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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슈 로봇이 온다

    "인공관절 수술, 톱질이 아니라 밀링”… 제진호 원장이 선택한 10억 로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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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진호 연세무척나은병원장 인터뷰

    이 기사는 2025년11월28일 07시33분에 팜이데일리 프리미엄 콘텐츠로 선공개 되었습니다.


    [이데일리 김지완 기자] "인공관절은 환자 인생에서 마지막 수술이라고 생각합니다. 한 번 수술하면 돌이킬 수 없어요. 그래서 더 정확해야 하고, 더 오래 가야 합니다. 무엇보다 덜 아파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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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진호 연세무척나은병원장이 지난 21일 이데일리와 단독 인터뷰 중이다. (사진=김지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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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광진구 천호대로 연세무척나은병원에서 지난 21일 만난 제진호 병원장은 무릎 인공관절 수술 로봇을 도입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그는 "안 아프게, 오래 쓰게"라는 단어를 반복했다. 겉으론 로봇수술을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실상은 환자 이야기였다.

    "솔직히 제 입장만 생각하면, 그냥 손으로 수술하는 게 더 편합니다. 준비 시간도 짧고, 수술 시간도 7분가량 줄어듭니다. 그런데도 10억원이라는 거금을 들여 로봇을 들여온 건, 환자한테 좀 더 좋은 수술을 해주고 싶어서였어요.'

    제 원장은 2021년 3월 국내 의료로봇 기업 큐렉소(060280)의 인공관절 수술로봇 '큐비스-조인트'(CUVIS-joint)를 도입했다. 제진호 원장은 한 해 인공관절 수술만 300건 안팎, 지난 20여 년간 인공관절 수술 집도만 6000건을 훌쩍 넘긴 정형외과 의사다.

    그는 연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석사를 취득했다. 이후 고려대에서 의학박사를 받았다. 세브란스병원 임상교수, 연구원을 거쳤고 연세대 의대와 고대의대에서 외래교수를 역임했다.

    왜 하필, 비싼 '큐비스-조인트'였나

    현재 인공관절 수술 로봇은 국내 제품 도입과 해외 제품 도입 간 차이가 크다. 믿을 수 없는 얘기지만 해외 제품 도입이 훨씬 경제적이다. 제 원장도 도입 전 스트라이커(Stryker), 짐머바이오매트 등의 수술로봇을 꼼꼼히 검토했다.

    "해외 수술로봇은 사실 병원 입장에서 도입 장벽이 굉장히 낮아요. 장비를 거의 무상으로 깔아주고, 대신 일정 건수 이상 수술을 하면 소모품에서 비용을 회수하는 구조거든요. 프린터 본체 싸게 팔고 토너에서 수익을 내는 구조랑 비슷하죠."

    그에 비해 큐비스-조인트는 프로모션이 일절 없다. 수술로봇 도입에 10억원을 내야한다. 이런 이유로 제 원장 주변에도 큐비스-조인트를 이용하는 의사를 찾기 힘들다. 아무리 수익을 많이 내는 병원이라도 10억원은 높은 진입장벽이다.

    그럼에도 제 원장은 망설이지 않았다.

    "큐비스-조인트는 제가 생각하는 '진짜 로봇'에 가장 가까운 완전 자동 방식이었어요. 반면 다른 로봇들은 드릴을 손에 쥐고 수술을 하는 반자동 방식이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로봇과 거리가 멀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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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진호 원장이 큐렉소의 큐비스-조인트를 사용 중이다. (출처=연세무척나은병원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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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엇보다 가장 큰 차이는 절삭 방식의 차이다.

    "큐비스-조인트를 선택한 건 '소잉'(sawing)이 아니라 '밀링'(milling) 방식이라는 점이 결정적이었습니다.”

    제 원장은 인공관절 수술에서 "뼈를 어떻게 깎느냐"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소잉은 말 그대로 톱질입니다. 날이 달린 톱이 진동하면서 뼈를 '싹둑싹둑' 잘라요. 직선으로만 절삭하다 보니까 열 손상이 생기고, 날이 지나가는 주변으로 뼈 세포가 손상됩니다. 세포가 죽습니다."

    "반대로 밀링은 '갈아내는' 방식입니다. 다이아몬드 세공처럼 조그만 팁이 초당 수만 번 회전하면서 뼈를 갈아냅니다. 한 번 지나간 자리를 다시 긁지 않고, 표면이 아주 매끈하게 마무리됩니다. 절단면이 예쁘다고 느껴질 정도예요. 세포 손상도 최소화 됩니다."

    "건물 기울어지면 무너지듯이… 오래 써야 한다"

    가장 만족하는 건 '얼라인먼트'(alignment)다. 얼라인먼트는 고관절–무릎–발목을 일직선으로 맞추는 일이다.

    "건물도 그렇고, 사람 다리도 그렇고, 똑바로 서 있어야 오래 갑니다. 처음엔 멀쩡해 보여도 조금씩 기울어져 있으면 결국 무너져요. 인공관절도 마찬가지입니다. 수술 직후 결과만 좋은 게 아니라, 10년, 20년 뒤에도 버텨야 좋은 수술이라고 할 수 있어요."

    손 수술은 무릎 주변만 보고 평균적인 각도(6도)를 기준으로 '일직선이 됐다'고 가정한다.

    "사람 뼈가 다 똑같이 생긴 게 아니잖아요. 어떤 분은 4도가 맞고, 어떤 분은 8도가 맞는데, 다 6도로 맞춘다고 해서 그게 진짜 '내 몸에 맞는 일자'가 되는 건 아닙니다. 평균적으로는 0도가 나오더라도, 그 안에는 -2도, +2도 편차가 섞여 있는 거죠."

