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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06 (토)

    이슈 로봇이 온다

    로봇이 만드는 로봇···엔비디아 날개 다는 한국 제조업, 르네상스 열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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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엔비디아, GPU 26만 장 우선 공급
    로봇·AI 결합 통해 생산 효율 높여
    저임금 내세운 中 추격 따돌릴 기회
    모든 제조업 존재하는 韓 최적 환경
    "특정 기업 집중 땐 격차 벌어질 우려"


    한국일보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10월 31일 경북 경주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의체(APEC) CEO 서밋에서 특별세션 기조연설을 마친 후 손을 흔들고 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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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봇이 로봇을 조율하고, 로봇이 만든 제품이 또 로봇이라는 구조가 바로 인공지능(AI)의 미래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10월 31일 경북 경주시 경주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CEO 서밋' 특별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데이터를 처리·인식하는 수준에 그쳤던 초기 AI는 텍스트·이미지를 생성하고(생성형), 사람 대신 작업을 수행하기에(AI 에이전트) 이르렀다. 다음 4세대는 로봇과 AI가 결합된 피지컬 AI가 될 것이라는 게 젠슨 황의 진단이다. 그러면서 그는 소프트웨어·AI·제조업 삼박자를 갖춘 한국을 차세대 AI 구현의 핵심 파트너로 꼽으며 그래픽처리장치(GPU) 26만 개 공급을 약속했다. "한국을 피지컬 AI 테스트베드(시험장)로 보는 것 같다"(하정우 대통령실 AI 미래기획수석)는 분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저렴한 인건비와 규모의 경제를 앞세운 중국에 밀려 갈수록 쇠락해가고 있는 우리나라 전통 제조업이 경쟁력을 끌어올릴 기회를 잡았다. AI 시대의 '총알'로 불리는 GPU를 대량으로 확보해 AI 전환(AX)을 본격적으로 추진할 수 있게 되면서다. 이광형 한국과학기술원 총장은 4일 "국내총생산(GDP)에서 28% 비중을 차지하는 제조업을 살릴 길이 막막했는데 피지컬 AI로 찾았다"며 AX로 기존 공장의 생산 효율을 높여 중국의 저임금을 방어할 수 있다고 했다. 다만 제조업 분야의 피지컬 AI 전환이 걸음마 단계라는 점에서 섣부른 기대는 금물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가상 세계에서 칩 실험



    한국일보

    그래픽=강준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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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엔비디아발(發) 피지컬 AI 전환의 첫 단계는 현실 세계를 가상 공간에 그대로 구현하는 디지털 트윈을 구축하는 것이다. 챗GPT 같은 거대언어모델(LLM)은 언어·이미지·영상 데이터만으로도 학습이 가능하지만 피지컬 AI는 중력, 마찰력, 무게 중심 등 현실의 복잡한 물리 법칙과 변수까지 알아야 한다. 이때 현실 세계를 디지털에 복사하는 '옴니버스', 현실의 물리 법칙과 움직임을 가상에 구현하는 '코스모스' 같은 엔비디아 플랫폼이 쓰인다. 이 가상의 훈련장에서 자율주행 로봇이 연습을 하고 로봇이 공장에서 부품을 조립하는 셈이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현대차 모두 엔비디아 GPU와 플랫폼을 활용해 반도체 및 자동차 제조 공정을 3차원(3D) 가상 공간에 구현하겠다고 밝힌 배경이다.

    이 같은 디지털 트윈화(化)만으로도 생산성 증대가 기대된다는 게 기업들의 설명이다. 반도체 산업의 경우 나노(10억 분의 1m) 단위로 집적도가 높아지면서 칩을 개발할 때 실험 조건의 가짓수가 빠르게 늘고 있는데 디지털 트윈 시뮬레이션을 활용하면 개발 기간을 크게 줄일 수 있다고 한다. 젠슨 황은 5월 대만에서 열린 ‘컴퓨텍스 2025’ 전시회에서 TSMC·폭스콘을 비롯한 대만 주요 IT 기업들이 디지털 트윈을 도입해 설계 및 제조 순서를 최적화해 비용을 아끼고 있다고 소개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전날(3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SK AI 서밋에서 중장기적으로 SK하이닉스의 반도체 생산 공장을 완전 자동화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자율주행차 '무한 학습'



    한국일보

    사진은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기간 경주엑스포대공원 에어돔 현대자동차그룹관 내를 자유롭게 활보하고 있는 보스턴다이내믹스의 4족 보행 로봇 스팟(SPOT). 현대차그룹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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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차의 자율주행 기술 고도화도 탄력을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는 도로 환경에서의 자율 주행 시험은 정부가 지정한 42개 지역에서만 가능하다. 하지만 엔비디아 GPU, 코스모스 플랫폼을 활용해 현실의 물리 법칙이 적용된 가상 환경에서 자율주행 로봇이 각기 다른 도로 형태와 지형지물, 보행자 돌발 움직임 등 다양한 변수를 경험할 수 있게 됐다. 또 자회사인 보스턴다이내믹스가 개발한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 등도 엔비디아 기반 시뮬레이션을 거쳐 실제 공정에 투입하기 전 안전성과 효율성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젠슨 황은 피지컬 AI 구축 과정에 대해 "(두뇌 격인) AI 모델을 대규모 시스템에서 학습하고, (가상) 시뮬레이션 환경에서 반복 훈련하고 이렇게 학습된 AI를 실제 로봇에 (칩 형태로) 이식해 배포한다"고 했다. 한재권 한양대 로봇공학과 교수는 "(디지털 트윈에서 로봇을 훈련한 뒤) 현실 공장에서 검증을 해야 하는데 반도체·조선 등 모든 분야의 제조업이 존재하는 한국이 최적의 환경"이라며 "엔비디아와의 협력은 제조업 부활의 기회"라고 했다.

    다만 신중론도 나온다. 이날 송기영 홀리데이로보틱스 대표는 SK AI 서밋 2일 차 행사에서 "제조업에서 다양한 시도가 있었지만 의미 있는 상용화까지 간 기업은 많이 없다"고 했다. 일부에서는 엔비디아 GPU가 특정 대기업에 집중되면서 대·중소기업 간 AX 격차가 벌어질 수 있다는 걱정도 있다.

    박준석 기자 pj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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