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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05 (금)

    ‘첫눈의 전령’이 말했다… “눈은 낭만 아닌 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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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기상관측소장 김규민씨

    조선일보

    서울 종로구 서울기상관측소에서 김규민 소장이 스노우볼을 들고 서 있다. 서울 첫눈은 이곳의 육안 관측이 기준이다. 김 소장은 “지난해 11월 27일 첫눈(18cm)은 못 잊을 것”이라고 했다. /장경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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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눈은 낭만이 아니라 ‘하늘에서 내리는 비상’입니다. 사랑이요? 로맨스요? 드라마 ‘기상청 사람들’ 같은 사내 연애는 없어요.”

    지난달 26일 서울기상관측소에서 만난 김규민(46) 소장이 단호하게 말했다. 첫눈을 비롯해 서울의 모든 기상 현상은 이 관측소 기준으로 기록된다. 4일 내린 올해 서울 첫눈도 이 사람이 육안으로 식별했다. 강남역에 폭설이 내려도 기준점인 송월동 하늘이 맑으면 서울엔 눈이 안 온 것이다. 반대로 마당에 눈이 쌓였다가 다 녹는 사이 못 봤다면 첫눈 기록을 놓치게 된다.

    첫눈 예보가 있으면 놓칠세라 관측관들이 자리를 비울 새가 없다. 관측하는 일만큼이나, 기다리는 일도 고역인 셈이다. 그녀는 “군인들은 눈을 ‘하늘에서 내리는 쓰레기’라고 한다죠? 100번 이해합니다”라고 했다. 관측 실무자 양가영(29) 주임이 거들었다. “기상청 사람들은 눈을 제일 싫어해요. 예보과에서 ‘눈 왔냐’고 전화 오죠, 영상 찍어야죠, 적설량 재야죠…. 전쟁이에요.” 그들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첫눈은 지난해였다고 한다. 보통 진눈깨비로 끝나곤 하는데, 18㎝(자로 잰다)의 폭설이 내렸다.

    관측소는 첫눈 예보가 틀리면 ‘욕받이’가 된다. 예보가 아닌 기록을 맡은 곳이지만 ‘서울 기상’이라는 이름이 달려 오해하는 사람이 많다. 김 소장은 “하루에 항의 전화가 10통씩 걸려오기도 했다”며 “‘다른 동네 눈 오는데 왜 여기는 첫눈이 아니냐’부터 ‘이 XX, 저 XX’, ‘날씨 테마주 샀는데 눈 안 와서 손해 봤다, 니들이 책임져라’, ‘눈 온다 해서 공사 멈췄는데 해가 쨍쨍하다, 손해 물어내라’, 울고 싶을 정도죠.” 물론 훈훈할 때도 있다. 그녀는 “어르신들이 ‘오늘 날씨가 참 좋구려’ 하실 때, 젊은 분들이 ‘덕분에 스키장 가는 날을 잘 잡았어요’ 하시면 욕설로 얼룩진 마음이 씻긴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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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측소 마당에 눈이 절반 이상 덮이면 적설량 측정이 시작된다. 적설량은 적설판에 달린 눈금과 적설척(자)으로 적설판에 쌓인 눈 깊이를 측정해 기록한다. /김규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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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 소장은 중학생·초등생 아이를 둔 워킹맘이다. 4교대 근무 속에서 아이들에게 늘 미안하다. “출근하는 걸 애들이 ‘눈사람 만들자’며 붙잡았어요. 그런데 직업병인지, 출근 후 관측할 때 ‘이거 습기 없는 건설(乾雪)인데 뭉쳐지려나?’ 하는 생각부터 들더라고요(웃음).” 직업병은 꿈에서도 이어진다. 양 주임은 “매 정시마다 기상 전문을 넣어야 하는데, 그걸 놓쳐서 ‘으악!’ 하고 깨니 오전 3시였다”고 했다.

    아직 첨단 장비가 대체할 수 없는 영역이다. 그들이 AI 시대에도 관측소를 지키는 이유다. 김 소장은 “기계는 아직 인간의 감각을 따라오지 못한다”고 단언했다. 구름의 고도와 양을 측정하는 운고운량계에서 발사된 레이저가 하층운이 두꺼우면 상층운에 도달하지 못한다. 또 강우 감지기는 새똥을 눈비로 오인하기도 하고, 눈과 비를 구분하지 못한다고 했다. 결국 관측관들의 육안 판정이 필요하다.

    서울기상관측소는 1932년부터 100년 가까이 서울 기상을 관측해 왔다. 그곳의 책임자는 ‘가장 완벽한 날씨’를 물었을 때 뭐라고 답할까. “저희는 비나 눈이 오는 날씨를 ‘위험 기상’이라고 불러요. 청명한 가을 하늘처럼 위험 없는 날씨가 가장 완벽하죠!” 과연 현실적이었다. “이번 주는 좀 안심이지만 다음 주에 첫눈이 오면 ‘위험’하죠”라고 덧붙였다. 우리가 낭만을 볼 때 ‘기상청 사람들’은 분주히 뛰어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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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뉴스1) 황기선 기자 = 첫눈이 내린 4일 오후 서울 광화문 네거리에서 퇴근길 시민들이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행정안전부는 이날 서울, 인천, 경기, 강원 등 4개 시도에 '대설 특보'를 발효했다. 2025.12.4/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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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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