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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06 (토)

    이슈 '미중 무역' 갈등과 협상

    영국, 美 의약품 관세 면제받기로… 대신 신약 비싸게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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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英 제약산업에 관세 부과 중단
    "미국인 부담 분담" 美 요구 수용하자
    영국 내부서 "트럼프에 굴복" 비판도


    한국일보

    의약품 알약이 모여있는 모습. 로이터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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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과 영국이 의약품 관세에 합의하며 양국 간 관세 협상의 마지막 조각을 맞췄다. 미국이 영국산 의약품에 대한 관세를 철폐하는 대신 영국은 신약 구매 단가를 높이기로 했다. 이번 조치로 영국은 신약 구매 지출을 현재보다 늘릴 예정이다.

    英 의약품 보복관세서 제외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1일 성명을 통해 "미국과 영국 간 의약품 가격에 대해 원칙적으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양국 간의 합의에 따라 미국은 영국산(産) 의약품·제약 원료·의료기술을 무역확장법 232조에 따른 보복관세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기로 결정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재임 기간 영국 의약품을 상대로 무역법 301조가 규정한 '불공정 관행' 조사를 벌이지 않겠다는 약속도 내걸었다. 영국 의약업계가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위협에서 완전히 벗어난 셈이다.

    영국은 의약품 관세 면제 대가로 자국 국영 의료체계인 국민보건서비스(NHS)의 신약 구매 지출을 25% 인상하기로 했다. 지난 10년간 의약품 관련 지출을 줄여온 NHS는 생존기간과 삶의 질을 모두 고려해 산정하는 '질 보정 수명(QALY)' 개념을 활용해 신약 도입 가격을 일정 수준 이하로 억제해 왔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NHS는 지금까지 신약 구매 시 QALY 1년(완전 건강한 사람의 수명이 1년 연장된 경우)당 최대 3만 파운드(약 5,820만 원)를 지불해왔지만, 이 금액을 최대 3만5,000파운드(약 6,792만 원)까지 높일 예정이다.

    영국은 NHS의 재정을 보호하고 과도한 의약품 지출을 막기 위해 제약사들에 부과해온 환급금도 현재 23% 수준에서 15%까지 낮추기로 했다. 현재 NHS에 의약품을 공급하고 있는 제약사들은 '브랜드 의약품 가격·접근성·성장 자율제도(VPAG)'에 따라 합의 수준 이상으로 수익을 올릴 경우 초과금을 NHS에 반환하고 있다.

    이날 발표된 영국 정부 조치는 그간 '외국이 의약품 가격을 규제해 싸게 사는 대신 그 부담을 미국 국민들이 져 왔다'며 외국의 '부담 분담'을 요구해 온 트럼프 행정부 주장을 받아들인 것이다. 제이미슨 그리어 USTR 대표도 이날 성명에서 "너무 오랜 기간 미국 환자들은 동일한 제품에 대해 비싼 비용을 지불하며 다른 선진국의 처방약·생물학적 제재 사용을 보조해 왔다"고 밝혔다.

    영국 내에서는 반대 목소리도 나온다. 헬렌 모건 영국 자유민주당 보건분야 대변인은 이날 협상 내용을 "트럼프의 NHS 갈취"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모건 대변인은 "미국인을 최우선으로 둔 트럼프 요구에 영국 정부가 굴복한 것"이라며 "붐비는 병원 복도에 갇힌 환자들은 이를 잊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영국 가디언에 따르면 NHS 측은 신약 도입 자체에는 찬성한다면서도 "사업의 재원 조달 방식이 명확하지 않다"며 "돌봄이나 치료에 사용되는 다른 예산이 전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내비친 것으로 알려졌다.

    이정혁 기자 dinne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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