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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09 (화)

    美 ‘주식 부국’ 만든 숨은 엔진, 피델리티 이끄는 존슨家[이준일의 세상을 바꾼 금융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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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아일보

    애비게일 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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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준일 경희대 회계·세무학과 교수


    2025년 초 2,398로 출발한 코스피가 가파르게 상승하며 사상 처음 이른바 ‘사천피’ 시대를 열었다. 하지만 여전히 한국의 가계 자산에서 부동산이 절대적 비중을 차지하고 주식 비중은 한 자릿수에 불과하다. 미국 중산층이 부동산과 주식을 비슷한 비중으로 보유하고 있는 것과 대조를 이룬다.

    미국인들이 주식을 큰 비중으로 보유하게 된 배경에는 1980년대 도입된 퇴직연금 ‘401(k)’과 개인퇴직연금(IRA), 그리고 이 시장을 확장해 온 금융사들이 있다. 그중 피델리티는 미 최대 규모의 퇴직연금 운영사이자, 개인투자 플랫폼과 자산 운용 서비스를 모두 갖춘 종합 금융 기업이다. 고객 계좌 자산은 15조 달러(약 2경2000조 원), 운용 자산 규모는 6조 달러에 달하고 직원은 7만8000명에 이른다. 이 거대한 금융사는 놀랍게도 비상장 가족회사이다. 3대에 걸쳐 경영권이 승계돼 지금은 창업주 에드워드 존슨 2세의 손녀딸 애비게일 존슨이 이끌고 있다.

    피델리티는 1946년 미국 보스턴에서 설립됐다. 당시 자산 보존을 핵심 가치로 삼아 안정성을 추구하던 뮤추얼 펀드 업계에, 적극적인 운용으로 자산을 불리는 것을 목표로 한 창업주의 접근은 파격적이었다. 이를 위해서는 철저한 리서치와 분석이 있어야 했고, 이는 피델리티의 근간이 됐다.

    하지만 오늘날의 피델리티를 만든 사람은 2대인 네드 존슨이다. 그는 1977∼2014년 최고경영자(CEO)로 재임하며 회사를 크게 성장시켰다. 1974년 업계 최초로 수표를 발행할 수 있는 머니마켓펀드(MMF)를 출시했는데, 이는 투자 자금에 현금과 같은 유동성을 부여한 것으로 일반인들이 은행 예금 대신 펀드에 돈을 맡기는 변화를 일으켰다.

    1980년대 본격 확산된 미 퇴직연금 401(k)는 피델리티에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자금을 유입시켰다. 기존 연금제도는 확정급여형(DB형)으로써, 기업이 연금을 보장해 평생 지급해야 했기 때문에 부담이 컸다. 반면 401(k)는 직원이 급여 일부를 401(k) 계좌에 넣으면, 회사가 일정 금액을 더 계좌에 넣어주는 것으로 제한돼 기업 부담이 적다. 가입자인 직원으로서도 고용주가 추가적으로 불입하는 금액에 더해 세제 혜택을 받을 수 있어 유리하기에 401(k)는 미 직장인의 표준 은퇴상품이 됐다. 네드는 연금을 관리하는 거대 부서를 설립하고 기술과 인프라에 과감히 투자해 기업의 급여 시스템과 통합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 또 투자자들에겐 전화나 컴퓨터로 펀드를 쉽게 관리할 수 있는 편의를 제공해 시장을 점령해 나갔다.

    2014년 CEO로 취임한 3대 애비게일은 모바일 기반 플랫폼을 확대하고, 암호화폐를 보관하고 매매하는 서비스를 앞서서 도입했다. 뱅가드의 패시브펀드에 맞서기 위해 수수료율이 0%인 인덱스펀드를 출시하고, 각종 거래 및 서비스 수수료를 낮추며 치열한 경쟁을 하고 있다.

    미국이 주식 부국이 된 배경에는 주식을 중심으로 자산을 쌓게 만드는 제도와 이를 운영한 금융기업들이 있다. 뱅가드가 저비용 인덱스펀드로 자산 증식을 도왔다면, 피델리티는 미 직장인의 은퇴 자산이 주식시장으로 매끄럽게 흘러가도록 하는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이준일 경희대 회계·세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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