    "로봇 수술은 CT로 환자 뼈 모양을 3D로 다 읽어냅니다. 사람마다 다른 축을 계산해서, 그 사람에게 맞는 일자를 찾아서 절삭을 해줘요. 손 수술과 비교하면 얼라인먼트 오차가 눈에 띄게 줄어듭니다. 이건 수술 후 엑스레이만 봐도 바로 느껴져요."

    그래서 그는 인공관절 수술의 '좋은 결과'를 두 가지로 정리한다.

    "첫째는 수술하고 나서 안 아파야 하고, 둘째는 인공관절을 오래 써야 합니다."

    "손 수술에선 먼저 대퇴골(허벅지뼈) 안에 골수강까지 핀(심)을 박아 '기준축'을 잡습니다. 뼈 안에 심을 넣는 과정에서 출혈이 발생합니다. 반면, 로봇수술은 CT 촬영으로 기준점을 잡기 때문에, 뼈에 심을 박을 필요가 없습니다. 손 수술이 50~100cc 가량 출혈이 많습니다. 앞서 세포 손상도 로봇수술이 적구요."

    "인공관절을 오래 쓰는 데도 로봇수술이 낫습니다. 얼라인먼트가 정확하니까요."

    "환자에 좋으라고 쓰는 것, 편하자고 쓰는 거 아냐"

    로봇 수술이 의사에게 '꿈의 기술'일 것 같지만, 제 원장은 고개를 저었다.

    "도입 초기 6개월은 오히려 스트레스가 더 컸어요. CT 찍고, 수술계획 세우고, 내비게이션 맞추고, 로봇 세팅하고, 익숙해질 때까지는 수술방에서 식은땀을 진짜 많이 흘렸습니다."

    "지금은 많이 익숙해졌지만, 손 수술보다 더 편하냐고 물어보시면, 솔직히 '아니다' 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수술의 95%를 로봇으로 한다. 일반 수술로 돌리는 경우는 경제적으로 부담이 큰 환자, 또는 뼈 결손이 너무 심해 변수가 많은 일부 환자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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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진호 원장이 일본, 말레이시아 정형외과 전문의 앞에서 큐비스-조인트를 이용한 인공관절 로봇수술을 시연 중이다. (출처=연세무척나은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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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공관절 수술로봇 취재할 때마다 따라붙는 질문 하나를 꺼냈다. 국내 의료계에선 '한국 의사들 손기술이 워낙 좋아 로봇 없어도 충분히 잘한다'는 말이 식지않는 유행처럼 떠돈다.

    "저는 단호하게 말합니다. 로봇을 안 써본 사람이 하는 말입니다."

    "이건 제가 편하자고 쓰는 기계가 아닙니다. 환자에게 좀 더 좋은 수술을 받게 하려고 쓰는 도구입니다. 절단면이 깨끗하게 나오고, 얼라인먼트가 정확하게 맞고, 출혈도 줄어드니까요. 수술방에서 뼈가 깎여 나가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확실히 다릅니다."

    물론, 로봇이 인공관절 수술의 필요충분조건은 아니다.

    "정형외과 인공관절 로봇은 사람 손을 대체하는 게 아닙니다. 사람 손이 할 수 없는 영역, 특히 뼈 절삭에서 정밀도를 올려주는 도구입니다. 살을 절개하고 봉합하고, 인대 밸런스를 맞추고, 연부조직 손상을 줄이는 건 여전히 의사의 몫입니다."

    "포르쉐, 페라리를 사준다고 운전을 잘하는 건 아니잖아요. 차가 아무리 좋아도 운전자가 잘해야 합니다. 로봇도 똑같아요. 도구는 도구일 뿐이고, 그 도구를 얼마나 잘 활용하느냐는 전적으로 의사와 팀의 경험에 달려 있습니다."

    "마지막 수술… 쉽게 칼 대고 싶지 않아"

    인공관절 수술을 대하는 제 원장의 철학은 단호하면서도 섬세하다.

    "인공관절은 무릎에 들어가는 마지막 수술입니다. 한 번 해버리면 되돌릴 수 없어요. 그래서 저는 조금 아프다고 해서 무조건 수술하자는 말을 절대 못 합니다."

    "약물치료, 주사치료, 관절내시경, 생활습관 교정… 할 수 있는 보존적 치료는 끝까지 다 해보고, 정말 안 되는 분들에게만 수술을 권합니다. 그분들한테는 '이제야 비로소 수술을 권할 수 있는 단계'가 된 거죠. 그런 분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좋은 수술을 해드리고 싶은 마음이 이 로봇 도입의 출발점입니다."

    수술·진료 일정 사이로 겨우 시간을 쪼개 나와 로봇 수술 이야기를 풀어놓던 제진호 병원장의 말에는, 기술에 대한 확신보다 환자에 대한 애착이 더 짙게 묻어 있었다.

    "로봇이든 뭐든, 저는 그 무릎이 조금이라도 더 오래, 덜 아프게 버텨줬으면 하는 마음 하나로 수술하고 있습니다."

    한편, 연세무척나은병원은 관절, 척추 전문 병원으로 9명의 의사를 비롯 100여 명이 근무 중이다. 9명의 의사들은 척추, 어깨, 무릎, 고관절, 손·발, 팔꿈치 등으로 각자 전문분야를 담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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