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EC 계기 북미 회담 기대감 높아져
6년 전과 다른 대내 환경... 가능성 낮춰
두 사람 '친분' 강조한 깜짝 만남은 가능
판문점 대신 제3의 장소에서 성사될 가능성

2019년 6월 30일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판문점 군사분계선에서 만나고 있다. AF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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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처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다시 마주설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계기 경주를 방문했을 때 판문점까지 올라가 김 위원장과 만날 수 있다는 겁니다. 24일(현지시간) 아시아 순방길에 오른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과의 회동 의지를 거듭 밝혔고, 남북공동경비구역(JSA)을 관할하는 유엔군사령부가 APEC 기간 판문점 특별견학을 중단한 사실이 알려지며 기대감이 한껏 높아진 상황입니다.

현재로선 북미 정상 간 회동이 준비되고 있다는 유력한 단서가 없다는 게 엄연한 현실입니다. 정부 소식통에 따르면, 유엔사 판문점 특별견학 중단은 "만약의 상황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지 어떤 준비를 하고 있는 정황으로 보긴 어렵다"고 합니다. 위성락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장은 24일 "북미 간에 어떤 움직임이 있는지는 우리도 관심을 갖고 보고 있는데 아직 저희가 알고 있는 바로 새로운 동향은 없다"고 말했습니다.

이러한 신중론의 배경에는 우선 6년 전과 달라진 대내외 환경이 북미 정상 간 만남의 절박함을 떨어뜨리고 있다는 분석이 있습니다. 북한은 이미 상당량의 핵무기를 보유했고, 이걸 유사시 남한, 일본 등 인접 국가뿐만 아니라 미국까지 날려 보낼 수 있는 역량을 갖추고 있습니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최근 북한이 핵무기 100기를 만들 수 있는 고농축우라늄을 보유하고 있다는 분석을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최근 북한이 중국, 러시아와 밀착하는 모습이 상징하듯, 김 위원장은 6년 전과 달리 북핵을 사실상 용인해 주는 든든한 뒷배까지 갖추었습니다. 이를 통해 사실상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가 부분적으로 무력화된 것도 북한이 미국과의 대화를 서두를 필요가 없어졌다는 해석이 나오는 요인입니다.

북한이 미국과의 대화에 앞서 '비핵화 포기'를 조건으로 내세우는 이유도 같은 맥락입니다. 김 위원장은 지난달 최고인민회의 연설에서 "만약 미국이 허황한 비핵화 집념을 털어버리고 현실을 인정한 데 기초하여 우리와의 진정한 평화 공존을 바란다면 우리도 미국과 마주 서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했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8월 25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백악관 오벌오피스에서 결단의 책상에 앉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한국의 입장을 설명 하고 있다. 워싱턴=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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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작 다급한 쪽은 한국입니다. 북한의 '적대적 두 국가' 선언 이후 단절의 벽이 더 높아진 남북 관계 개선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선 북미 대화가 거의 유일한 해법이기 때문입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8월 한미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나서 북미 대화를 이끌면 한국은 '페이스메이커' 역할을 하겠다고 말한 것은 절박한 상황의 방증으로 풀이됩니다.

정동영 장관은 APEC 계기 북미 대화를 촉구하고 나섰습니다. 24일 기자간담회에서 "다른 시간에 북미 정상회담을 추진하기는 실무적으로 많은 준비와 논의를 거쳐야 하므로 이번보다 훨씬 더 어려울 것"이라며 "북미 정상이 이 기회를 놓치면 안 된다, (만남을) 결단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북미 정상 간 회동의 불씨를 살려 남북 관계 개선의 동력으로 삼겠다는 취지로 읽힙니다.

트럼프-김정은, 원산에서 만날 수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8월 15일 메릴랜드주 앤드루스 합동기지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회담이 열리는 알래스카 앵커리지로 출발하기 전 전용기 에어포스 원에 탑승하며 손을 흔들고 있다. 메릴랜드=AF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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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이 북미 회동 가능성을 비관적으로만 보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2019년 6월처럼 두 정상이 결심만 하면 깜짝 회동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당시에도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참석차 일본 오사카를 찾은 트럼프 대통령이 트위터(현 X·엑스)로 김 위원장과의 비무장지대(DMZ) 회동을 제안한 지 32시간 만에 판문점에서 성사된 전례도 있습니다.

과거 친분을 강조하고 있는 두 사람의 만남은 북한이 요구한 '비핵화 배제'라는 선결 조건도 뛰어 넘을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입니다. 미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시드니 사일러 선임고문은 최근 "북미 정상이 단순히 인사를 하는 수준이라면 만날 수 있다"고 전망했고, 빅터 차 CSIS 한국석좌도 "일종의 상황 파악, 접촉 유지 차원에서 둘의 약식 만남은 가능하다"고 내다 봤습니다.

실제 아시아 순방길을 떠난 트럼프 대통령은 24일(현지시간) 전용기 내에서 진행한 기자간담회에서 북미대화의 전제조건으로 북한의 핵보유국 인정을 요구하는 것에 열려 있느냐는 질문에 "나는 그들이 일종의 '뉴클리어 파워'라고 생각한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그들(북한)이 핵보유국으로 인정받아야 한다고 말한다면 글쎄, 그들은 핵무기를 많이 보유하고 있다. 나는 그 점을 말할 것"이라고 덧붙이면서 북미 정상 간 깜짝 회동이 성사되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옵니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에 실린 갈마해안관광지구. 평양=노동신문 뉴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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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만남이 판문점이 아닌 제3의 장소에서 이뤄질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옵니다. 김 위원장 입장에선 과거 아무것도 얻어내지 못한 판문점이 또다시 회동 장소가 되는 그림은 피하려고 할 것이고, 비핵화 포기 확답을 듣지 못한 상황에선 다른 성과와 명분을 만들려고 할 것이라는 겁니다.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서도 APEC에서는 미중 정상회담에 집중하고, 북미 회동을 고려한다면 김 위원장의 초대에 응하는 형식으로 원산으로 날아가 만남을 갖는 통 큰 이미지를 연출할 수 있다는 겁니다. 특히 원산 갈마 관광지구는 트럼프 대통령이 과거 언급한 바 있는 '북한의 아름다운 해안'이 있는 곳입니다.

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원산은 경주에서 비행기로 가면 반나절 일정으로 다녀올 수 있는 거리에 있다"며 "북한으로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방문으로 전 세계의 관심을 집중 시킬 수 있어 좋고,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분쟁 해결사로서 존재감을 보여줄 수 있어 북미 대화 최적의 장소가 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강희경 기자 kstar@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