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문진 항 꽁치 |
가을바람이 차고 서리가 내리기 시작하면 동해의 바다는 은빛 비늘로 반짝인다. 그 속을 칼처럼 길고 매끈한 몸으로 헤엄치는 생선이 있으니, 바로 꽁치(秋刀魚), '가을의 칼'이라 불리는 녀석이다.
하지만 이 칼은 사람을 베지 않는다. 오히려 생명을 살리는 양생의 검(劍)이다.
예로부터 꽁치는 가을과 함께 찾아와 서민의 친구가 돼줬다. 부자들의 화려한 식탁이 아니라, 바닷가 어촌의 소박한 밥상 위에서 지친 하루를 위로하던 은빛 생선이었다. 오늘날 우리는 이 평범한 생선 속에서도 도교의 양생학, 현대영양학의 지혜를 읽는다.
이런 면에서 보면 꽁치는 자연과 인간, 그리고 생명 전략이 담긴 고마운 존재다.
꽁치는 한반도와 일본, 중국의 동북 해안을 오가며 수천 년 동안 우리네 밥상에 올랐다. 조선시대 어부는 이름에 '치'가 들어간 생선은 성질이 급하다고 했다. 갈치, 멸치, 꽁치가 모두 그렇다. 그물에서 나오면 금세 숨이 끊어지지만, 그만큼 신선할 때 구워 먹으면 살아 있는 바다의 맛이 전해진다.
경북 영일만, 구룡포, 울릉도에서는 겨울을 나기 위한 귀한 단백질 자원으로 '손꽁치' 풍습이 있었다. 이 지역 사람에게 꽁치는 바다와 인간이 숨 쉬며 이어가는 생명의 끈이었다. 1960년대 청어가 사라지자 꽁치는 그 자리를 대신했고, 차가운 바닷바람에 얼고 녹기를 반복하며 숙성된 '과메기'가 돼 겨울의 천연 보양식으로 자리 잡았다.
꽁치 통과메기 |
◇ 꽁치에 담긴 오리엔탈리즘
동양의학에서 꽁치는 성질이 평(平)하여 덥지도 차갑지도 않은 중용의 기운을 지닌다. 그 맛은 달고 부드러워, 어떤 체질이든 무난히 먹을 수 있다. 비위경(脾胃經)으로 들어가 소화를 돕고 기운을 북돋운다.
양생학에서는 '비위가 튼튼해야 오장이 화평하다'고 한다. 가을은 찬 바람이 불며 위장에 나쁜 열기가 생기기 쉬운 계절이다. 꽁치는 평화로운 성질로 위를 보호하고, 소화를 돕고, 피를 맑히며, 기운을 고르게 돌게 한다. 그래서 늦가을의 보양어(保養魚)라 불린다.
도교의학에서 보면 꽁치는 수기(水氣)를 품은 생선이다. 꽁치 지방의 따뜻한 성질은 화기(火氣)를 보완해 수화(水火)의 균형을 맞춘다. 이것이 도교에서 말하는 '음양교구'(陰陽交構), 즉 음과 양의 조화를 통한 장수의 비결이다.
한 마리의 꽁치는 단백질 공급처일뿐만 아니라, 자연의 기운을 몸으로 옮겨 주는 통로인 셈이다.
현대영양학의 눈으로 보면 꽁치는 작지만 깊은 바다의 영양을 응축한 생명체다. 100g당 단백질 22g, 지방 10~15g가량을 지니며, 그 지방 대부분이 불포화지방산(EPA, DHA)이다.
이 오메가-3 지방산은 인체의 세포 간 정보를 원활히 전달해 손자병법의 '용간'(用間)처럼 보이지 않는 내부 네트워크를 조율한다. 특히 피부와 내장에 DHA와 EPA가 많다. 겉보다 속에 진짜 약성이 숨어 있는 것이다. 이는 손자의 말처럼 '진실은 겉이 아니라 속에 있다'(知彼知己, 百戰不殆)를 증명한다.
꽁치는 면역력 강화, 피로 해소, 두뇌 건강, 빈혈 개선, 뼈 건강, 심혈관 질환 예방 등 다양한 건강 효능을 지니고 있다.
또한 지방이 많아 구울 때 기름이 쉽게 흐른다. 양생조리의 원칙은 '기름은 덜고, 기운은 더하는 것'이다. 불은 세지 않게, 중불에서 천천히 구워야 그 안의 선기(仙氣)가 살아난다.
양생조리법을 살펴보면, 레몬소금구이는 천일염으로 간을 하고 레몬즙을 곁들이면 피로가 풀리고 비린내가 사라진다. 두부꽁치탕은 살짝 구운 꽁치에 두부와 생강, 마늘을 넣고 푹 끓이면 위를 따뜻하게 해주고 단백질과 칼슘이 조화를 이룬다. 자소엽꽁치전은 자소엽이 소화를 돕고 느끼함을 없애 향이 살아난다.
과메기는 마늘과 다시마를 쌈으로 곁들이면 혈액순환과 간 해독을 돕고 피로를 풀어준다. 하지만 퓨린이 많아 통풍 환자는 과다 섭취를 피해야 한다.
도교 경전 '포박자'(抱朴子)에는 "기운을 먹는 자는 오래 살고, 형(形)에 집착하는 자는 빨리 늙는다"고 했다. 만물이 그러하듯 꽁치도 보이지 않는 기운, 앞서 언급한 선기를 품고 있다. 깊은 어둠 속에서도 은빛을 잃지 않는 그 생명력은 도가에서 말하는 '현광'(玄光) 즉, 어둠 속에서도 스스로를 밝히는 빛의 상징이 됐다.
◇ 손자병법으로 바라본 꽁치 조리법
손자병법 '용간(用間)의 장'으로 보면 꽁치는 보이지 않는 정보의 미학이다. 전쟁의 승패가 정보에 달렸듯, 건강의 승패도 몸의 신호를 읽는 데 달려 있다. 꽁치는 바다의 첩자다. 해류의 온도, 햇빛, 먹이의 변화를 감지하고 즉시 움직인다. 그 자체가 자연의 정보기관, 생태계의 '용간'이다.
꽁치는 바다의 칼이지만 사람을 해치지 않는다. 그 칼날은 탁한 피를 베어내고 생명의 순환을 열어주는 양생의 검이다. 꽁치 한 마리 속에는 바다의 염분, 태양의 기운, 인간의 정성이 담겨 있다.
도교의 눈으로 보면 꽁치는 '기(氣)를 먹는 법'을 가르치고, 현대영양학으로 보면 세포 간 신호를 조율하는 생체 정보체계, 손자병법으로 보면 자연과 인간이 살아남는 전략의 모범이다.
가을이 깊어질수록 꽁치는 살이 차고 기름이 오른다. 그 기름은 음양의 조화와 생명 회복의 상징이다. 우리가 그것을 먹는다는 것은 단순히 배를 채우는 일이 아니라, 자연의 언어를 몸으로 받아들이는 수행이다. 꽁치는 바다의 첩자이자 생명의 사자다. 그 한 마리 칼을 닮은 생선 속에서 우리는 자연의 도(道)와 인간의 생존 철학을 본다.
최만순 음식 칼럼니스트
▲ 한국약선요리 창시자. ▲ 한국전통약선연구소장. ▲ 중국약선요리 창시자 팽명천 교수 사사 후 한중일 약선협회장 역임.
<정리 : 이세영 기자>
sev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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