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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06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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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할리우드 거장들이 묻는다 “AI가 행복 가져다 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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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미상 받은 길리건의 ‘플루리부스’

    바이러스 감염된 수십억 명 뇌 공유

    지식·감정 똑같아진 세상 원하나…

    ‘프랑켄슈타인’, 무책임한 과학 비판

    조선일보

    /애플tv정체불명의 바이러스가 퍼지며, 인류의 정신 세계가 하나로 연결된다. 어느 날 갑자기 주변 사람들이 획일화된 인공지능(AI) 로봇처럼 변하자, 혼자 동화되지 못한 캐럴(레아 시혼·왼쪽)은 극심한 혼란에 빠진다.' /애플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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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날 갑자기 미지의 존재가 나타나 정체불명의 바이러스를 퍼뜨리고 인류의 모든 지식과 기억을 흡수한다. 바이러스에 감염된 수십억 명의 사람들은 서로 동기화된다. 이제 인류는 복제 인간처럼 똑같이 움직이고, 똑같이 말하고, 똑같이 생각한다. 모든 경험과 지식을 실시간으로 공유하는 덕분에 세상은 더없이 평화롭고 풍요로워졌지만, 바이러스에 면역을 지닌 캐럴(레아 시혼)은 이 행복한 세상에 섞이지 못한다. 캐럴은 인류를 행복에서 구하기 위해 외로운 싸움에 나선다.

    ‘브레이킹 배드’ ‘베터 콜 사울’로 에미상을 네 차례 받은 빈스 길리건의 SF 드라마 ‘플루리부스’가 최근 티빙과 애플TV에서 공개됐다. 그가 각본을 쓰고 총괄 제작한 ‘브레이킹 배드’는 비평가들에게 역대 최고 평가를 받은 드라마로 2014년 기네스북에 등재되기도 했다. 이번 드라마는 초월적 지능을 지닌 존재가 인간의 정신을 점령하고, 전 세계 사람들의 정신이 하나로 연결되면서 벌어지는 혼란을 그린다. 제목은 미국 동전에 새겨진 표어 ‘에 플루리부스 우눔(E Pluribus unum·여럿으로 이뤄진 하나)’에서 따왔다.

    조선일보

    애플tv '플루리부스' /애플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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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이러스의 정체는 아직 베일에 싸여 있지만, 시청자들은 자연스럽게 인공지능(AI)을 떠올렸다. 동기화된 인간들은 무엇을 물어봐도 척척 답하고, 어떤 외국어든 유창하게 구사하며, 늘 친절하고 듣기 좋은 말로 답한다. AI에 개성과 자율성, 창의성을 빼앗겨 버린 인류의 미래처럼 보이기도 한다.

    극 중 면역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린다. 캐럴은 세상을 바로잡고 싶어 하지만, 다른 이들은 “모두가 편하고 행복해졌는데 뭐가 문제냐”며 시큰둥하다. 인간이 점점 AI에 의존하게 되는 시대, 캐럴의 외침은 경종을 울린다. “실컷들 즐겨요. 그런데 이건 알아둬요. 당신들은 인류의 배신자예요!”

    아직 4회만 공개됐기 때문에, AI를 겨냥한 작품이라 단정하긴 어렵다. 온라인상의 집단주의나 전체주의에 대한 비판으로 해석할 여지도 있다. 길리건이 아이디어를 처음 떠올린 시점은 10년 전으로, 챗GPT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던 시절이다. 하지만 훌륭한 SF는 종종 현실을 앞서간다.

    길리건은 실제로 AI에 대한 반감을 드러내 왔다. 그는 버라이어티와 한 인터뷰에서 “AI는 세상에서 가장 비싸고 에너지 낭비가 심한 표절 기계”라면서 “억만장자들이 조만장자가 되려고 만든 돈벌이 수단”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AI가 생성하는 콘텐츠에 대해서도 “되새김질하는 소처럼, 끝없이 되풀이되는 무의미한 순환”이라고 일침을 날렸다. ‘플루리부스’의 엔딩 크레디트에는 “이 시리즈는 인간이 만들었습니다”라는 문구가 들어간다.

    조선일보

    과학자 프랑켄슈타인(오스카 아이작·오른쪽)은 창조물에 생명을 불어넣는 데 성공하지만, 자신이 만든 괴물을 통제하지 못하고 파국을 맞는다./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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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같은 시기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영화 ‘프랑켄슈타인’ 역시 과학기술의 무책임한 발전에 대해 경고한다. ‘판의 미로’ ‘셰이프 오브 워터’의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이 메리 셸리의 고전소설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이다. 오만한 과학자 프랑켄슈타인은 전장의 시체를 조각조각 이어 붙여 인간과 닮은 ‘괴물’을 만들어낸다. 평생을 바쳤던 실험에는 성공하지만, 이후 괴물을 통제하는 데 실패하고 도망쳐 버린다. 아버지 같은 존재에게 버려진 괴물은 자신의 창조주를 뒤쫓기 시작한다.

    델 토로 감독 역시 AI에 비판적인 입장을 밝혀왔다. 그는 NPR 인터뷰에서 “올해 61세인데 죽는 날까지 AI를 쓰지 않길 바란다. 그걸 쓰느니 차라리 죽겠다”고 했다. 또한 “프랑켄슈타인 박사를 현대의 테크 재벌과 닮게 그리고 싶었다”고도 했다. “극 중 프랑켄슈타인 박사는 결과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무언가를 맹목적으로 만들어내지 않나. 우리도 지금 우리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잠시 멈추고 생각해 봐야 한다.”

    [백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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