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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23 (화)

    중대재해 처벌이 상책? 李 정부에 필요한 '기업재해경감법'이라는 당근 [視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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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덕 기자]

    # 기업재해경감법을 아는가. 이 법은 각종 재난이 발생하더라도 기업활동을 중단하지 않고 유지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기업의 재해경감 활동을 지원하는 법이다. 이 법을 현장에서 제대로 활용하면 중대재해처벌법 제정에도 줄지 않는 중대재해를 실질적으로 줄일 수 있다.


    # 문제는 이렇게 중요한 함의를 갖고 있는 '법'이 실질적으로 활용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왜일까. '아무도 말하지 않는 그림자 제도-허울뿐인 기업재해경감법'을 통해 이 질문을 풀어보자. 1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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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햇수로 4년 전인 2021년. 대형 법무법인들은 산업안전 전문가들을 영입하기 바빴다. 영입 경쟁이 치열했던 탓에 관련 분야 전문가들의 몸값이 크게 뛰었다. 기존 직장을 그만두고 이직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실제로 그해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에서 자의로 퇴사한 이들은 88명이었는데, 전년도(53명)보다 66.0%나 늘어난 수치였다. 이중 상당수가 법무법인의 고문과 전문위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 무렵 기업은 '노동 전문가'를 발탁ㆍ영입하는 데 공을 들였다. 유력 기업들은 법무법인 내 노무사나 노동법 전문 변호사를 줄줄이 영입했다. 당시 국내 최대 로펌 김앤장 법률사무소에 소속돼 있던 노동 분야 변호사 10여명이 대기업 대표나 임원으로 자리를 옮긴 건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그만큼 산업안전과 노사관계 분야 전문가들의 이직이 활발했다는 거다.


    2022년 1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앞두고 시장에서 나타난 변화다.[※참고: 중대재해처벌법은 상시노동자 5인 이상인 사업장의 노동자나 사업장 시설 이용자의 안전ㆍ보건 관련 의무와 책임을 경영책임자에게 부과한 법이다.] 이런 변화가 시사하는 바는 뭘까.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앞두고 좀 더 안전한 사업장을 만들기 위한 투자에 나선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지만, 경영책임자의 책임 회피를 위한 일종의 포석이기도 했다.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경영책임자에게 책임을 물을 테니, 기업은 경영책임자의 책임을 합법적으로 면할 방법을 찾기 위해 전문가를 영입해 대표에 앉히고, 법무법인은 기업들의 요구에 부응할 대안을 마련하기 위해 전문가를 불러들였다는 얘기다.


    실제로 당시 법무법인에 "경영자의 책임을 피할 방안이 없느냐"는 기업의 문의가 쏟아졌다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이런 상황은 '중대재해처벌법이 기업 스스로 안전한 사업장을 만드는 계기로 작용하진 않을 것'이란 비관론에 힘을 보탰다.


    결과는 예상을 빗나가지 않았다. 중대재해처벌법의 성과는 기대치를 한참 밑돈다. 올해 2월 박용갑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토교통부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시공능력평가 상위 20위 건설사 공사 현장에서 사망한 노동자는 총 35명으로, 2023년(28명)보다 25.0% 증가했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첫해인 2022년(33명)과 비교해도 별 차이가 없는 수준이다. 부상자를 포함해도 결과는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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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대재해가 가장 많이 발생하는 업종이 건설업종인 점을 감안하면 중대재해처벌법을 통한 산업재해 감소 효과가 미비하다는 걸 부인하기 어렵다.[※참고: 물론 건설업 전체 사고사망재해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후 감소하고 있다. 하지만 법 시행 직전인 2021년의 전년 대비 사고사망재해 감소율이 9.0%였고, 이후 2022년부터 2024년의 감소율 평균치가 7.6%였다. 이를 감안하면 실제 중대재해처벌법의 효과가 있다고 할 수 있는지는 다소 의문이다.]


    그러자 고용노동부는 고위험 공사 현장을 불시에 방문ㆍ점검해 산업재해를 줄이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물론 단편적인 효과가 있을 수 있지만, 지속가능할지는 의문이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건설사가 법을 어기면서 공사를 하고 있다는 제보에 따라 현장을 점검하러 온 국토교통부 직원이 오히려 건설사와 유착하기도 한다"면서 "기업이 스스로 안전관리에 최선을 다하지 않는 이상 불시 점검은 미봉책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런 상황에선 채찍과 당근책을 함께 쓰는 게 해법일 수 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사후 처벌에 중점을 두고 있으니 사전 예방을 위한 당근책을 동시에 써야 한다는 얘기다.


    아쉬운 건 정부가 이미 적절한 당근책을 마련해 뒀는데도 쓰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무슨 말일까. 당근책이란 바로 기업재해경감법이다. 2008년 제정한 이 법의 목적은 다음과 같다. "재난이 발생했을 때 기업활동이 중단되지 않고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도록 국가가 기업의 재해경감활동을 지원하기 위함이다." 재난 발생 시 기업활동이 중단되지 않도록 하는 일이 중대재해 예방과 무슨 관계가 있나 싶겠지만, 밀접한 연관성을 갖고 있다.


    우선 기업재해경감법에서 말하는 '재난'은 태풍이나 홍수, 호우, 강풍, 해일, 대설, 한파, 낙뢰, 가뭄, 폭염, 지진, 황사, 화산, 우주 물체 추락ㆍ충돌 등과 같은 자연재난에 국한하지 않는다. 화재, 붕괴, 폭발, 교통사고(항공ㆍ해상 포함), 화생방, 환경오염, 다중운집인파사고, 국가핵심기반 마비, 감염병, 미세먼지 등 각종 사회재난을 포함한다.


