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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은 호스피스였다. 키우던 강아지가 노환으로 여러 질환을 앓았다. 간병은 쉽지 않았다. 매일 호흡수를 기록하고 정해진 시간대에 여러 종류의 약을 먹였다. 밥은 손으로 주고 주사기로 약을 먹인다. 평일 약속은 없애고 주말에도 외출을 삼갔다. 지갑고생도 작지 않았다. 간병 파산이라는 단어가 눈에 어른거렸다. 당당하게 집을 순찰하고 애견유모차에서도 장군처럼 고개를 빳빳하게 들고 있던 그가 맥없이 하루종일 누워있다는 사실이 슬퍼 눈물이 차올랐다. 간병과 병원비는 고달팠지만 허락된 시간에 감사한 나날이 계속 됐다.
17년 견공으로서의 삶에 쉼표가 가까워져왔다. 반려동물 안락사는 최선을 다하기 싫은 보호자의 비겁한 단어라고 생각했는데, 아파서 잠도 못자는 친구를 보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배변도 제대로 못하고 하루종일 누워만 있는 이 친구를 내 욕심으로 붙잡는 게 아닐지 반문했다. 장례도 고민했다. 우리 품이 고향인 이 친구를 알지도 못하는 납골당에 두고 싶지 않았다. 간헐적으로 발작이 왔다. 어느 밤 우리는 다 같이 거실에서 잤고, 며칠 뒤 그 친구는 유골보석으로 찾아왔다. 가장 좋아하던 침대 위에 항상 쓰던 이불을 덮어서 올려놓았다. 매일 출퇴근 인사를 나눈다. 내 마음은 그와의 기억에 마침표를 찍지 못해서 여전히 사진을 뒤적인다.
심야 시간 지상파 다큐멘터리에서만 볼 수 있던 존엄사는 이제 드라마의 소재가 됐고 고령화사회의 청년들도 한 번쯤은 고민할 법한 사안이 됐다. 웰다잉을 정의내리기 어렵지만 연명이 좋은 죽음이 아니라는 사회적 합의는 생기고 있다. 한국은 2016년 연명의료결정법을 제정했고 죽음의 문턱에 와 있을 때, 생명 유지에 필요한 치료를 중단하는 소극적 안락사를 허용했다. 현재까지 약 300만 명이 연명 치료 거부 사전의향서를 남겼다고 한다.
죽음은 피할 수 없고 예고하지도 않는다. 그렇기에 어떻게 잘 떠나고, 잘 보낼지 이야기해야 한다. 어렵다. 원초적 두려움이 엄습한다. 하지만 피할 수 없기에 자문해봐야 한다. 우선, 웰다잉은 입원 전부터 준비해야 한다. 자식은 부모와 나눈 시간을 잊지 않고 기릴 방법을 고안해야 한다. 사진과 영상 그리고 음성은 필수다. 부모는 사후 뒷정리를 할 자녀를 배려해야 한다. 짐정리부터 사후 장례에 대한 유언까지 말이다.
대부분의 삶은 병원 침대 위에서 끝날 확률이 높다. 잦은 입퇴원과 오랜 병원 생활을 통한 연명은 구원인지 혹은 보호자의 죄책감을 구제하는 장치인지 도덕적으로 모호하다. 장례 역시 마찬가지다. 1년에 두어 번 가는 납골당에 모시는 게 올바른 기림일지 고민해봐야 한다. 내가 떠나 보낸 이를 온전하고 진심으로 기릴 수 있는 방법을 담는 것이 진정한 장례다. 집에 둘 수 있는 사진과 작은 유골 보석도 방법이 될 수 있다.
내 마지막을 어떻게 할지는 노년에 정하면 되는 문제였고, 그게 당연했다. 하지만 앞으로는 다르다. 고령화시대에 존엄사와 장례 문화는 자주 화두에 오를 것이며 남은 시간을 어떻게 밀도 높게 보낼지에 대한 고민도 많아질 것이다. 우리도 한 번 생각해보자. 생애 한 번뿐인 죽음을 가장 후회없이 보낼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그 시간을 어떻게 하면 더 의미있게 보낼지 말이다.
구현모 뉴스레터 어거스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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