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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05 (금)

    [인사이드 스토리]'온·오프' 갈림길…이니스프리의 선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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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시장 인기에 브랜드숍 최초 1조 클럽
    H&B·온라인 화장품 시장 장악으로 위기
    브랜드숍 유통 모델 자체가 한계라는 지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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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비즈워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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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달 26일 '이니스프리' 가맹점주들이 서울시 용산구의 아모레퍼시픽 본사 앞에 모였습니다. 이니스프리 본사에 항의를 하기 위해서였는데요. 온라인 채널에서 가맹점보다 훨씬 싼 가격에 이니스프리 제품이 팔리면서 가맹점이 설 자리를 잃었다는 주장이었습니다. 가맹점주들은 '올리브영과 온라인 채널 공급을 중단하라'고 요구하기도 했습니다.

    가맹점과 본사간 갈등은 유통업계에서 종종 벌어지는 일입니다. 하지만 이니스프리의 경우는 해결이 쉽지 않아 보입니다. 이니스프리가 직면한 건 단순히 판매 채널의 문제가 아니라 시장의 구조적인 변화이기 때문입니다. H&B 스토어와 온라인 채널이 화장품 시장을 장악하면서 이니스프리처럼 가맹점을 중심으로 한 브랜드숍의 입지는 점점 더 좁아지고 있습니다.

    브랜드숍 1등이었는데

    이니스프리는 한때 국내 브랜드숍 시장을 대표하는 브랜드였습니다. 브랜드숍은 단일 브랜드 제품만을 가두점에서 판매하는 형태의 화장품 매장을 말합니다. 가두점 형태의 가맹 매장을 많이 냈기 때문에 '로드숍'이라고도 불렸습니다. 로드숍의 시초는 1999년 에이블씨앤씨가 론칭한 '미샤'입니다.

    이니스프리는 아모레퍼시픽그룹이 2000년 선보였습니다. 미샤, '더페이스샵'보다 시장 진입은 늦었지만 '자연주의 화장품'이라는 점을 앞세워 가파른 성장세를 보였습니다.

    이니스프리의 차별점은 '제주 천연 원료'와 '합리적인 가격'이었습니다. 제주산 유기농 녹차, 화산송이, 동백, 한란 등에서 추출한 원료로 제품을 만들었습니다. 에코 손수건, 플레이 그린 페스티벌, 이니스프리 숲 캠페인 등 환경 프로젝트도 병행하며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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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달 26일 전국이니스프리가맹점협의회가 서울시 용산구 아모레퍼시픽 본사 앞에서 집회를 벌이고 있다. / 사진=전국가맹점주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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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년대 중반에는 국내에 중국인 관광객(유커)이 몰려오면서 이니스프리 역시 더욱 가파르게 성장했습니다. 미세먼지와 황사에 민감한 중국 여성들이 친환경 화장품을 표방하는 이니스프리에 지갑을 열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이니스프리가 2010년 출시한 '제주 화산송이 모공 마스크'와 '더 그린티 씨드 세럼'은 밀리언셀러가 되기도 했죠. 이니스프리는 중국 본토에서도 인기가 높았습니다. 상하이 등 주요 도시에 오프라인 매장도 열었습니다. 2016년에는 중국 내 이니스프리 매장이 300개가 넘기도 했습니다.

    이런 성장세에 힘입어 이니스프리는 2016년 국내외 합산 매출 1조원을 돌파했습니다. 중저가 브랜드숍 중 '1조 클럽'에 이름을 올린 건 이니스프리가 처음이었죠. 그해 국내 매출은 7679억원, 영업이익은 1965억원에 달했고요. 해외 매출 비중도 40% 가까이 될 정도였습니다.

