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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05 (금)

    [동십자각] 종로에서 뺨맞고 한강에서 화풀이하는 환율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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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민우 경제부 차장



    서울경제


    지금은 우습게 들리겠지만 원·달러 환율이 1400원 선을 향해 치닫던 지난해 10월. 외환 당국의 한 고위 관계자는 서학개미를 화두로 꺼냈다. 그는 “서학개미와 같은 투자 흐름을 되돌리려면 10년은 걸릴 것”이라며 원화가 구조적인 약세 흐름에 놓여 있다고 진단했다.

    사실 그가 더 걱정했던 건 국민연금이었다. 환 헤지 없이 해외투자를 늘리면서 환율 상승을 부추긴다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그즈음 또 다른 당국자의 “환율 1400원대, 뉴노멀” 발언이 논란이 되기도 했다.

    돌이켜 보니 이유야 어찌 됐든 당시 외환 라인은 지금과 같은 고환율 상황을 예견했던 것 같다. 미국과의 관세 협상으로 매년 200억 달러를 송금해야 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가정하지 못했겠지만 원화 체력이 약해지고 있다는 신호는 읽고 있던 셈이다.

    1년이 흐른 11월 어느 날. 정부 관계자는 사석에서 특정 기업을 거론하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수출로 번 달러를 국내로 가져오지 않고 쌓아둔다”는 취지였다. 기업이 달러를 보유하는 건 해외투자 확대와 경영 불확실성에 대응하기 위한 자율적 판단의 영역인데 환율 불안의 책임을 민간 탓으로 돌리는 것처럼 들렸다.

    외환 당국과 국민연금 등이 참여하는 외환 4자협의체는 전형적인 ‘사후약방문’이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국민연금 등판론을 꺼내면 외환 당국은 손사래부터 쳤다. ‘NCND(긍정도 부인도 하지 않음)’ 전략을 취하며 흔한 말로 ‘선수끼리 왜 이러냐’며 핀잔을 주기도 했다. 그러던 당국이 이제 와서 협의체를 띄우며 대책을 내놓겠다고 한다. 환율이 이렇게 오르기 전에 물밑에서 뉴 프레임워크를 짰으면 어땠을까. 진한 아쉬움이 남는다.

    고환율의 주범은 서학개미도, 달러를 쥔 기업도 아니다. 잠재성장률이 떨어지고 국내 주식시장이 매력을 잃었던 게 근본 원인이다. 경제구조 개혁이 지연되면서 국가 경쟁력이 약해지고 그 결과로 원화 가치가 흔들리는 국면에서 투자자와 기업을 탓하는 건 본말이 전도된 접근이다.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화풀이하는 식으로는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

    서민우 기자 ingagh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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