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이지은 기자] 정부의 의료급여 지출이 2050년 64조원에 달할 것으로 예측되면서 제도의 지속 가능성에 경고등이 켜졌다. 고령화로 의료 수요가 급증하는 가운데 본인 부담이 거의 없는 제도 설계 속 불필요한 의료 이용, 처방약 되팔이 등 도덕적 해이까지 겹치며 재정 누수 우려가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28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사회보장 장기 재정추계 통합모형 구축’ 보고서에 따르면 의료급여는 올해 13조 5000억원에서 2050년 63조 9000억원으로 약 5배 늘어날 것으로 추계됐다. 현행 국고보조율(75.7%)이 유지될 경우 의료급여의 국비 부담은 같은 기간 10조 2170억원에서 48조 4020억원으로 증가한다. 장기요양부담금 중 의료급여 수급자분도 3조 1130억원에서 25조 4050억원으로, 이중 국비 부담분은 1160억원에서 9000억원으로 확대될 전망이다.

(그래픽=이미나 기자)

의료급여는 국민건강보험과 별도로 저소득층의 의료비를 국가가 지원하는 기초생활보장제도다. 대상자는 기준중위소득 40% 이하(1인가구 기준 월 95만 6805원)이거나 부양받을 수 없는 자 등으로 규모는 전 국민의 약 3% 수준이다. 문제는 중장년층부터 수급자 비율이 급격히 증가하고 70세 이상 노인 인구의 급여비가 빠르게 확대되는 등 고령화가 의료급여 지출 확대와 연결되는 구조라는 점이다. 올해도 수급자 수가 예산 편성 당시 예상보다 늘어나 정부는 1341억 2700만원을 증액, 총 8조 8223억원 규모로 추가경정예산안을 편성했다.

재정 증가의 속도에는 구조적 요인뿐 아니라 이용 행태상 문제도 자리하고 있다. 같은 질환으로 여러 병원을 돌며 불필요한 진료를 반복하거나 복용하지 않은 처방약을 다른 사람에게 되파는 등 제도 남용 사례가 이어져왔기 때문이다. 한 대학병원 교수는 “환자 본인부담이 거의 없으니 약을 하루 먹어보고 안 듣는다 싶으면 또 다른 곳에서 새로 처방받는 경향이 있다”며 “중복 진료를 막기 위해 수급권자의 급여일수에 따라 선택의료급여기관제를 적용하고 있으나 실효성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종로구 탑골공원 원각사 노인무료급식소 앞에 어르신들이 점심식사를 위해 줄지어 서 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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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복지부는 일정 부분 본인 부담을 늘리는 방향으로 제도를 손보려 했으나 새 정부 출범 이후 이를 보류한 상태다. 현재 의료급여는 진료 건당 일정 금액을 본인이 부담하는 ‘정액제’로 운영되고 있는데, 정부는 지난 4월 이를 진료비 비율에 따라 부담액이 달라지는 ‘정률제’로 전환하겠다는 방침을 내놨다. 그러나 저소득층의 의료 접근성을 낮춘다는 시민단체들의 반발이 지속되자 복지부는 개편에 관한 모든 절차를 중단하고 의견을 수렴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내년에도 의료급여 수급자는 외래 진료 시 △의원 1000원 △병원·종합병원 1500원 △상급종합병원 2000원 등 현행 정액제 부담을 유지하게 된다.

의료급여 재원을 충당하는 각 시·도의 의료급여기금 운용과 관련해서도 효율성 논란이 제기된다. 현재 의료급여는 국고보조금과 지방자치단체의 매칭액으로 기금을 조성해 건강보험공단이 예탁·집행하는 구조로 운영된다. 회계연도 종료 후 남은 보조금은 반환되지 않고 기금에 적립되는데 국가 재정 여건이 악화되는 상황에서 과도한 적립은 비효율적이라는 지적이다.

국회예산정책처는 “복지부는 시·도별 의료급여기금의 적립금 수준과 연말까지의 적립금 변동 추이를 면밀히 검토하고 이를 반영한 재정절감액을 산정해 적정 규모의 예산을 편성해야 한다”며 “예산 교부 시에도 지자체의 적립금 규모를 충분히 고려해 교부액을 조정함으로써 예산 운영의 안정성과 효율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