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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06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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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뒤통수까지 연기하는 무대…관객이 둘러싼 연극 ‘트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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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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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대 한가운데에 식탁이 있고, 객석은 무대를 삼면으로 둘러싼다. 보통 관객은 무대 맞은편에서 바라보지만, 이 연극은 관객이 투우를 감상하듯 둘러싼다. 때문에 배우들은 한 번 등장하면 퇴장할 수 없다. 모든 장면을 소화하고 실시간 음식까지 먹는다.

    이에 앞 모습은 물론 옆 얼굴, 뒤통수까지 연기해야 하는 ‘고난도’ 작품. 연극 ‘트랩’의 배우 박건형과 연출 하수민을 25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만났다.

    실은 하 연출은 오래전부터 박 배우를 주인공 ‘트랍스’에 어울리는 인물로 생각했고 한다. 그런데 그를 만난 뒤 ‘말 한마디’에 더욱 확신을 얻었다.

    “무대 위 트랍스는 과장된 측면이 있지만 사실 스스로 삶을 변화시킬 용기가 없는 평범한 인물이거든요. 박 배우가 ‘평범한 인간’이란 얘길 했을 때 핵심을 관통했다 생각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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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극 ‘트랩’ 출연 배우 박건형과 연출 하수민이 25일 오후 서울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본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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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 배우는 트랍스를 “돈벌이에만 급급하다 지적인 사람들을 만나 고장 나는 인물”이라고 표현했다. 그 말대로 섬유회사 외판원인 트랍스는 출장 중 자동차 사고로 우연히 만난 은퇴한 법조인들의 저녁 식사에 초대되며 엉뚱한 길에 빠진다. 이 법조인들은 무료함을 달래려 ‘모의재판’ 놀이를 하는데, 왕년의 실력을 발휘해 트랍스를 추궁한다. 때로는 네가 저지른 일이 ‘철학적으로 아름다운 작품’이라며 부추긴다. 이 과정을 ‘블랙 코미디’로 그리는 극은 마지막에 충격적 반전으로 막을 내린다.

    뭣보다 이 연극의 매력은 이러한 모든 과정을 관객이 배심원이라도 된 듯 에워싼 채 감상한다는 점이다. 덕분에 배우는 회차마다 커다란 시련(?)에 빠진다.

    “제게 가장 소중하면서 어려운 장면이 ‘등장 신’이에요. 조용한 무대에 들어가 흥을 느끼고 춤도 추며 분위기를 띄워야 해요. 그런데 관객이 워낙 가까우니 때로 제 몸짓을 부끄러워하는 게 느껴집니다. 거기서 같이 민망하면 끝장나는 거죠.”(박 배우)

    무대에서 먹는 것도 고역이다. 음식을 먹되, 대사 차례가 오기 전에 다 씹어 넘겨야 한다. 일러다보니 상대 배우 입의 ‘이물질’이 자신의 와인잔에 들어온 적도 여러 번 있다고 한다.

    “분명 어떤 관객은 이걸 봤을 텐데 ‘이걸 버려, 마셔?’ 오만가지 생각이 그때마다 들어요. 삼면을 둘러싼 객석이 아주 매력적이면서도 난이도가 굉장히 높은 셈이죠.”

    하 연출은 이런 무대를 만든 의도를 ‘마당놀이’에 비유했다.

    “원작 소설을 읽고 ‘향연’과 ‘법정’이 동시에 벌어져야 한다는 게 떠올랐어요. 그래서 큰 테이블은 심판대와 같고, 관객은 배심원이어야 했죠. 사실은 관객도 같이 음식을 먹을 수 있도록 만들고 싶었지만, 거기까진 한계였습니다. 하하.”

    이런 몰입감은 관객은 무대를 지켜보며 계속해서 ‘나라면 어땠을까?’라는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

    “마지막 장면이 공개되면 그날마다 객석 분위기가 다릅니다. 어떤 날은 박수가 나오고, 다른 날은 충격에 휩싸인 침묵이 감돌아요. 결국 이 작품은 관객이 완성하는 겁니다. 한 시간 반 동안 작품으로 들어가 함께 한다는 것. 정말 독특한 경험이니 꼭 참여해 보세요.”

    30일까지.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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