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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23 (화)

    1호 선박 명명은 육영수 여사... 배 한줄로 세우면 서울~도쿄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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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D현대, 세계 최초 선박 5000척 인도

    조선일보

    HD현대가 최근 인도한 필리핀 초계함 2번함 '디에고 실랑함' /HD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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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달 울산 HD현대중공업에서 필리핀 초계함 2호 ‘디에고 실랑함’이 인도됐다. 길이 118m, 최신예 함정인 이 군함은 HD현대가 1974년 첫 선박을 건조한 이래 5000번째 선박이다. 세계 조선 역사상 단일 기업이 5000척을 인도한 것은 처음이다. 우리보다 훨씬 오래된 조선 역사를 가진 유럽과 일본도 달성하지 못한 기록이다.

    HD현대는 이를 기념하며 19일 울산 HD현대중공업에서 ‘선박 5000척 인도 기념행사’를 열었다. 정기선 HD현대 회장과 박동일 산업통상자원부 실장, 안병길 해양진흥공사 사장 등이 참석했다. HD현대는 1974년 26만톤급 초대형 유조선 ‘애틀랜틱 배런호’를 시작으로 68개국 700여 선주사에 선박을 인도했다. HD현대중공업 2631척, HD현대미포 1570척, HD현대삼호 799척 등이다.

    5000척을 한 줄로 세우면 총 길이가 1250㎞에 달한다. 서울에서 도쿄까지 직선거리(1150㎞)보다 길다. 정 회장은 “5000척은 대한민국 조선 산업의 자부심이자 세계 해양 산업의 패러다임을 바꾼 도전의 역사”라고 말했다.

    ◇500원 지폐 한 장으로 시작된 기적

    조선일보

    1970년대 울산 동구 항공사진. 당시 이곳에 조선소를 짓겠다는 계획은 '무모한 도전'으로 여겨졌다. /HD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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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조선업의 시작은 197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울산 미포만에 조선소 건설을 추진했다. 당시 한국 조선업의 연간 건조량은 50만GT(총톤)로 세계 점유율 1%도 안 됐고, 최대 선박은 1만7000톤급이었다. 당시 조선소 건설은 ‘무모한 도박’으로 여겨졌다. 일본은 당시 우리나라를 보고 “한국 경제 규모에 5만톤급 선박의 건조 능력만 갖추면 충분하다”며 “설령 조선소를 지어도 기술이 없어 대형선은 절대 못 만든다”고 했다.

    하지만 정 명예회장은 울산 미포만 모래사장 사진과 영국 조선소 설계도면을 들고 세계를 돌아다녔다. 정 명예회장은 당시 차관 확보를 위해 영국은행을 설득하는 과정에서 500원짜리 지폐 속 거북선을 보여주며 “한국은 400년 전에 이미 철갑선을 만들었다”고 설득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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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4년 당시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에서 정주영 회장과 아내 변중석 여사가 지켜보는 가운데 ‘애틀랜틱 배런’을 명명하는 육영수 여사. /현대중공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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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국 1972년 조선소 건설을 시작했고, 1974년 6월 조선소 준공과 1호선 인도를 동시에 해냈다. 조선소 건설과 선박 건조가 동시에 이뤄진 것은 세계 조선 역사상 처음 있는 일로 기록된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 내외가 행사에 참석해 “오늘 명명식은 중화학공업의 발전을 기약하는 선언이자 도약하는 국력의 상징”이라 말했다. 1호선은 ‘애틀랜틱 배런(대서양의 남작)호’, 2호선은 ‘애틀랜틱 배러니스(대서양의 남작 부인)’로 명명됐다.

    ◇상선에서 군함까지, 패스트팔로워에서 퍼스트무버로

    한국 조선업은 반세기 동안 양적 성장을 넘어 질적 변화를 이뤘다. 초기 유조선과 벌크선 등 상선 위주로 시장을 따라가던 ‘패스트팔로워’에서 이제는 시장을 선도하는 ‘퍼스트무버’로 자리매김했다. 5000번째 배가 상선이 아닌 최신예 군함이라는 점도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한미 조선업 협력 마스가(MASGA) 프로젝트도 힘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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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0년 12월 국내 최초의 한국형 호위함 ‘울산함’ 인수 및 명명식이 거행됐다. 전 세계적으로 구축함급 이상을 자체 설계해 건조할 수 있는 나라가 10개국에 불과한 상황에서 현대중공업이 2000톤급 울산함 건조에 성공함으로써 우리나라도 함정 생산국 대열에 들어섰다. /HD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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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5년 HD현대는 대한민국 최초의 국산 전투함인 울산함 개발에 착수했다. 조선소 건설과 동시에 군함 기술까지 확보하겠다는 야심찬 도전이었다. 1980년 4월 초도함 울산함이 진수됐고, 1981년 해군에 인도됐다. 당시 2000톤급 함정 설계와 건조 경험이 전무했던 상황에서 이뤄낸 쾌거였다.

    2000년대 들어서는 초대형 컨테이너선, 고성능 드릴십 등 기술 집약적 선박 시장을 주도했다. 여기에 LNG선, 컨테이너선 등 고부가가치 선박에서 세계 1위를 지키고 있다. 최근에는 친환경 선박과 자율운항 기술 등 미래 기술 개발에도 앞장서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HD현대는 올해 클락슨 연구소가 선정하는 세계 1위 조선사 자리를 굳힐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HD현대 조선 3사는 컨테이너선, LNG선 등 총 144척을 인도했다. 정 회장은 “함께 만든 도전의 역사를 바탕으로 다음 5000척, 또 다른 반세기를 향해 나아가겠다”고 말했다. HD현대는 이날을 기념해 조선 계열사 임직원과 협력업체 근무자에게 30만원 상품권을 지급한다.

    [한예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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