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는' 물이 세균·이물질 씻어내 소독 역할
소독약 과하게 쓰면 오히려 새살 돋는 것 방해
게티이미지뱅크 |
칼에 베이거나 넘어져 피부가 찢어지는 상처를 입으면 반사적으로 구급상자를 찾아 소독약부터 꺼내 듭니다. 가정에서 흔하게 사용하는 소독약은 일명 ‘빨간약’이라 불리는 포비돈요오드와, 바르면 하얀 거품이 나는 과산화수소수입니다.
갈색의 포비돈요오드는 요오드가 주성분인 강력한 산화제입니다. 이 성분은 미생물을 구성하는 아미노산의 질소와 수소 결합을 끊어버리거나 산화 반응을 일으킵니다. 이 과정에서 세균의 효소나 구조 단백질이 파괴되고, 지방산의 탄소 이중결합까지 끊어집니다. 결국 세포벽과 세포막이 무너져 소독 효과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과산화수소수 역시 상처에 닿아 물로 분해될 때 발생하는 활성산소가 세균의 단백질을 손상시키는 방식으로 균을 없앱니다.
상처 치료에서 소독약 도포보다 훨씬 중요하고 우선돼야 할 단계는 ‘상처 세척’입니다. 상처 부위의 이물질과 세균을 물리적으로 씻어내는 것이 감염 예방의 첫걸음이기 때문입니다. 병원에서는 이를 위해 멸균 처리된 생리식염수를 사용합니다. 체액과 농도가 같아 통증이 적고 가장 안전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일반 가정에는 멸균 생리식염수가 늘 구비돼 있지 않으니 수돗물로 상처를 씻어도 괜찮을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의학적으로 문제없습니다.
최근 이와 관련된 연구 결과들이 발표됐습니다. 미국 응급실에서 피부가 찢어져 봉합이 필요한 1세 이상 환자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실험입니다. 연구진은 환자들을 생리식염수로 세척한 그룹과 수돗물로 세척한 그룹으로 나눠 48시간 후, 30일 후의 경과를 추적 관찰했습니다. 그 결과, 두 집단의 감염 발생률에는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차이가 없었습니다. 기존에 발표된 수돗물, 멸균수, 끓인 물 등을 비교한 여러 연구를 종합해 메타 분석한 결과에서도 수돗물 세척은 다른 멸균수 사용과 비교해 감염 위험도에서 차이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멸균되지 않은 수돗물이 안전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선 우리나라 수돗물은 정수 과정에서 불순물을 거르고, 염소 소독 등 철저한 화학 처리를 거쳐 세균 번식을 막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깨끗한 물입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핵심은 물의 성분보다 씻어내는 방식, 즉 ‘흐르는 물’의 물리적 효과에 있습니다. 흐르는 수돗물은 상처 부위에 묻은 먼지나 오염 물질, 세균 덩어리를 물리적으로 씻어내 병원균의 절대적인 수를 줄여주는 탁월한 소독 효과를 냅니다.
작은 상처를 입었다면 약국으로 달려가 생리식염수를 살 필요 없이, 흐르는 수돗물에 상처를 씻는 것만으로 충분합니다. 이때 핵심은 반드시 '흐르는 물'을 사용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대야에 받아놓은 고인 물은 세척력이 떨어질 뿐 아니라 물 자체가 오염될 가능성이 있어 피해야 합니다. 세척 후에는 필요에 따라 포비돈요오드나 과산화수소수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단, 소독약을 너무 과하게 자주 바르면 상처 재생을 돕는 정상 세포까지 파괴돼 회복을 늦출 수 있습니다.
상처 부위를 입으로 빠는 건 해서는 안 될 행동입니다. 입안에는 수많은 세균이 서식하고 있어 침을 통해 상처가 2차 감염될 위험이 매우 크기 때문입니다. 또한 충분한 세척 없이 급하게 밴드나 거즈로 상처를 덮는 것도 좋지 않습니다. 오염 물질이 남은 상태에서 밀폐되면 세균이 증식하기 좋은 환경이 되기 때문입니다. 가벼운 상처라면 깨끗이 씻은 후 밴드 없이 자연 건조해 딱지가 생기도록 두는 것이 오히려 회복에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박창범 강동경희대병원 심장혈관내과 교수. 강동경희대병원 제공 |
박창범 강동경희대병원 심장혈관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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