 수 있는 플랫폼 '컷츠'를 선보이며 창작자 지원을 강화하고 있다.
네이버는 다음달 미국과 캐나다를 비롯한 북미 시장을 겨냥한 글로벌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콘텐츠 플랫폼 '싱스북'도 출시할 예정인데, 여기에도 AI 기반 콘텐츠가 널리 퍼질 가능성이 크다.
카카오 역시 AI 기반 콘텐츠 생태계 강화에 나섰다. 지난달 23일 '이프 카카오' 이후 카카오톡 세 번째 탭에 숏폼 전용 공간을 마련했으며, 향후 카카오톡 내 자사 AI 모델 '카나나(Kanana)'를 활용한 자동 숏폼 생성 기능도 탑재할 계획이다.
카카오톡에 한발 앞서서 카카오엔터테인먼트는 AI로 웹툰과 웹소설을 숏폼으로 자동 변환하는 서비스 '헬릭스 숏츠(Helix Shorts)'를 도입했다. 여기서는 창작자에게 AI 제작 도구를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국내 대표 게임회사인 NC의 인공지능 전문 자회사 NC AI도 게임 제작의 장벽을 낮추고 있다. '바르코 3D' 서비스가 대표적이다. 기존에 몇 주가 걸리던 3D 이미지 생성을 10분 만에 제작해주는 서비스다. '초고층 빌딩'이라고 치기만 하면 관련 이미지를 만들어주는 방식이다.
텍스트나 이미지에 맞는 배경음악까지 만들어주는 '바르코 사운드'도 주목받는 서비스다. 돈과 기술력이 부족한 인디게임 제작사들의 제작 환경을 크게 개선할 수 있는 AI 도구인 셈이다. NC AI는 바르코 활용 게임 공모전과 개발자 커뮤니티 구축 등을 통해 AI 생태계 확장에 본격 나선다는 계획이다.
AI 업계 관계자는 "AI 창작 시장은 단순한 트렌드가 아니라 콘텐츠 산업 구조 자체를 바꾸는 흐름"이라며 "한국도 기술 인프라스트럭처뿐만 아니라 창작자 교육과 보상 체계를 비롯해 종합적인 지원이 뒷받침돼야 글로벌 경쟁에서 밀리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강영운 기자 / 안선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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