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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11 (목)

    타협 없는 의료계…“냉철하게 되돌아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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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의사협회가 16일 전국의사 대표자 궐기대회를 열고 서울 여의도 인근에서 가두 행진을 하고 있다. 이찬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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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가 추진하는 성분명 처방 도입 등 의료제도 개선안을 ‘악법’이라 규정한 의료계가 투쟁 수위를 높이고 있다. 의약품 품절과 지역의료 공백 해소를 위한 개편안에도 의료계가 반대하는 것을 두고 환자 안전을 내세워 기득권 수호에만 몰두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된다.

    19일 정부와 국회 등에 따르면 비수도권 지역 의료인력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지역의사제’ 법안이 지난 18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 문턱을 넘었다. ‘지역의사 전형’으로 선발한 의과대학 신입생들에게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학비·기숙사비 등을 지원하고, 의대 졸업 후에는 최대 10년간 지역에서 의무 근무를 하도록 하는 게 골자다.

    복지위를 통과한 법안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와 본회의 의결을 거친다. 법안이 최종 통과되면 오는 2027년부터 적용되는 의료인력수급추계위원회 의대 정원 추계와 맞물려 적용될 전망이다.

    이재명 정부의 중점 보건의료 과제인 지역의사제를 두고 의료계는 △10년 의무복무와 근무지 제한이 직업의 자유를 침해하고 △의무 불이행 때 면허 취소는 과잉금지원칙 내지 비례의 원칙에 위배되며 △불가피하게 해당 전형을 선택하는 예비 의대생에게 사실상 강제적인 제도라고 비판하고 있다.

    대한의사협회(의협)는 특정 지역에서의 근무를 강제하는 것이 의료 공백을 해소하기 위한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김충기 의협 정책이사는 지난 17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지역의사제 입법 공청회에서 “지역 장기 근무 시 소득세 감면 및 개원·시설 투자 지원과 공공기관 채용, 국제기구 파견, 연구 기회 우대, 자녀 주거·교육·돌봄 지원 등이 더 실효적일 것”이라며 “또 수가 조정 및 보상 강화, 의료사고 부담 완화 등도 함께 추진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반면 지역 의대 교수들은 지역의사제 도입만이 비수도권 지역 주민들의 생명권을 지키는 유일한 해법이라고 말한다. 김영수 경상국립의대 교수는 “서울과 비수도권의 의사 수 격차는 2배 이상”이라며 “물론 헌신적으로 지역을 지키는 고령 의사들이 있지만, 앞으로 젊고 실력 있는 의사들이 공급되지 못한다면 지역을 지키는 데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환자 안전’ 강조하는 의협…‘총력 투쟁’ 예고

    의료계는 지역의사제 취지에 대해 일부 공감하며 논의에 적극적이지만, 핵심 쟁점인 성분명 처방에 대해선 한 치의 물러섬이 없다. 성분명 처방은 의사가 의약품의 상품명 대신 성분명으로 처방하면 약사가 해당 성분의 의약품 중 동등성을 인정받은 품목 하나를 선택해 조제하는 제도다. 가령 ‘타이레놀’ 같은 약품명 대신 ‘아세트아미노펜’이라는 성분명으로 처방하는 것이다.

    그간 코로나19와 인플루엔자(독감) 같은 호흡기 감염병이 대유행할 때마다 꼭 필요한 필수의약품들이 품절되는 사태가 반복된 데 따른 방안으로, 이 제도는 이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자 국정과제이기도 하다. 더불어민주당은 수급 불안정 의약품 문제 해결을 위해 법안 마련에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달엔 약사의 대체조제 사후통보 방식을 간소화하는 약사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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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의 한 약국에 약이 진열돼 있다. 신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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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는 수급이 불안정한 필수의약품에 한해 단계적으로 성분명 처방을 도입할 계획이다. 성분명 처방이 도입되면 환자 입장에선 약을 구하기 쉬워지고, 저렴한 약을 선택적으로 고를 수 있게 된다는 장점이 있지만, 의협은 환자 안전을 들며 반대하고 있다.

    김택우 의협 회장은 지난 16일 ‘전국 의사 대표자 궐기대회’에서 “국민의 건강을 파탄 내고 의료체계를 붕괴시키는 모든 의료악법의 추진을 즉각 중단하라”며 “국회와 정부가 이를 외면한다면 대한민국의 의료를 살리기 위한 전면적이고 강력한 총력 투쟁에 돌입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동일 성분이라도 임상 효과는 차이가 있으며, 이로 인한 문제 발생 시 책임 소재 규명이 어렵다”는 게 의협의 주장이지만, 생동성 평가를 통과한 같은 성분의 약은 효과가 동일하다고 볼 수 있어 다른 나라들도 성분명 처방을 권장하고 있는 상황이다. 또 제약사가 의사에게 지급하는 불법 리베이트가 줄어 약값 인하로 이어질 것이라는 기대도 있다. 이를 통해 지출되는 약값을 연간 7조9000억원 아낄 수 있다는 추산도 있다.


    의약품 품절 반복…‘기득권 사수’ 지적

    의료계가 성분명 처방 도입 반대를 외치는 것을 두고 일각에선 ‘약 처방권’이라는 기득권을 사수하기 위한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국민건강보험공단노동조합(건보노조)은 “약가제도 개선과 성분명 처방 확대를 통한 건강보험 재정 절감 대책이 시급하다”며 “다수의 선진국가가 시행하고 있거나 권장하는 성분명 처방이 제도화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 한 해 동안 건보공단이 부담한 의약품 비용이 27조원에 달하는데, 고령화로 인한 노인 의료비 증가뿐만 아니라 상품명(제품명) 처방과 제약사 리베이트로 인한 약제비의 거품이 가중된 것으로 의심된다는 것이다.

    건보노조는 “성분명 처방은 동일 성분 간 가격 경쟁을 통한 건강보험 재정 절감과 과다·중복처방을 방지하는 합리적 대안이 될 수 있다”면서 “약품 공급자 간 경쟁과 소비자 선택 기반 경쟁으로 왜곡된 약가 구조와 리베이트 구조를 근본적으로 해체하는 가장 효과적인 정책 조합이다”라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정부와의 협치와 제도 개선 노력 대신 장외투쟁으로 맞서려는 의료계의 태도가 진정 국민을 위한 것인지 되돌아봐야 한다고 지적한다. 나백주 을지의대 교수는 “‘모 아니면 도’ 식이 아니라 어떤 안건에 대해 건설적이고 생산적인 방안을 같이 논의하며 만들어나가야 될 텐데, 지금의 의협 태도는 과연 그런지 모르겠다”라면서 “그냥 정부 정책이 마음에 안 드니까 반대하는 건지, 충분한 고민과 숙의를 거쳤는지 의료계는 냉철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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