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동우 무대미술가·연출가·홍익대 교수 |
"첨성대는 ( )이었다."
1. 위 문장의 ( ) 안에 들어갈 말로 적합한 것은?
① 별을 관측하는 천문대
② 절기를 관측하는 규표
③ 불교의 수미산
④ 마야부인의 우물
최근 경주에서 APEC 정상회의가 열리고 그 축하행사의 일환으로 첨성대 미디어아트쇼가 있었다. 오색 빛이 걷히고 신라의 천문관측관이 사다리를 타고 첨성대 중간에 있는 구멍으로 들어가 그 속에서 다시 사다리를 타고 꼭대기에 올라 하늘을 바라보는 영상이 첨성대에 투사됐다. ①번을 재현한 장면이다.
사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①번을 선택할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정답으로 채점될 것이다. 천문대설은 고려시대 승려 일연이 쓴 '삼국유사' 중 "선덕여왕 대에 돌을 다듬어 첨성대를 쌓았다"는 대목에서 출발한다. 이후 조선조 '세종실록지리지'에서는 "그 가운데를 통하게 하여 사람이 가운데로 올라가게 되어 있다"는 기록이 더해진다. 그리고 첨성대 건립 후 약 900년이 지나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드디어 "사람이 속으로 오르내리면서 천문을 관측한다"는 내용이 추가됐다. 첨성대라는 이름이 '별을 쳐다보는 높은 단'이라는 뜻이었으니 의심하기 어려운 설이었다.
그러나 현대에 와서 여러 다른 설이 등장했다. 1964년 전상운 성신여대 교수는 ②번 규표 설을 주장하면서 처음으로 천문대 설에 반기를 들었다. 1973년 이용범 동국대 교수는 불교의 세계관에서 세상의 중심에 있다는 ③번 수미산을 형상화하여 별에 제사를 지내던 제단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2009년 정연식 서울여대 교수는 선덕여왕의 신성성을 위해 세운 ④번 마야부인 우물 설을 발표했다. 그 외에도 많은 설의 도전이 있다.
그렇다면 ①번은 왜 이러한 도전을 받고 있을까. 그 이유는 현존하는 다른 천문대들이 반증해준다. 세종 때 만들어진 '관상감 천문대'는 현재 종로구 계동 현대건설 사옥 앞에 보존돼 있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1913년에 촬영된 사진에는 돌계단이 포함돼 있다. 그리고 창경궁 정원에 있는 '관천대'에도 돌계단이 있다. 건축은 기능을 따르게 돼 있다. 천문대의 핵심업무를 수행하려면 우선 계단을 거쳐 평평한 높은 단 위에 올라서야 한다. 하지만 경주 첨성대에는 계단도, 평평한 단도 없다. 게다가 허리춤에 있는 구멍은 출입구라고 하기엔 너무 높고 좁다. 내부에서 꼭대기에 오르기도 대단히 위험하다. 천문대로 쓰기엔 너무나 불합리한 시설이다.
그렇다면 첨성대는 무슨 시설이었을까. 경주 위성지도를 펼쳐 놓고 공연예술가의 눈으로 살펴본다. 신라의 궁궐인 월성의 북서쪽 약 700m 지점에는 대릉원이 있다. 거기엔 황남대총, 천마총, 금관총 등 수많은 고분이 있다. 그 옆 동쪽에는 발굴 중인 쪽샘지구 고분군 유적지가 있고 이어서 그 옆에는 인왕리 고분군이 있다. 경주에는 일제강점기에 확인된 고분만도 155기에 이르고 지금도 계속 발굴 중이다. 앞으로 얼마나 더 발견될지 모른다. 경주는 도시 전체가 수백 개의 고분으로 이뤄진 하나의 거대한 신전이다. 신라 궁궐 월성에서 바라본 그 고분군 바로 앞에 첨성대가 서 있다. 첨성대는 그 신전 앞에 세워진 '향로'가 아니었을까.
향로는 정성껏 향을 피워 하늘에 닿게 하는 제기이자 불보살에게 향을 공양하는 도구다. 향을 피워 연기를 올리려면 하부에서 공기가 공급되고 상부는 열려 있어야 한다.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첨성대 허리에 난 구멍에 향나무를 넣고 불을 붙인 후 내려와 사다리를 치우면 연기가 상부의 구멍으로 피어 올라간다. 향로의 규모가 커지면 봉수대와 그 구조가 같아진다. 남산의 봉수대를 보면 첨성대와 구조가 똑같다. 둘 다 연기를 피워 올리는 시설물이기 때문이다. 3D프린터로 첨성대를 출력하고 그 속에 향을 피워 보았다. 완벽한 향로였다. 수백 개의 고분으로 이뤄진 거대한 신전, 그 앞에 세워진 첨성대.
( ) 안에 들어갈 또 하나의 항목을 감히 제시해본다.
⑤ 향로
박동우 무대미술가·연출가·홍익대 교수
Copyright ⓒ 머니투데이 & mt.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