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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05 (금)

    트랜스젠더 여탕 출입 판결에… 美 한인 찜질방들 초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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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일보

    성전환 수술을 하지 않은 채 미국 한인 찜질방 여탕 출입을 하려다 제지된 뒤 소송을 걸어 승소한 트랜스젠더 여성 헤이븐 윌비치와 알렉산드라 고버트(왼쪽부터). 이들은 각각 워싱턴주와 뉴저지주의 한인 찜질방에서 여탕 출입 문제로 갈등을 빚어 논란이 됐다.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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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한인들의 대표적인 사업 중 하나로 꼽히는 대형 찜질방들이 미국 사회의 ‘DEI(다양성·형평성·포용성)’ 정책과 충돌하며 혼란을 겪고 있다. 미국에서는 성전환 수술 여부와 관계없이 본인이 스스로 여성이라고 정체성을 밝히면 신분증상 성별을 여성으로 바꾸는 것이 어렵지 않다. 최근 법원들이 이러한 신분증상 성별을 기준으로 성전환 수술 전이라도 트랜스젠더의 여탕 출입을 강제하는 판결을 잇달아 내리면서 찜질방 업계가 당혹스러운 상황에 놓였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DEI 정책 철폐를 주장하며 트랜스젠더의 여성 스포츠 참가 금지를 강력하게 밀어붙이고 있지만 한인 찜질방의 현실은 아직 법과 규제, 고객들의 반응 사이에서 각개전투를 벌이는 모양새다.

    지난 3일 찾은 버지니아주의 S찜질방은 600명 이상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는 지역 내 대표적인 한인 찜질방이다. 입구에는 “우리는 어떤 손님도 성별·인종·나이 등으로 차별하지 않는다”는 문구가 붙어 있었지만, 그 옆에는 “찜질방 입장 시 나이를 불문하고 남녀를 구별해 입장해야 한다”는 규칙이 병기돼 있어 현장에서도 혼선이 감지됐다.

    출입구 직원은 트랜스젠더 고객 안내 기준에 대해 “정부 발급 신분증이 여성으로 표시돼 있으면 여탕으로 안내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성전환 수술을 받지 않은 트랜스젠더 여성이 여탕 입장을 요구할 경우 “수영복 착용을 권유한다”고 했다. 수영복 착용 요구가 ‘차별’이라며 손님이 거부할 경우 어떻게 하느냐는 질문에는 “내부 논의가 필요할 것 같다”면서도 “다행히 아직까지는 그런 사례가 없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문제는 최근 뉴저지주의 K사우나 사건으로 불거지며 논란이 됐다. 성전환 수술을 하지 않은 트랜스젠더 여성이 2022년 여탕 입장을 시도했다가 사우나 측으로부터 수영복 착용을 요구받자 차별이라며 소송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민주당 성향이 강한 뉴저지의 법원은 최근 “성별 정체성과 신체가 전통적 고정 관념과 일치하지 않더라도 모든 시설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사우나 직원에 대한 성별 정체성 교육을 의무화하고 트랜스젠더 여성에 대해 정신적 피해 보상을 명령했다.

    이 법원 명령은 워싱턴 인근 한인 찜질방들 사이에서도 화제가 됐다. 버지니아의 또 다른 대형 한인 찜질방인 K찜질방은 이날도 미국인 여성 손님들이 추운 날씨 속에 줄지어 입장하고 있었다. 미국 찜질방은 알몸으로 이용하는 한국식 목욕 문화가 상당 부분 현지화되면서, 이용객도 한국인보다 미국인이 더 많이 보이는 곳도 많다.

    이곳 관계자는 “여자 아이들도 함께 이용하는 공간인데 수술받지 않은 트랜스젠더 여성이 여탕에 들어온다면 남아 있을 손님이 얼마나 되겠느냐”고 우려했다. 이곳 역시 신분증 성별을 기준으로 입장을 허용하지만, 수술 전임을 밝히면 수영복 착용을 권한다고 한다. 관계자는 “지금까지는 알몸으로 이용해야 한다는 공간이 있다는 사실을 고지하면 (수술 전) 트랜스젠더 손님들 대부분이 먼저 스스로 발길을 돌린 경우가 더 많았다”고 설명했다. 현장에서 만난 한인·미국인 여성 고객들 역시 “수술하지 않은 트랜스젠더가 여탕에 들어올 경우 함께 이용할 수 없다”며 “차라리 이들을 위한 별도 공간을 마련하지 않는다면 앞으로 오지 않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조선일보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 미드웨이 국제공항 내 남성과 여성, 트랜스젠더 등 성별 정체성과 관계 없이 모두가 사용 가능한 공용 화장실의 모습. /박국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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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이러한 충돌을 근본적으로 해소할 방법은 뚜렷하지 않다. 트럼프 대통령의 방식대로 행정명령을 통해 성전환자의 찜질방 출입을 일괄 금지하는 방식을 추진하기도 어렵고, 최근 몇 년간 지역마다 유사 사례가 반복되는 현실 속에서 찜질방들은 결국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개별적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워싱턴주 시애틀의 한인 찜질방인 O스파에서도 2020년 성전환 수술을 받지 않은 트랜스젠더 여성이 여탕 입장을 시도하다 제지를 받자, 이를 워싱턴주 인권위원회에 고발했다. 민주당 성향이 강한 워싱턴주 인권위원회는 “수술 여부를 이유로 서비스를 거부하는 것은 차별금지법 위반”이라고 결정했다. O스파는 이에 대해 “미국 수정헌법이 보장하는 언론·종교·결사의 자유 침해”라며 소송을 했으나 1심에 이어 지난 6월 2심에서도 패소했다. 교회 장로인 해당 스파 대표는 “남성 신체를 가진 사람이 여성만 있는 사우나에 들어오는 것이 말이 되느냐”며 “성전환자의 인권도 중요하지만 1~2%의 인권을 위해 나머지 98% 이용객의 인권이 무시돼도 된다는 건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반발했다.

    2021년 캘리포이나주 LA의 W사우나에서는 성범죄 전력이 있는 생물학적 남성 트랜스젠더가 여탕에서 성기를 노출한 혐의로 기소됐지만, 지난 5월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됐다. 검찰은 해당 고객이 고의적 노출로 성적 흥분을 유도했다고 주장했으나, 배심원단은 당시 발기 여부가 명확하지 않아 성적 의도가 입증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캘리포니아주는 미국 내에서도 민주당 세가 가장 강한 곳으로 DEI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결국 비슷한 사례가 반복될 때마다 찜질방과 고객들이 각기 다른 방식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가 지속될 전망이다. 업주들 사이에서는 “트랜스젠더 손님이 그냥 안 오기만을 바랄 뿐”이라는 말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뉴저지주의 K 사우나는 최근 법원 명령 이후 “정부 또는 주 발급 신분증에 표시된 성별 정체성에 따라 라커룸을 이용할 수 있다”고 홈페이지 정책을 개정했다. 그간 수술 여부에 맞춰 수영복 착용 권고 등 자체 기준을 유지해 왔으나 법원 조치로 사실상 백기를 든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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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워싱턴=박국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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