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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08 (월)

    [왕태석의 빛으로 쓴 편지] 목련 꽃봉오리에 깃든 사육신의 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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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일보

    가을의 끝자락 대구 달성군의 육신사에 피어난 목련 꽃봉오리 다가올 추위를 견딜 준비를 이미 끝낸 듯 그 너머로 선명한 홍살문을 배경으로 단단하게 서 있었다. 대구=왕태석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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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의 끝자락, 짧아진 햇살에 발걸음이 빨라졌다. 대구 달성군의 육신사를 찾은 것도 그 때문이었다. 이곳은 단종 복위를 위해 뜻을 굽히지 않았던 박팽년을 비롯한 사육신의 위패가 모셔진 사당이다. 해가 기울며 방문객이 끊긴 경내에는 마지막 햇살이 내려앉아 고요한 온기가 감돌았다. 주변을 둘러보다가 햇살에 반짝이는 작은 꽃봉오리가 눈에 들어왔다. 늦가을에 피어난 듯 보여 낯설었지만, 자세히 보니 목련 나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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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의 끝자락 대구 달성군의 육신사에 피어난 목련 꽃봉오리 다가올 추위를 견딜 준비를 이미 끝낸 듯 단단하게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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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솜털 같은 포엽을 두른 봉오리는 다가올 추위를 견딜 준비를 이미 끝낸 듯 단단하게 서 있었다. 그 너머로 선명한 홍살문이 보이자, 꽃봉오리는 더 특별하게 다가왔다. 절개와 충의를 상징하는 홍살문과 겨울을 견디는 목련의 모습이 겹치며, 사육신의 정신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목련은 봄에 가장 먼저 피기 위해 가을부터 꽃눈을 틔우고 차디찬 겨울을 통과한다. 보이는 것은 멈춤이지만, 그 안에서는 혹한을 견딜 힘을 차곡차곡 모으는 과정이 이어진다. 필요 이상의 화려함도, 조급함도 없다. 제때 피어나기 위한 가장 정직한 준비만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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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의 끝자락 대구 달성군의 육신사에 피어난 목련 꽃봉오리 다가올 추위를 견딜 준비를 이미 끝낸 듯 단단하게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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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팽년과 사육신의 삶도 이와 닮았다. 권세의 압박 속에서도 뜻을 바꾸지 않았던 그들의 선택은 짧은 결단이 아니라 긴 고난을 견딘 결과였다. 시대의 추위를 통과한 절개는 세월이 흘러서도 흔들리지 않는 의미로 남았다. 자연의 봉오리와 역사의 인물들이 같은 메시지를 전한다. 봄은 기다림 끝에 오는 것이며, 견딘 사람에게 비로소 열린다는 사실이다. 해가 완전히 기울 때, 홍살문 앞 목련 꽃봉오리는 더욱 선명하게 빛났다. 긴 겨울을 앞두고도 고요히 자신의 때를 준비하는 모습이, 시대 앞에서 뜻을 지켰던 마음과 다르지 않았다. 조용히 피어오르는 그 봉오리는 절개의 무게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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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의 끝자락 대구 달성군의 육신사에 피어난 목련 꽃봉오리 다가올 추위를 견딜 준비를 이미 끝낸 듯 그 너머로 선명한 홍살문을 배경으로 단단하게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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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태석 선임기자 kingw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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