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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06 (토)

    [동아시론/김병섭]공직 수행 판단 기준은 오직 ‘국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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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6년 만에 폐지되는 공무원 ‘복종의 의무’

    국민 봉사자로서 전문가 책임 완수하란 것

    공직기강 지키고 복지부동 막을 장치 두고

    정무직도 부당지시 거부할 수 있어야 변화

    동아일보

    김병섭 서울대 행정대학원 명예교수


    1949년 제정된 국가공무원법이 현재까지 유지하고 있는 명령과 복종 중심의 공직 체계에서는 헌법 제7조가 말하는 “공무원은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이며, 국민에 대하여 책임을 진다”는 원칙이 사실상 작동하기 어렵다. 현실에서 공무원은 ‘국민’보다 ‘통치 권력자’에게 봉사하며 이에 대해 책임지는 것을 최우선으로 하는 구조 속에 놓이기 때문이다. 그 결과 부당 행위나 권력 남용의 문제를 인지하더라도 상급자의 지시가 있으면 이를 근거로 묵인 및 방조하는 일이 일어난다. 위기 상황에서도 상관의 승인 없이는 행동하지 않고 상관의 지시가 내려오기를 기다리며 문제를 방치하기도 한다. 우리는 이러한 현상이 나타난 것을 지난해 ‘12·3 비상계엄’과 세월호 참사에서 생생히 보았다. 묵인 방조와 소극적 행정은 공무원이 상관에 대한 책임을 우선으로 하고 국민에 대한 책임은 부차적인 것으로 삼고 있음을 보여준다.

    1987년 민주화 이후, 군사문화 청산 및 민주적 책임의 관점에서 공무원의 명령 복종 의무 조항은 지속적으로 문제가 돼왔다. 명령 복종 의무 폐지 법안은 만시지탄의 감은 있지만 이러한 시대적 요구에 부응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국가공무원법 개정안은 그동안 부차적으로 취급돼 온 국민에 대한 책임성을 제일 중요한 기준으로 분명하게 제시하고 있다. 개정 법안 56조는 공무원이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로서 성실히 직무를 수행해야 한다고 규정함으로써 직무 수행 때 궁극적이고 최우선적 판단 기준이 상관의 명령이 아닌 ‘국민’이라는 것을 명백히 밝히고 있다. 직무 수행 과정에서 상관의 지휘·감독에 따라야 하는 것은 기본 전제이지만 그것이 문제가 있거나 더 나은 대안이 있는 경우 공무원이 의견을 제시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뒀다. 모든 공무원이 수직적 수평적으로 때로는 협력하고 때로는 견제하면서 오로지 국민에 대한 봉사자로서 전문가적 책임을 완수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또한 상관의 지휘·감독이 위법하다고 판단되면 이를 거부할 수 있도록 해 내부통제를 강화하고 위법 행정 차단, 권력 남용 방지, 행정 결과의 정당성 확보 등 행정의 책임성을 제고할 수 있도록 했다.

    이러한 복종 의무 조항 폐지의 필요성과 개정 법안의 적절성에도 불구하고, 여러 가지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첫째, 복종 의무가 사라지면 상관의 정당한 지시조차 자의적으로 거부하는 사례가 늘어나 공직 기강이 흔들릴 수 있는 우려다. 둘째, 복종 의무가 사라지면 신속한 집행을 어렵게 하고 책임 부담 회피를 위한 소극적 대응을 유발해 행정능률을 저하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다. 셋째, 개별 공무원의 판단 폭이 넓어져 행정의 통일성과 일관성을 약화한다는 비판이다.

    그러나 공무원 제도는 법령에 따른 성실 의무, 직무명령 준수 원칙, 감사 제도 등 여러 법적·제도적 장치가 이미 마련돼 있다. 복종 조항이 없어지더라도 공무원이 임의적으로 상급자의 지시를 무시하거나 독단적으로 판단할 여지는 크지 않다. 또 신중한 검토와 대응은 의사결정의 합리성을 높여 결과적으로는 큰 비용을 초래하는 실책(Big Mistake)이나 정책 실패를 예방할 수 있게 한다. 다양한 의견 개진과 민주적 절차의 정착은 행정행위의 적법성과 정당성을 높이고, 상급자 특히 최고 권력층의 권한과 책임을 일치시키는 효과가 있다.

    지금 중요한 과제는 복종 의무 조항 폐지 여부가 아니라 이를 실제 공직 사회에 더욱 실효적으로 적용되게 하는 방안에 관한 것이다. 왜냐하면 검찰이 이미 2004년 검찰청법을 개정해 ‘명령 복종’을 ‘지휘·감독에 따른다’로 바꾸고 이의제기권을 인정했지만, 검찰 조직에서 상명하복 문화가 뿌리 뽑혔다고 보기 어려운 현실이 그 방증이다. 이렇게 법 따로 실제 따로가 된 것은 선출직 권력자들의 권한 행사가 언제나 공익적이라고 단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국내외 정치사에서도 정치적 목적을 위해 행정 기구를 도구화하려는 시도는 여럿 있었다. 임명된 정무직 기관장들이 비판적 판단 없이 상부의 지시를 따랐기 때문이다. 복종 의무 폐지가 가장 필요하거나 강하게 작동되어야 하는 분야가 있다면, 그것은 일반 공무원이 아니라 부당한 지시를 실질적으로 거부할 수 있는 권한과 권력의 정점에 가까운 정무직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일반직이 자신을 아끼는 상관에게, 정무직이 자신을 임명한 선출 권력에 보답하는 길은 따로 있지 않다. 공자가 말했듯 상관이 하고자 하는 것 중에서 ‘아름다운 것들은 받들어 따르고 좋지 않은 것은 바로잡아 그치게 하는 것(將順其美, 匡救其惡)’이다. 정무직을 포함한 공무원은 언제 어느 위치에 있든 오로지 ‘아름다운 것’, 즉 국민 전체의 이익을 최우선 판단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이것이 복종 의무 폐지의 대의다.

    김병섭 서울대 행정대학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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