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2.06 (토)

    [전동근의 대한민국 방산AI ②] 국산화율보다 중요한 것은 '수출화율'이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전자신문

    '절충교역(Offset Trade)'은 방위산업에서 오랫동안 사용되어 온 개념이다. A국이 B국의 무기를 구매할 때, 그 대가로 B국이 A국의 부품을 일정 비율로 구매하거나 기술이전을 해주는 방식이다. 1990년대 대한민국이 F-15와 F-16을 도입할 당시만 해도 '외산 의존'이 당연시되었다. 그러나 절충교역을 통해 기술이전이 이루어졌고, T-50 고등훈련기와 FA-50 경공격기를 거쳐 마침내 KF-21 보라매의 기술적 기반을 확보하게 되었다.

    1970년, 국방과학연구소 설립 이후 대한민국은 반세기 넘게 외산 기술을 추격하며 '국산화'에 매진해왔다. 그러나 이제는 질문을 바꿔야 한다. “얼마나 우리가 자체 기술로 만들었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우리가 세계 시장에 팔고 있는가?”로 말이다.

    지난 5년간 한국의 방산 수출은 폭발적으로 성장했고, 주요 방산기업들의 시가총액은 10배 가까이 커졌다. 폴란드를 비롯한 여러 국가들이 대규모 무기체계를 도입하면서, 이제는 우리가 현지 공장을 짓고 기술이전을 해주는 '공급국'의 위치에 서게 되었다. 과거 기술을 받던 나라에서 기술을 수출하는 나라로 변한 것이다. 따라서 이제는 국산화율이 아닌 수출화율'이 우리 산업의 새로운 전략 지표가 되어야 한다.

    ■ 국산화율 신화의 그림자

    국산화율은 지난 수십 년간 대한민국 방산의 자부심이었다. 그러나 이 지표에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 국산화율은 본질적으로 내수 순환형 지표이기 때문이다. 내수 중심의 기술개발과 산업 보호를 강조하는 과정에서 '글로벌 경쟁력'이라는 더 큰 목표가 희미해졌다.

    방산은 '기술 경쟁'이 아니라 '공급망 전쟁'이다. 기술은 국산화될 수 있어도, 시장은 반드시 국경을 넘어야 한다. 국산화율 90%의 무기체계를 만들어도 수출 한 건 없으면 그것은 '자립'이 아니라 '고립'이다. 더 큰 문제는 '국산화율을 위한 국산화'다. 실질적 기술 내재화보다는 단순 조립과 비핵심 부품 국산화를 통해 수치만 부풀리는 현상이 반복되어 왔다. 결과적으로 국산화율은 경쟁력의 지표가 아니라 통계상의 안도감을 주는 숫자로 변질되었다.

    ■ 이제는 '수출화율'의 시대

    앞으로 방산의 경쟁력은 “우리가 얼마나 만들었느냐”가 아니라 “세계가 얼마나 사 가느냐”로 평가받게 될 것이다. '수출화율(Exportization Rate)'은 단순한 판매량의 개념이 아니다. 그것은 기술, 인력, 제도, 시장구조 전반이 글로벌 표준에 얼마나 부합하는가를 측정하는 새로운 척도다.

    수출화율은 세 가지 축으로 구성된다.

    1. 기술의 개방성(Open Architecture)-외국 플랫폼과의 연동 가능성 및 현지국가 부품과의 호환성

    2. 규제의 유연성(Export Compliance) -- ITAR, DSP, EAR 등 국제 수출 규정의 내재화

    3. 시장 대응성(Market Responsiveness) -- 빠른 의사결정과 소규모 맞춤형 생산 체계

    이 세 가지를 충족하지 못하면, 아무리 뛰어난 국산 기술도 세계 시장에서는 “닫힌 시스템”으로 분류된다.

    ■ 수출화율의 핵심은 'Sovereign AI'

    미래 방산의 중심은 무기 하드웨어가 아니라 AI 자율성(AI Autonomy)이다. 진정한 '국산화'란 AI를 국내에서 개발했다는 것이 아니라, 그 AI가 한국의 전략·법·작전철학에 따라 학습되고 운용되는가에 달려 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러한 Sovereign AI는 '수출'을 통해 더 강해진다. 미국의 Shield AI와 Anduril, 그리고 이스라엘의 Rafael은 모두 동맹국과의 실전 협업을 통해 AI를 발전시켰다. AI는 데이터 생태계 속에서만 진화하기 때문이다. 폐쇄적인 국산화 정책은 AI 발전을 가로막는다. 대한민국이 진정한 Sovereign AI 강국이 되려면, 데이터 주권을 지키면서도 동맹국과 AI 생태계를 공유하는 수출 전략을 선택해야 한다.

    ■ 수출화율 중심의 생태계로 재편해야 한다

    '수출화율' 중심 사고는 국가 전략과 산업 구조 전반을 바꾼다. 이러한 생태계를 재편하기 위해서는 첫번쨰 방위사업청(DAPA)의 역할 변화가 필요하다. 국산화율 중심의 평가기관에서 벗어나, 수출형 생태계 설계자로 변해야 한다. R&D 평가 기준도 기술 내재화보다 수출 잠재력 중심으로 재편해야 한다. 두번째, 민간 주도형 수출 플랫폼 구축-중소기업과 스타트업이 글로벌 기업과 직접 협력할 수 있는 Defense Tech Export Platform을 마련해야 한다. 단순한 수출 바우처 지원이 아니라, 해외 군사 규정·계약 체계·인증 체계를 내재화한 플랫폼형 지원이 필요하다. 세번째, 'AI+국방 수출 데이터 센터' 설립 - 각 무기체계의 AI 데이터를 국가 차원에서 통합 관리하고, 해외 파트너와 실시간 검증 가능한 디지털 트윈 (Defense Digital Twin)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이는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데이터 주권과 동맹 신뢰의 문제다.

    ■ 수출화율은 대한민국의 다음 50년 전략지표다

    지난 50년간 대한민국은 '국산화율'을 향한 집념으로 성장했다. 그 결과 K2 전차, K9 자주포, FA-50, 천무, 현무 등 세계적 무기체계가 탄생했다. 그러나 앞으로의 50년은 '수출화율'이 국가 경쟁력을 결정지을 것이다.

    한국형 전투기 KF-21이 폴란드·호주·사우디 상공을 날고, 한국형 AI 기술이 NATO 작전망에 통합되는 날--그때 비로소 우리는 “진정한 국산화”를 이뤘다고 말할 수 있다. 진정한 기술 자립은 고립된 울타리 안이 아니라, 세계 시장의 정중앙에서 완성된다. 국산화율은 출발점이었다. 이제 수출화율이 우리의 종착점이 되어야 한다.

    전동근

    대한민국 방산AI 스타트업

    퀀텀에어로 이사회 의장

    소성렬 기자 hisabisa@etnews.com

    [Copyright © 전자신문. 무단전재-재배포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