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번의 부도 위기 넘으며 글로벌 완성차로
정몽구 '품질 경영'에 정의선 '디자인 경영'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은 기아 80주년 사사 기획단계에서 3가지를 당부했다. 첫째 쉽게 써라. 둘째 있는 그대로 써라. 셋째 임직원이 자긍심을 갖게 해달라. '기아 80년'을 쓴 이장규 현대차 고문은 5일 열린 '기아 80주년 행사'에서 "자랑스럽고 성공한 역사만 아니라, 시련과 실패의 뼈아픈 역사도 에누리 없이 담아달라는 요구였다"고 전했다.
1952년에 출시된 최초 국산 자전거 '3000리호' / 사진 = 안준형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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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4년 자전거 부품 회사로 설립된 경성정공을 모태로 한 기아의 80년 역사에선 성공보다 실패가 많았다. 1952년 최초의 국산 자전거 '3000리호'를 시작으로 오토바이, 삼륜차를 거쳐 첫 승용차 '브리사'를 선보이는 과정에서 수많은 시련을 거쳤다.
기아는 부도 위기를 두 번이나 겪었다. 1960년 자전거 사업 적자로 첫 부도를 맞았고 자동차 사업이 확장되던 1997년 '부도유예'에 직면했다. 1997년 브라질 출장에서 회사 부도 소식을 전해 들은 정의철 기아 전무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고 회상했다. 송호근 기아 사장은 "도전과 실패 극복을 반복한 분발의 역사"라고 평했다.
기아 삼륜 승용차 / 사진 = 안준형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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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도를 이겨낸 비결은 위기에서 강해지는 기아 특유의 DNA에 있다. 이장규 고문은 "두 번이나 부도나고 법정관리 거쳐 제3자 인수되는 기구한 운명의 차 회사였지만, 부도가 났을 때 아무일 없었던 듯 신차 개발을 멈추지 않았다"고 전했다.
기아 DNA는 여러 경영자를 거치면서 완성됐다. 이 고문이 '마치 독립운동 하듯 사업을 했다'고 평한 김철호 창업자는 "자전거가 완성되면 자동차, 자동차가 완성되면 비행기를 만들겠다"는 철학을 회사에 심었다. 1998년 현대차에 인수된 뒤에는 정몽구 명예회장의 품질 경영, 정의선 회장의 디자인 경영이 기아 체질을 확 바꿨다.
정 회장은 2004년 설립된 유럽 생산거점인 슬로바키아 공장에서 정 명예회장과 함께 했던 일화를 소개했다. 그는 "정 명예회장은 슬로바키아 공장에서 아직 검수도되지 않은 '씨드' 옆 자리에 나를 태우고, 품질경영을 강조했다"며 "아직 잊지않고 똑같이 강조하고 있다"고 전했다.
정의선 회장 / 사진 = 회사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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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질에 디자인이 더해지자 기아는 질주했다. 2009년 호랑이 코를 닮은 라디에이터 그릴을 단 K시리즈가 큰 인기를 끌었다. 2014년부터 3년간 '300만 대 판매'도 달성했다.
고속성장 속에서도 위기는 있었다. 구형 모델을 팔며 급성장했던 중국 시장에서 경쟁력을 잃으며 부진의 늪에 빠졌다. 이 때도 위기 극복 DNA가 발동했다. 2018년 판매 중심이 본사에서 권역본부로 분산하면서 나라별로 성과가 나오기 시작했고, 2020년 사명에서 자동차를 빼며 미래 모빌리티 비전을 제시했다.
정 회장은 "기아는 정제되지 않은 다이아몬드 같이 원초적으로 강하고 개성이 있다"며 "잘 다듬으면 훌륭한 보석으로 태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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