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이태원참사 유가족 상담 0건
트라우마 단기적 치료 안 돼…장기적 영향
유가족 트라우마 치료 위한 공간도 필요
“참사 피해자들 특성 고려해 적극적으로 다가가야”
송해진 10·29 이태원참사 유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은 지난 3년간 유가족들이 겪은 트라우마를 설명하며 이같이 말했다. 송 위원장은 “지속적이고 세심한 관리가 필요한데 현재 상담 같은 심리치료 지원 시스템이 전혀 신뢰를 못 주는 게 지금 상황이라고 본다”며 “전화로 주로 이뤄지는 상담 방식도 행정 편의주의적인 관점으로 보이고, 유가족들은 실효성이 없다고 느낀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10.29 이태원참사 외국인 희생자들이 25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서 열린 10.29 이태원참사 3주기 시민추모대회에 참석해 서로를 위로하며 고통과 슬픔을 나누고 있다.(사진=공동취재단) |
29일 서미화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보건복지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이태원 참사 첫해인 2022년 602건이던 유가족 대상 심리지원은 △2023년 488건 △2024년 19건으로 감소했다. 올해에는 유가족 상담이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무안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의 유가족 상담 건수가 지난 7월까지 2391건인 것을 감안하면 이태원 참사의 유가족 대상 심리상담 건수(1109건)는 적은 것으로 분석된다.
현재 재난 및 참사 심리지원은 국가·권역트라우마센터와 시·도 정신건강부서, 광역·기초정신건강복지센터를 통해 이뤄지고 있다. 2014년 세월호 참사나 2022년 이태원 참사, 2024년 여객기 참사, 2025년 대형 산불 참사 등 유가족과 부상자가 많이 발생한 경우 복지부에서 심리지원을 총괄대응한다.
그러나 이태원 참사가 일어난 지 3년이 된 상황에서 유가족들은 아직도 트라우마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유가족들은 정부의 심리지원에 대해 진행 방식과 사후관리 등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것으로 파악된다. 이태원 참사로 숨진 고(故) 최재혁씨의 어머니 김현숙씨는 몇 차례 심리상담을 받았지만 일찍이 포기했다. 김씨는 “참사 이후 너무 힘든 상황에서 심리지원센터가 마련됐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어디로 연락을 해야 할지 몰라 TV방송에서 나오는 자막을 보고 전화를 했다”며 “보건소로 연결돼 두 달가량 전화상담을 받았고 시청 앞 천막이 마련됐을 때도 상담사를 만나 상담을 받았는데 제대로 심리치료를 받는다고 느끼지 못 했다”고 토로했다. 김씨는 “이후 연락이나 사후관리도 없었는데 이번 보건복지부의 ‘연락 드리겠다’는 문자 다음에도 전화가 오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앞서 지난 9월 유가족협의회가 보건복지부에 항의서한을 발송하는 일도 있었다. 당시 복지부는 ‘이태원 사고 심리지원 안내’라는 문자를 보내며 ‘심리지원 서비스 안내를 위해 곧 전화를 드리겠다’고 했고 유가족들은 이태원 참사를 ‘사고’로 마치 축소하듯 표현한 데 유감을 표했다. 문자를 확인하지 못한 유족들은 “잘 지내냐”, “불편한 곳은 없냐”는 일방적 전화를 갑작스레 받고 당혹스러움을 느낀 것으로 전해졌다.
송 위원장은 “공무원, 소방관, 경찰관에 대한 처우도 분명히 문제가 많고 지원이 필요하지만, 저희 같은 피해 유가족들도 사실상 방치되고 있는 상태”라며 “심리상담이 장기적으로 필요한 그런 이들이 있는데 정신과 치료도 제대로 받을 수 있게 해줬으면 좋겠고 상담 같은 경우 민간 영역도 활성화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재난과 참사 유가족들의 트라우마가 오랜 시간 이후에도 부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어 장기적인 심리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특히 대상자들을 장기적으로 추적·관리할 수 있는 체계도 마련할 필요성도 제기된다.
참사 특성상 진상 규명을 우선으로 하는 유가족들이 정부의 심리 치료 지원 등 정책에 미온적인 반응을 보이더라도, 정부가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진희 대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참사 후 애도에서 회복까지 나아가 ‘이제 상담을 받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야 하는데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은 정부에 대한 불신 등으로 국가 제공 서비스를 거부하는 특징이 있었다”며 “참사나 재난 회복에는 많은 요인이 필요하기 때문에 정부의 태도나, 사회적 시선 같은 부분도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백종우 경희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우리나라 시스템이 현재 심리적 응급처치에 대해선 어느 정도 진행이 되고 국가트라우마센터가 생겨서 나아가는 상황인데 당장 장기적인 서비스를 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며 “재난·자살 유가족 등 고도 트라우마군을 위한 별도 전문치료센터 설립이 필요하고 장기적인 케어를 받을 수 있게 해줘야 한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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