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범죄’ 비난에 “무력충돌법 준수” 반박
美국방은 SNS에 마약선 격침 패러디 장난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전쟁부) 장관이 지난달 26일 도미니카공화국 산토도밍고 대통령궁에서 기자회견을 하던 도중 미소를 짓고 있다. 산토도밍고=AFP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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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초 격침된 ‘마약 운반선’ 생존자를 숨지게 한 미군 ‘2차 공격’의 명령자는 피트 헤그세스 국방부(전쟁부) 장관이 아니라 공습 작전을 직접 지휘한 해군 제독이었다고 백악관이 해명했다. 그러나 ‘전원 살해’ 지침만으로도 헤그세스 장관이 ‘전쟁 범죄’ 논란을 벗어나기 힘들다는 지적이 나온다.
모조리 죽이라는 장관 지침
캐럴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은 1일(현지시간) 브리핑에서 2차 공격 사실을 인정하며 헤그세스 장관이 당시 공격을 현장에서 지휘한 합동특수작전사령부(JSOC) 사령관 프랭크 브래들리 해군 제독에게 해당 공격 권한을 부여했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브래들리 제독은 부여된 권한과 법의 범위에서 (마약 운반 의심) 선박을 파괴하고 미국에 대한 위협을 제거하는 임무를 수행했다”고 말했다. ‘브래들리 제독이 2차 공격을 명령한 것이냐’는 질문에 레빗 대변인은 “그는 그의 권한 내에서 그렇게 했다”고 확인했다.
앞서 지난달 28일 미국 워싱턴포스트(WP)는 9월 2일 미군이 베네수엘라 인근 카리브해에서 마약 운반선으로 의심되는 선박을 미사일로 격침했는데, ‘전부 죽이라’는 헤그세스 장관의 지시를 이행하기 위해 첫 공격 뒤 선박 잔해에 매달려 있던 생존자 두 명을 추가 공격으로 마저 살해했다고 보도했다.
이날 백악관 해명은 사실일 공산이 크다. 미국 뉴욕타임스(NYT)가 정부 관계자 5명에게 물었더니 헤그세스 장관이 선박 탑승자를 모두 죽이고 선박과 그 선박에 실린 마약을 모두 없애라고 명령하기는 했지만 1차 공격으로 목표가 달성되지 못할 경우 어떤 후속 조치를 해야 하는지까지 구체적으로 지시하지는 않았다고들 대답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주요 관심사도 2차 공격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전날 미국 플로리다주(州)에서 워싱턴 백악관으로 돌아가는 전용기에서 취재진에 생존자 살해를 지시하지 않았다는 게 헤그세스 장관의 주장이며, 자신은 그를 믿는다고 했다. ‘2차 공격이 합법적이었다고 보느냐’는 질문에는 “나라면 그것(2차 공격)을 원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대답했다.
“난파선 사격은 명백한 불법”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전쟁부) 장관이 지난달 30일 자신의 엑스(X) 계정에 올린 그림. 카리브해 일대에서 진행되는 미군의 마약 운반선 격침 작전을 아동용 책 표지로 패러디한 것이다. X 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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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료인 헤그세스 장관이 2차 공격으로 문책당하는 일은 피했지만, 9월부터 카리브해와 동태평양에서 최소 83명의 목숨을 빼앗은 군사 작전의 파장이 쉽게 가라앉지는 않을 전망이다. 우선 평시 군이 설령 범죄 용의자라도 임박한 위협이 아닌 이상 민간인을 고의로 공격하는 것은 불법이라는 게 전문가 중론이다. 따라서 일단 2차 공격 사실을 인정한 이상 불법 비난을 피할 수 없다.
AP통신에 따르면 미국 국방부 전쟁법 매뉴얼에는 “예컨대 난파선에 사격하라고 명령하는 것은 명백한 불법”이라는 설명과 함께 이런 경우 군인들이 불법 명령에 복종하기를 거부해야 한다고 적혀 있다. 무력 충돌이 아닌 상황을 무력 충돌로 간주한 것 자체가 문제인 데다 ‘생존자를 남겨서는 안 된다’는 헤그세스 장관의 방침 역시 적절치 않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현재 여당인 공화당까지 가세한 미국 연방의회 상·하원 군사위원회 모두 이에 대한 조사에 착수한 상태다.
사정이 이런데도 헤그세스 장관은 빈축을 살 만한 행동을 하고 있다. 초당적인 우려와 질타가 쏟아진 전날 밤 자신의 엑스(X) 계정에 캐나다의 아동용 책 시리즈 ‘프랭클린 거북이’의 주인공 캐릭터가 헬기에서 카리브해의 선박들을 향해 폭격하는 장면을 묘사한 그림을 “성탄 선물”이라는 글과 함께 올렸다. 게시물에는 그가 생명을 경시한다는 내용의 댓글이 달렸다. NYT는 “상원 인준 때부터 잡음을 일으키고 임기 내내 말썽을 부린 헤그세스 장관이 기내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베네수엘라 학살의 법적 경계에 대한 질문에 진땀을 빼는 동안에도 농담이나 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꼬집었다.
워싱턴= 권경성 특파원 ficcion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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