    쉽게 말해 이런 재난이 닥치더라도 '기업활동이 중단되지 않도록' 기업의 재해경감 활동을 지원하는 게 이 법의 핵심이다. 기업의 재해경감 활동은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취약한 부분들을 점검ㆍ개선함으로써 피해를 최소화하고, 미리 계획된 최적의 대응을 통해 업무를 정상화'하는 걸 의미한다.


    중대재해 줄일 당근책, 기업재해경감법

    그렇다면 기업재해경감법에서 말하는 '정부의 지원'은 무엇일까. 현행법상 정해진 절차에 따라 재해경감 우수기업으로 인증을 받으면 공공구매 입찰 참여 시 가산점을 부여할 수 있다.


    재난 관련 보험계약을 체결할 땐 보험료율 할인 혜택을 받을 수도 있다. 인증기업이 국가와 지자체로부터 세제 혜택을 받거나 재해경감활동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할 때 우대하는 제도도 있다.


    [※참고: 법에는 기업의 재해경감 활동을 위한 전문인력 양성 제도의 운영까지 명시하고 있다. 그 전문인력이 기업재난관리사다. 이들은 재해경감 계획 수립을 위한 컨설팅이나 재해경감 우수기업 인증 등 다양한 활동에 참여하도록 돼 있다. 그럼에도 제도는 원활하게 작동하지 않고 있는데, 이 문제는 '허울뿐인 기업재해경감법 2편' 전문가 인터뷰에서 상세히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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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게까지 인증기업을 지원을 하는 이유는 단 하나다. 기업의 재해경감 활동을 활발하게 만드는 게 사회 전체적으로 봤을 때 이익이기 때문이다. 공익적 효과가 있다는 거다. 그럼 기업재해경감법과 중대재해는 무슨 상관관계가 있는 걸까.


    쉽게 설명해보자.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기업에는 재난에 준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고용노동부 장관이 작업중지 명령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동일한 산업재해가 재발하는 걸 방지하기 위해서다. 기업 활동이 중대재해로 중단될 수 있다는 말인데, 이렇게 보면 기업 입장에서 중대재해는 곧 엄청난 재난이다.


    이런 점에서 '기업재해경감'은 상당히 중요하다. 기업의 재해경감 활동을 통해 '중대재해'를 원천 차단하거나 혹여 재해가 발생하더라도 빠르게 회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업의 재해경감 활동은 중대재해 예방뿐만 아니라 사후 대응과 관리까지 포함한다. 중대재해처벌법으로 사후 처벌만 강조할 게 아니라 인센티브를 통해 기업의 재해경감 활동을 지원해야 하는 이유다.


    기업에 소속된 한 산업안전 담당자는 "규제 일변도로는 중대재해를 줄이는 데 한계가 있다"면서 "기업이 스스로 자구 노력에 나설 수 있도록 유인책을 제공하면 더 효과가 클 것"이라고 꼬집었다.


    하지만 기업재해경감법은 여전히 '허울만 좋은 제도'에 머물러 있다. 무엇보다 기업재해경감법상 인증기업에 부여하는 가산점, 보험료율 할인, 세제 혜택은 의무가 아니다. 관련 부처가 주무부처인 행안부에 협력할 의무 역시 없다.


    이 때문에 부처 간 협력도 잘 이뤄지지 않는다. 양준 기업재난관리사회장은 "예컨대 재해경감 우수기업 인증을 받고, 이에 따른 활동도 잘하면 공공입찰 시 가산점을 주도록 법에 명시돼 있지만, 실제로 그렇게 하는 정부 부처나 지자체, 공공기관은 많지 않다"면서 "의무가 아니라 권고사항이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양 회장은 "법에 따른 세제 혜택을 주려면 기획재정부가 움직여야 하는데, 아무도 관심이 없어 이뤄지지 않는다"면서 "실제로는 재해경감 활동에 따른 실질적인 혜택이 거의 없기 때문에 기업들도 적극적으로 재해경감 활동을 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사실 재해경감의 범위는 기업에 국한해선 안 될 만큼 크다. 재해경감 활동이나 프로세스를 기업만이 아니라 다양한 사회적 문제에도 적용할 수 있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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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해경감 프로세스를 아파트 화재방지시스템에 적용해보자. 기업재난관리사와 같은 전문가들이 화재 가능성을 분석하고, 취약점을 찾아내 보완한다. 화재 발생 시 체계적인 대응을 통해 피해를 최소화하는 동시에 주민들의 일상은 정해진 계획에 따라 유지된다. 예방과 동시에 사후대책까지 논스톱으로 이어지는 시스템을 갖춤으로써 실제 화재 시 (주민들이) 우왕좌왕하는 상황을 막을 수 있다는 거다.


    양준 회장은 "재난안전법에 따라 정부와 지자체, 공공기관도 기업의 재해경감 프로세스와 비슷한 '기능연속성계획(COOP)'을 의무적으로 수립ㆍ운영하고 있지만, 이 역시 제대로 운영되지 않고 있다"면서 "이번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 이후 복구가 늦어진 것도 이 프로세스가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대부분의 재해는 사람의 실수나 방기에서 기인한 인재人災다. 그래서 재해의 사전 예방과 사후 관리를 모두 통제하는 '재해경감' 활동의 함의는 상당히 크다. 그런데도 우리는 아직도 '사후적 처벌'에만 신경을 쓰고 있다. 이재명 정부 역시 비슷하다. 법이나 제도는 '활용해야' 열매를 맺는다. 기업재해재난경감법의 활용법을 한번 더 고민해야 하는 이유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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