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국영 3개 항공사, 일본행 항공편 취소 무료 제공…
중국, 대일 외교 강경화…다카이치 총리 외교력 시험대
지난달 31일 경주에서 열린 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만나 악수하고 있다./AFPBBNews=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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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유사시 일본의 집단 자위권 행사 가능성을 시사한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의 발언 이후 중일 관계가 급격히 경색되고 있다. 중국은 일본 여행 자제령을 내리며 경제적 압박 카드를 꺼내 들었다. 다카이치 총리의 대중 외교가 취임 한 달 만에 시험대에 올랐다.
16일 니혼게이자이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중국국제항공, 중국남방항공, 중국동방항공 등 국영 3대 항공사는 일본행 항공편의 일정 변경이나 취소를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민영 항공사인 쓰촨항공과 하이난항공도 같은 조치에 나섰다. 앞서 14일 중국 외교부가 '안전 우려'를 들어 일본 여행을 자제하라고 권고한 뒤 나온 움직임이다.
중국 외교부는 위챗 계정 공지를 통해 "중국 외교부와 주일 중국대사관·영사관은 가까운 시일 내 일본 방문을 엄중히 주의할 것을 알린다"며 "현재 일본에 체류 중인 중국인은 현지 치안 상황을 면밀히 확인하고 안전 의식을 높여야 한다"고 밝혔다. 이후 홍콩 당국 역시 15일 해외여행 정보 홈페이지에서 "올해 중반부터 중국 시민을 대상으로 한 공격이 점차 증가하고 있다"면서 일본 여행 시 경계를 강화할 것을 촉구했다. 중국의 일본 여행 자제 권고에 따른 후속 조치로 풀이된다.
여행 자제령과 관련해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은 "일본 측의 인식과는 맞지 않는다"면서 "중국 측에 공식적으로 항의하고 적절한 대응을 강력히 요구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정상 간에 확인한 전략적 상호이익 관계의 추진과 건설적·안정적 관계 구축이라는 큰 방향성과도 맞지 않는다"면서 "입장 차이가 있는 만큼 양국의 다층적 의사소통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에버코어ISI의 네오 왕 중국 거시경제 애널리스트는 블룸버그를 통해 "중국이 자국 관광객의 소비력 카드를 쥐고 대만 문제에서 다카이치 총리의 태도나 발언에 대한 대가를 키우려는 의도"라고 분석했다. 일각에선 중국이 교류나 무역, 기업활동을 포함한 다양한 분야에서 추가 조치를 검토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일본은 과거에도 중일 관계 악화로 관광업이 불똥을 맞은 전례가 있다. 2010년 9월 영유권 분쟁을 벌이는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인근 해역에서 일본 해상보안청이 중국 어선을 나포한 뒤 외교 마찰이 심화해 이듬해 중국인 방일 관광객이 전년 대비 26% 줄었다. 2012년엔 일본의 센카쿠열도 국유화로 중국에서 대규모 반일 시위가 벌어져 한때 중국인 관광객이 전년 대비 40% 급감하기도 했다.
때문에 이번에도 경계심이 적지 않다. 외국인 숙박객의 약 1/3이 중국인인 한 대형 호텔 관계자는 "단체 예약 취소가 이번 주 이후에 나올 수 있다"고 내다봤다. 지난 회계연도 면세점 매출의 약 58%를 중국인에 의존했던 다카시마야 백화점은 "매출에 영향이 나올 수 있다"며 "앞으로 상황을 주시할 것"이라고 했다. 일본정부관광국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인 여행객의 소비액은 1조7265억엔(약 16조2600억원)으로 전년 대비 2.3배 늘었다. 전체 외국인 소비액의 21.2%를 차지한다.
중국에서 사업을 운영하는 일본 기업들도 중일 관계 악화로 인한 여파를 느끼기 시작했다. 한 일본 기업의 중국 법인 임원은 "이번 문제로 중국 정부 관련 기업들과 사업 논의가 진행되지 않고 있다"고 귀띔했다. 또 다른 일본 기업 임원은 중국 소셜미디어에서 제품 홍보를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AFPBBNews=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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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의 발단은 7일 다카이치 총리의 의회 발언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다카이치 총리는 대만 유사시는 일본이 집단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는 '존립 위기 사태'에 해당할 수 있다고 밝혔다. 중국이 대만을 상대로 해상 봉쇄 등 무력 행동에 나설 경우 일본이 '집단 자위권'을 발동할 수 있음을 현직 총리가 처음으로 공식 석상에서 시사한 것이다.
이후 쉐젠 주오사카 중국 총영사는 "멋대로 들이박아 오는 그 더러운 목은 한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베어버릴 수밖에 없다. 각오가 되어 있느냐"며 거친 대응에 나섰다. 일본 여론은 발끈했고 일본 정부는 주일 중국 대사를 초치하며 강하게 항의했으나 중국 측은 쉐 총영사를 줄곧 옹호하고 있다. 일본에선 쉐 총영사를 '외교적 기피 인물'로 지정해 국외 퇴거를 요구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중국과 일본이 대립의 출구를 찾지 못하면서 다카이치 총리의 대중 외교도 시험대에 올랐다. 안 그래도 중국은 강경 우익 성향의 다카이치 총리 취임에 적잖은 경계심을 보이던 터다.
구라다 도오루 릿쿄대학 교수는 아사히신문을 통해 "이번 사태를 계기로 중국 정부는 다카이치 정권에 강경 조치로 방향을 정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한번 확정된 방향성은 최고 지도부 수준에서 큰 전환이 없는 한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다. 다카이치 정권에서 중일 관계는 상당히 긴장된 상태가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한편 다카이치 총리는 발언에 대해 철회할 뜻이 없단 입장을 밝혔다. 니혼게이자이는 다카이치 총리의 발언은 안보 전문가들 사이에선 이전부터 반복적으로 논의된 내용이라 이를 철회할 경우 총리가 스스로 집단 자위권을 행사할 여지를 좁히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짚었다.
윤세미 기자 spring3@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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