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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09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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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체 속 곤충으로 사망시각 추정, 실마리 찾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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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일경제

    "숨을 거둔 사람의 몸 안에는 새로운 생태계가 만들어지고, 곧 하나의 우주가 됩니다. 법의곤충학자는 파리나 딱정벌레 등 곤충을 통해 새로운 생태계가 생성되는 시간을 추정하는 것이지요."

    박성환 고려대 의대 법의학교실 교수(52)는 "시신은 하나의 생태계이기 때문에 그 생태계 안에서 나타난 곤충의 변화를 분석하면 죽음 이후 시간의 흐름을 알 수 있다"고 강조했다. 법의곤충학은 '변사체와 관련한 곤충 증거를 다루는 학문'으로, 고인이 언제 사망했는지 추정하는 게 가장 큰 목적이다. 파리나 구더기, 딱정벌레 등의 성장 단계를 통해 사후 경과 시간을 추정한다.

    박 교수는 23년간 법의학 분야에 종사하며 국내 법곤충 감정 기법을 도입한 공로로 지난 4일 경찰청이 주관한 제77주년 과학수사의 날 기념식에서 '제21회 과학수사 대상'을 받기도 했다. 국내 법의곤충학의 개척자인 박 교수는 국내에서 최초로 동물의 사체를 먹이로 삼는 시식성 파리 30여 종의 분자생물학적 데이터를 마련한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현재는 경찰과 '법곤충 감정 기법 고도화 사업'을 진행하며 국내 파리 10종과 딱정벌레 1종의 환경별 사육 데이터 등을 수집·분석하고 있다.

    박 교수는 2005년 지도교수인 황적준 고려대 의대 교수의 권유로 법의곤충학에 발을 들였다. 황 교수는 국내 법의학 1세대 권위자로, 법의학계에 법곤충학을 정착시킨 인물이다.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부검의로도 알려져 있다.

    박 교수는 이후 10여 년간 수없이 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다. 무엇보다 국내 생태계에서 시신에 모여드는 곤충에 대한 기초 데이터가 전무했고, 실제 수사 현장에서의 활용도도 높지 않았다. 경찰도 법의곤충학이 선진화된 수사 기법이라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국내에선 데이터 부재 등을 이유로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어려웠다.

    그러던 중 세월호의 실질적 선주였던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변사 사건이 분수령이 됐다. 당시 유씨의 마지막 행적이 확인된 날짜(2017년 5월 25일)와 시신이 발견된 날짜(6월 12일) 간의 공백이 너무 큰 상황이었다. 박 교수는 "당시 법의학 연구실에 있던 신상언 박사가 6월 2일을 생존해 있을 수 있던 마지막 시각으로 추정했다"며 "나중에 폐쇄회로(CC)TV를 확인 결과 5월 29일까지 살아 있었던 것으로 추정돼 연구실의 추정이 부합했다"고 밝혔다. 이를 계기로 국내 수사기관의 법의곤충학에 대한 관심이 크게 높아졌다.

    최근에 박 교수는 전문업체와 협업해 법의곤충학에 인공지능(AI)을 접목시키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연구실에서 자체적으로 구더기 사진을 보여주고 파일럿 테스트한 결과 약 80%의 정답률을 보였다. 박 교수는 "생성형 AI까진 못되더라도 최소한 구더기 등을 계측한 값과 지역, 기후 등을 입력하면 통계적으로 가능성이 높은 종을 알려주는 소프트웨어 개발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양세호 기자 / 사진 김재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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