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학관과문화 대표, 공학박사 권기균 |
1970년 11월 17일, 조그만 나무 상자에 두 개의 금속 바퀴가 달린 장치 하나가 미국 특허청에 등록됐다. 정식 명칭은 '디스플레이용 X-Y 위치 지시 장치'(X-Y Position Indicator for a Display System). 단순한 구조였지만 인간이 컴퓨터와 소통하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꾼 혁신이었다. 이 장치를 고안한 사람은 더글러스 엥겔바트(Douglas Engelbart). 그는 1963년 이 개념을 처음 구상하고 1967년 특허를 출원해 1970년에 승인을 받았다.
1950~60년대 엥겔바트는 스탠퍼드리서치인스티튜트(SRI)에 '증강연구센터'(ARC)를 세우고 새로운 인간-컴퓨터 상호작용 방식을 실험했다. 당시 컴퓨터는 거대한 기계였고 주된 입력 수단은 천공카드였다. 하지만 엥겔바트는 컴퓨터를 계산 도구가 아닌 인간 지능을 확장하는 파트너로 봤다. 그래서 "손의 작은 움직임으로 사고를 더 빠르게 표현할 수 있는 도구"를 만들고자 했다. 그는 펜, 조이스틱, 팔의 움직임을 추적하는 장치 등 다양한 입력방법을 실험했다. 그러다 결국 '두 개의 금속 바퀴가 직각 방향으로 달린 작은 나무 상자'가 가장 정확하고 빠르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하나의 바퀴는 X축, 다른 하나는 Y축의 움직임을 감지해 화면의 포인터를 이동시키는 방식이었다. 이 작은 장치가 바로 최초의 마우스(Mouse)다. 지금의 광학식 마우스에 비하면 원시적이지만 당시로서는 혁명적인 발명이었다. 인간의 손동작을 컴퓨터가 인식하게 만든 최초의 장치였기 때문이다.
엥겔바트가 만든 최초의 마우스는 스미스소니언 미국역사박물관에 여러 차례 전시됐다. 그 전시의 유리 진열대 안, 옆면에 금속 바퀴가 드러난 나무 상자를 보면 1960년대 실험실의 분위기가 생생하게 떠오른다. 투박한 케이블이 바닥으로 늘어져 있어 왜 '마우스'라는 이름이 붙었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이 발명이 세상에 알려진 극적인 순간은 1968년 12월 9일,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추계 컴퓨터 콘퍼런스'(Fall Joint Computer Conference)였다. 엥겔바트는 이 자리에서 마우스는 물론 하이퍼텍스트, 화면 분할, 원격 공동 편집, 화상회의 등 오늘날 디지털 시대를 구성하는 핵심 기술들을 한꺼번에 시연했다. 관객들은 그저 작은 나무 상자를 움직이는 그의 손을 바라봤지만 스크린 위에는 미래의 작업 방식이 실시간으로 펼쳐지고 있었다.
이 역사적 시연은 후에 '모든 데모의 어머니'(The Mother of All Demos)라 불리며 컴퓨터 기술의 결정적인 전환점을 상징하게 된다. 엥겔바트의 비전은 단순한 장치의 발명을 넘어서 있었다. 우리가 오늘날 사용하는 GUI(그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 창을 여닫고, 아이콘을 클릭하고, 포인터를 조작하며, 온라인 화상회의를 하는 일상의 기술들. 모두 그가 상상하고 실현한 미래였다. 그는 "기술의 목적은 인간의 지능을 확장하는 것"이라는 철학을 끝까지 고수했다. 그리고 그 철학이 응축된 첫 번째 결과물이 바로 마우스였다.
하지만 엥겔바트는 그 혁신성에도 불구하고 스티브 잡스나 빌 게이츠, 래리 페이지, 마크 저커버그 같은 거부가 되지는 못했다. 심지어 마우스 발명으로 로열티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 특허권은 그가 속한 SRI에 등록됐고 그 기술은 너무 앞서 있었기에 특허가 만료된 뒤에야 개인용 컴퓨터 산업이 본격화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사는 그의 업적을 인정했다. 1997년 그는 컴퓨터 과학의 노벨상이라는 튜링상을 수상했다. 2000년에는 미국 최고 과학훈장인 '국가기술혁신메달'(National Medal of Technology)도 받았다.
오늘 우리는 마우스로 텍스트를 드래그하고 창을 옮기고 온라인 회의로 하루를 시작하고 끝낸다. 너무나 당연해진 이 IT 기술의 뒤에는 엥겔바트의 선견지명과 집요한 실험정신이 흐르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가리켜 "도구를 만든 것이 아니라, 미래의 일하는 방식을 발명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도 그가 만든 방식을 따라 일하고 있다.
엥겔바트가 발명한 최초의 컴퓨터 마우스 . |
권기균 과학관과문화 대표·공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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