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 나를 좀 제발 그냥 놔두시오!”
―파트리크 쥐스킨트 ‘좀머 씨 이야기’ 중
박혜겸 2026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자 |
열 살 무렵, 어머니가 좋아하는 책이라며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좀머 씨 이야기’를 건넸다. 어머니는 “좀머 씨가 너무 슬퍼서 엉엉 울었어”라고 덧붙였다. 너무 어려서였던 걸까, 나는 이 책의 좀머 씨가 슬프지 않았다.
스무 살이 되면서 서울에 상경했다. 내가 헤아릴 수도, 예상할 수도, 대처할 수도 없는 일들이 시시각각 벌어졌고 어떤 것도 잘 해결해 내지 못했다. 자취방을 구하고 이사 준비를 하던 무렵, ‘좀머 씨 이야기’의 표지를 다시 마주했다. 좀머 씨가 여전히 열심히 걷고 있었다. 커다란 지팡이를 쥐고.
무시무시한 우박이 떨어지던 날, 여느 날처럼 인정사정없이 걷고 있던 좀머 씨를 주인공의 아버지가 불러 세운다. 주인공은 아버지의 차 안에서 평소보다 훨씬 가까이에서 좀머 씨를 바라보았다. 아버지가 말한다. 그러다 죽겠다고, 차에 타라고. 그러자 좀머 씨가 말한다.
“그러니 나를 좀 제발 그냥 놔두시오!”
죽게 내버려두라는 걸까. 아니면, ‘나도 정말 그것이 두려워 이렇게 걷고 있으니 날 내버려두’라는 걸까. 나도 모르게 눈물이 떨어졌다. 그저 좀머 씨가 너무 슬펐다. 그는 매일매일 몇 시간이나 걸었지만, 결국 자신이 떠나고 싶었던 그 무언가로부터 떠나지 못했다. 그것은 그의 끝없는 걸음이 반증한다.
그러나 이것이 나의 성장을 증명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사람은 때로 너무 고통스러워서 어딘가에 매몰되어야만 할 때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을 뿐이다. 매몰된 것은 빠져나오기 위한 발버둥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말이다. 그러니 그가 여전히 어디선가 이토록 걷고 있다고 하더라도 나는 어찌할 도리 없이 그를 그냥 놔두어야 할 것이다. 그것은 내가 가늠할 수 없는 노력일 테니 말이다. 그가 “제발 그냥 놔두시오!”라고 외치지 않아도 되도록.
박혜겸 2026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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