    설 자리 잃은 가두점

    하지만 2017년 사드 사태가 터지면서 모든 것이 달라졌습니다. 한한령으로 중국인 단체 관광객 발길이 끊겼고 중국 내에서는 자국산 화장품이 애국 마케팅에 힘입어 급부상했습니다. 이니스프리는 중국에서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갔습니다. 2019년 600개가 넘었던 중국 매장은 2021년 다시 약 300개로 줄어들었죠. 결국 이니스프리는 2023년 중국 오프라인 시장에서 완전 철수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더 큰 문제는 이 시기 국내 화장품 시장의 구조가 바뀌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2000년대 중반 미샤, 더페이스샵, 스킨푸드 등으로 시작된 브랜드숍 열풍은 2010년대 중반까지 전성기를 구가했습니다. 하나의 브랜드 제품만 모아 파는 것은 당시로서는 새로운 유통 형태였죠. 같은 브랜드 제품을 파니 정기적인 할인 행사가 가능하다는 점도 강점이었습니다. 가맹사업을 발판으로 전국에 빠르게 유통망을 펼칠 수 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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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2010년대 중반부터 올리브영과 같은 H&B 스토어가 화장품 시장을 장악하기 시작했습니다. 소비자들은 다양한 브랜드를 한 곳에서 비교하며 살 수 있는 멀티 브랜드숍을 선호했습니다. 코로나19 시기를 지나면서 온라인 채널도 급속도로 성장했습니다. 쿠팡, 네이버 등에서 더 싸게, 더 편하게 화장품을 살 수 있게 되면서 굳이 브랜드숍을 찾을 이유가 없어졌습니다.

    이니스프리 역시 이런 브랜드숍 시장 몰락의 직격탄을 맞았습니다. 전국이니스프리가맹점협의회에 따르면 2016년 1000개가 넘던 이니스프리 매장은 2020년 656개, 2023년 338개로 줄어들었고 현재는 전국 147개만 남아있습니다. 내년에는 100개 이하로 떨어질 것이란 우려도 나옵니다.

    실적도 크게 악화했습니다. 2016년 7000억원이 넘었던 국내 매출은 2020년 3486억원으로 반토막 났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친 후 2022년에는 2997억원까지 줄어들었죠. 이니스프리의 국내 매출액이 3000억원에도 미치지 못한 것은 2012년 이후 10년 만이었습니다.

    리브랜딩마저

    그렇다고 이니스프리가 가만히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2023년 전면 리브랜딩을 단행하면서 브랜드의 로고, 컬러, 패키지까지 모두 바꿨습니다.

    하지만 리브랜딩도 효과는 없었습니다. 오히려 이니스프리의 브랜드 정체성을 흔드는 결과만 가져왔습니다. 이니스프리를 상징하던 '제주' 이미지가 희석되면서 차별점이 약해졌습니다. 운영 품목도 크게 줄어들면서 핵심 제품이 단종됐고 고객들은 '구매하던 제품이 없어졌다'며 매장을 떠났습니다.

    실제로 리브랜딩 이후에도 이니스프리의 실적 하락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이니스프리의 매출은 2023년 2738억원, 2024년 2246억원으로 계속 줄어드는 추세입니다. 지난해 영업이익은 16억원에 불과했습니다. 영업이익률은 0.7%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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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니스프리가 서울 성수동에 위치한 플래그십 스토어에서 연 팝업스토어. / 사진=이니스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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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니스프리 본사가 가맹점 외에 다양한 판로 개척에 나설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시장 자체가 변화하고 있기 때문에 오프라인 가맹점만으로는 브랜드가 생존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린 겁니다.

    문제는 이 전략이 가맹점주들의 이익과 정면으로 충돌한다는 점입니다. 가맹점들에게 이커머스는 직접적인 경쟁 상대입니다. 일반적으로 한 곳에서 구매한 제품을 다른 곳에서 또 구매하진 않으니까요. 게다가 온라인 채널에서는 공격적인 할인과 프로모션이 이뤄집니다.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할인 프로모션을 감행하죠. 가맹점은 이커머스와의 가격 경쟁에서 밀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아모레퍼시픽은 가맹점 지원책도 내놓고 있습니다. 2019년 업계 최초로 '마이샵' 제도를 도입해 온라인 매출의 일부를 가맹점에 배분하고 있고요. 상생펀드 등으로 가맹점당 연간 1000만원 수준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이외에도 정기적으로 경영주협의회와 소통하며 채널별 상품 공급과 프로모션 전략을 협의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가맹점주협의회에서 제기한 추가 요구사항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지원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이니스프리가 처한 딜레마는 쉽게 해결되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온라인 채널을 축소하면 브랜드 경쟁력이 약해지고, 온라인을 확대하면 가맹점이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으니까요. 브랜드숍이라는 유통 형태 자체가 한계에 직면한 상황에서 이니스프리가 어떻게 균형점을 찾을 수 있을지 지켜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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