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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08 (월)

    [詩想과 세상]세워둔 연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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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향신문

    간장종지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숟가락을 놓고 가보니 새가 창에 부딪혀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등이 푸른 물총새였다 연못을 살펴보러 왔다가 막 떠나려던 참이었나 새끼들을 부르러 가던 길이었나 앞마당 연못 속 물고기의 수를 헤아리느라 부리가 길어졌구나 물총새는 수평의 연못이 지겨워 연못을 세워두고 머리를 들이밀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바깥을 보려고 창을 달았으나 나의 바깥은 새의 국경이었다 또한 나의 바깥은 반질반질해진 새의 안쪽이었다 새가 밥을 얻으러 가던 실 끝을 땅에 묻고 나는 식은 국을 떠먹었다

    안도현(1961~)


    이 시는 “간장종지 떨어지는 소리”로 시작한다. 그것은 “새가 창에 부딪혀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였던 것. 새의 비극을 알리는 작은 소리였던 것. 그 새는 등이 푸르고 부리가 긴 물총새였다. 누가 처음 새들의 길인 하늘에 유리창을 달 생각을 했을까. 투명한 창은 새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막, 죽음의 벽이다. 새들의 안식처인 나무들도 다 베어내고 탁한 공기를 마시며 우리는 더 높아만 가는 빌딩 유리벽에 스스로 갇혀 지낸다. 투명하고 맑게 빛나는 유리는 우리 욕망의 거울이다. 그 욕망 때문에 하루에도 수만 마리의 새가 사라지고 있다.

    시인은 세상을 보는 하나의 통로인 창문이 달린 “나의 바깥”은 “새의 국경”이었고, “새의 안쪽”이었다고 말한다. 어쩌면 우리들은 새들의 국경을 부수면서, 새들의 하늘을 빼앗으면서 우리의 “창”을 완성해 왔는지 모른다. 시인은 “수평의 연못”이 아닌 “세워둔 연못”이라는 새로운 시선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물총새에게 연못은 부리를 넣고 물고기를 건져 올리는 삶의 공간이다. 우리가 수도 없이 허공에 세워둔 유리창들, 이제는 “연못”처럼 새를 살리는 창으로 바뀔 수 있기를.

    이설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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