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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09 (화)

    [양상훈 칼럼] 이 정권이 구린 일에도 대담·노골적인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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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기에 잘나가는 정권이

    왜 항소 포기 무리수 두는지

    이해 안 간다면

    정치 유튜브 한 편만 보시길

    ‘우리 편끼리’ 세상에서

    남 시선 의식 않고

    내 맘대로 하는 게 뉴노멀

    조선일보

    2020년 12월 조선일보 기자들이 스마트폰 12대를 이용해 유튜브의 정치 콘텐츠 알고리즘을 조사하고 있다. /이태경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이재명 정권이 대장동 일당에 대한 검찰의 항소를 못 하게 막은 이유는 일차적으로 김만배씨 등의 입을 막기 위한 것으로 짐작한다. 1심에서 김만배씨가 선고받은 ‘징역 8년’은 일반인들로서는 그 의미를 잘 체감하기 어렵다. 지인이 무슨 일에 휘말려 장기 징역형을 선고받은 적이 있다. 그는 “죽고 싶다”고 했다. 낙담이 클 때 상투적으로 하는 말이 아니었다. 그는 정말로 죽고 싶어 했다. ‘징역 8년’은 감당이 되지 않는 무게일 것이다.

    변호사가 많은 현 정권은 이를 잘 알고 있다. 김만배씨가 받은 충격과 절망은 클 것이고 김씨의 분노는 1차적으로는 이재명 정권으로 향할 가능성이 있다. 짐작건대 ‘이 대통령이 당선될 것이란 희망 하나를 갖고 윤석열 정권에서 아무 말 않고 버텼다. 이제 이재명 시대가 됐는데 징역 8년? 나만 죽으란 건가…’라는 게 김씨 심정일 것 같다.

    김씨가 대장동 사건과 관련해 알고 있는 이 대통령에 대한 ‘비밀’이 있는지, 있다면 무엇인지는 모른다. 그러나 만약 있다면 김씨가 알고 있을 것은 분명하다. 정권 입장에선 김씨의 입을 막는 것이 심각한 현안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검찰의 항소 포기로 김씨를 달래려 한 것 아닌가 추측한다. 어려운 얘기도 아니다.

    그런데 많은 분이 ‘초기에 잘나가는 정권이 왜 이런 무리수까지 두는지 이해를 못 하겠다’고 한다. 김만배씨를 구슬릴 방법이 많을 텐데도 모두 뻔히 지켜보는데 떳떳하지 못한 일을 벌여서 이토록 큰 논란을 만드느냐는 것이다. 필자도 이 정권이 이렇게 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11월 7일이 검찰의 항소 시한이란 사실도 몰랐다. 정권이 검찰의 항소를 막을 수 있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일이 벌어진 이후에 든 생각은 ‘이 사람들은 참 대담하고 노골적이다’라는 것이었다. 일반의 상식을 뛰어넘을 정도로 대담하고 노골적이니 보통 사람들은 ‘왜 이러는지’ 쉽게 이해하지 못한다. 따지고 보면 이 대통령이 2022년 대선에서 패한 뒤 두 달 만에 당시 민주당 대표에게 서울시장 후보직을 주고 자신은 그 대표의 지역구 의원 자리를 넘겨받은 맞교환 자체가 전례 없이 노골적이었다. 그 이후 비주류 공천 배제, 끝나지 않는 연쇄 방탄, 세계 기록일 듯한 연쇄 탄핵, 초유의 예산 탄핵 등 외부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대담하고 노골적인 모습이 연이어졌다.

    민주당의 내로남불은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인데 이 역시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기에 가능한 일이다. 대장동 사건 검찰 항소를 막은 뒤에 검사들이 반발하자 민주당이 도리어 화를 내며 검사들을 징계한다고 한다. ‘이러면 남들이 적반하장이라고 욕하지 않을까’라는 걱정을 할 만도 하지만 전혀 아니다.

    이 대통령 선거법 위반 사건을 유죄 취지로 파기 환송한 대법원에 대한 공격도 유치할 정도로 노골적이다. 이런 보복 행위는 은근히 하는 법인데 ‘지금부터 보복한다’고 광고하고 보복한다. 대법원, 검찰 등 밉보인 곳에 대해 예산부터 깎는 치졸한 행위를 하는 것도 누가 뭐라든 내키는 대로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어디서 보던 모습이다. 지금 당장 휴대폰을 꺼내 정치 유튜브를 한 편만 보면 대장동 항소 포기식의 대담하고, 노골적이고, 감정적이고, 일방적이고, 내 맘대로인 행태들이 고스란히 다 들어 있다. 정치 유튜브는 ‘우리 편만 보는 것’이다. 우리 편만 사는 동네, 무슨 일을 해도 문제가 안 되는 세상에서 오래 살면 사람은 떳떳하지 못한 일을 하는 데에도 거리낌이 없어진다. 지금 한국 정치판은 소셜미디어로 갈라져 서로 다른 세상에서 사는 사람들끼리 벌이는 싸움처럼 됐다.

    특히 소셜미디어 정치를 먼저 알았고 일찍 시작한 민주당은 이제 소셜미디어 정치의 특징들을 체질화해 가는 단계에 있는 것 같다. “딴지일보가 민심의 바로미터”라는 정청래 대표의 말이 이를 잘 보여준다. 음모론자 김어준의 딴지일보엔 민주당 극성 지지층의 생각이 담겨 있다. 정 대표에겐 그게 ‘민심’이다. 아마도 이 대통령이나 상당수 민주당 의원들도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들은 전체 국민을 대상으로 정치를 하지만 정말 결정적 순간, 예컨대 대장동 사건 검찰 항소를 할 거냐 말 거냐와 같은 순간엔 딴지일보식 우리 편 민심을 먼저 의식한다. 그래서 이렇게 대담하고 노골적일 수 있다고 본다.

    소셜미디어 우리 편 민심만 보는 정치는 세계 도처에서 기승을 부리고 있다. ‘우리 편끼리’의 위험한 세상에서 대담하고 노골적인 ‘지르기’는 속출할 것이다. 그래도 가끔 ‘이건 아니다’라고 불벼락이 떨어지는 경우가 있다. 비록 검찰이 항소를 포기했지만 ‘대장동 일당이 돈 잔치? 그런 불의는 용납 못 한다’는 벼락이 떨어졌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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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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