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층 건물이 종묘 가치를 훼손한다는데 뭘 훼손한다는 건지 모르겠어요. 시야를 훼손한다는 건가요. 종묘의 중심 건물인 정전에 가보면 커다란 나무가 둘러싸고 있어서 시야를 딱히 훼손하는 것도 없어요."
문화체육관광부와 국가유산청이 지난 7일 문화유산 가치 수호를 명분으로 서울 종묘 맞은편에 고층 건물이 들어서는 것을 적극 반대하고 나섰지만 정작 종묘를 가장 오랫동안 렌즈에 담아온 사진작가 배병우(75·사진)는 이날 매일경제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고층 건물이 들어서면 오히려 종묘를 더 우리의 자랑거리로 만들 수 있다"며 "서울만의 독특한 미학을 완성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반박했다.
앞서 서울시는 세운상가 옆 세운4구역에 대해 건축 가능 높이를 완화하는 계획을 고시했으며 대법원도 문체부가 서울시를 대상으로 제기한 소송에서 지난 6일 서울시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대법원 판결 하루 만에 최휘영 문체부 장관이 "모든 수단을 강구해 우리 문화유산인 종묘를 지키는 일에 앞장서겠다"며 사실상 '불복'을 선언해 논란을 키우고 있다.
배 작가는 종묘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던 1995년부터 삼성문화재단의 요청을 받아 총 5년에 걸쳐 종묘를 집중 촬영한 종묘 전문 작가다. 눈 덮인 정전을 촬영한 작품을 통해 종묘의 아름다움을 세계에 알린 주역이기도 하다. 유홍준 국립중앙박물관장도 "종묘 하면 배병우"라고 치켜세울 정도다.
그런 그가 "세계적인 건축가 프랭크 게리가 감탄했던 종묘 풍경은 정전에서 시내를 바라본 게 아니라 월대 밑에서 정전을 바라봤을 때 일직선상의 미니멀함"이라며 "정전은 앞면이 중요하지, 정전에서 세운상가 보는 방향은 큰 상관이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제가 정전을 찍을 때만 해도 나무가 별로 안 컸는데 지금은 꽤 자라 숲이 됐다"며 "종묘광장공원에서 종묘 입구까지 거리가 상당하고 또 입구에서 정전까지 거리가 수백 m라 시내에 고층 건물이 들어선다고 해도 문제없다"고 말했다.
과거 경복궁 근정전 앞 구 조선총독부 건물이었던 중앙청 철거 당시에도 비슷한 논란이 일었다. 그는 "경복궁 근정전 계단에 서서 시내를 바라보면 세종로 빌딩 숲이 보인다"며 "많은 이가 처음엔 반대했지만, 이제는 오히려 그 드라마틱한 풍경에 외국인들도 감탄한다"고 말했다.
배 작가는 발상의 전환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바로 고층 빌딩에서 내려다보는 종묘의 관점이다. 그는 "종묘의 아름다움은 땅에서 정면으로 바라보는 것에만 있지 않다"며 "고층 빌딩에서 내려다보면 종묘 정전의 기와지붕이 이루는 기하학적이고 미니멀한 선이 또 다른 차원의 아름다움을 선사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도심 한가운데 경복궁과 종묘, 창덕궁 등 거대한 역사 공간이 숨 쉬는 서울의 독특한 구조를 높은 곳에서 조망할 수 있게 된다면, 이는 세계적으로 자랑할 만한 유산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자칫 경직된 문화유산 규제가 서울을 재미없는 정체된 도시로 만들 수 있다는 얘기다.
그는 "자신은 정치를 잘 모른다"고 전제한 뒤 "청계천이 서울 사람들을 숨 쉬게 했듯이 세운상가 지역에 공원과 녹지를 조성해 남산과의 연결 고리를 만드는 개발이 이뤄진다면 오히려 종묘는 더욱 빛을 발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향휘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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