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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09 (화)

    미완성이라 더 완전해지는 것들[허명현의 클래식이 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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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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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명현 음악 칼럼니스트


    12월은 한 해를 돌아보게 만드는 시기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지난 시간 동안 세웠던 결심과 목표를 떠올린다. 새해에는 누구나 새로운 계획을 세우지만, 현실은 늘 계획과 완전히 일치하지 않는다. 목표가 모두 이루어지지 않기도 하고, 어떤 계획은 예상치 못한 순간에 멈추기도 한다. 계획과 현실 사이의 간극, 끝내 완성되지 못한 일들은 때로 아쉬움이나 좌절감을 주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모든 과정이 의미를 잃는 것은 아니다. 완성만이 가치를 만들어내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미완성이라는 상태에도 나름의 특별한 의미가 있으며 그 안에서도 삶은 여전히 유효하고 아름답다. 오히려 미완성은 우리에게 여백을 남겨 주고 그 여백에서 상상과 성찰, 그리고 과정의 가치를 돌아보게 만든다. 이루지 못한 계획의 빈자리에서 우리는 예상치 못한 깨달음이나 새로운 시도를 발견하기도 한다. 때로는 미완의 시간이 완성보다 더 진실하게 우리의 삶을 드러낸다.

    음악에서도 이러한 ‘아름다운 미완성’을 만날 수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슈베르트의 교향곡 8번 ‘미완성’이다. 슈베르트는 1822년에 이 작품을 시작했지만, 단 두 악장만을 남긴 채 끝내 완성하지 못했다. 후대 사람들은 슈베르트가 왜 마지막 두 악장을 남기지 못했는지 여러 가설을 세웠다. 건강 악화, 나쁜 작업 환경, 혹은 단순히 영감의 흐름이 멈춘 탓일 수도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유가 아니라, 오직 두 악장만으로도 이 작품이 놀라운 울림과 충분한 감동을 전달한다는 점이다.

    특히 흥미로운 점은, 존재하지 않는 마지막 두 악장이 오히려 청중에게 독특한 경험을 제공한다는 사실이다. 청중은 남겨진 여백을 스스로 채우며 마음속에서 나머지 음악을 상상하게 되고, 작품은 그 순간 능동적으로 완성된다. 이 음악적 여백은 우리의 삶에 남겨진 ‘미완의 순간’과도 닮아있다. 이루지 못한 결심과 잠시 멈춘 계획 속에서도 우리는 새로운 감정, 새로운 해석, 새로운 깨달음을 발견한다. 슈베르트의 미완성 교향곡이 오래도록 사랑받는 이유는 바로 여백의 힘이 작품의 감동을 더 깊게 만든다는 데 있다. 완성되지 않았기에 오히려 완전함을 느끼게 하는, 역설적인 아름다움 말이다.

    그런 이유로 지금도 전 세계의 수많은 오케스트라는 슈베르트의 미완성 교향곡을 쉬지 않고 올리고 있다. 관객들 역시 여전히 이 작품을 사랑한다. 불완전함이 주는 신비한 울림, 마치 어떤 문장이 마지막 한 글자를 남긴 채 멈춰버린 것 같은 여운은 시대를 넘어 사람들의 마음을 붙잡는다. 결국 슈베르트의 미완성 교향곡은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더 완전해진’ 작품으로 자리 잡았고, 그 매력은 지금까지도 전 세계 음악 애호가를 끌어당기고 있다.

    우리 삶의 미완성도 이와 같다. 한 해 동안 세운 모든 목표를 이루지 못했더라도 그 과정에서 쌓인 감정과 배움, 선택과 시행착오는 이미 충분히 의미 있는 흔적이다. 계획이 완전히 실행되지 않아 남겨진 여백은 때로 허무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그 속에서 우리는 새로운 가능성과 관점을 발견한다. 만약 이런 여백이 없었다면 일상의 경험 속에서 깊은 성찰이나 상상을 떠올리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슈베르트의 미완성 교향곡이 가진 음악적 여백이 청중의 상상을 자극하듯, 삶의 여백 역시 우리에게 새로운 시각과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완성되지 않은 상태에서도 의미와 감동이 충분히 존재한다는 점에서 음악과 삶은 같은 메시지를 전한다.

    한 해의 끝자락에서 우리는 다시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며, 동시에 새로운 계획을 세우기 위한 마음의 준비를 한다. 이때 모든 것이 완벽하게 채워져 있을 필요는 없다. 이루지 못한 계획과 멈춰버린 목표 속에도 이미 충분한 의미가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미완성은 우리 각자에게 해석의 여지를 남기고, 그 여지가 내년을 기대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는 것이다. 음악과 삶 모두에서 미완성은 단순한 부족함이 아니라 상상과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특별한 여백이며 과정을 온전히 느끼게 해주는 선물이다.

    그러니까 미완성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의 가능성이다. 그 여백 속에서 우리는 여전히 자신만의 새로운 이야기를 계속 써 내려갈 수 있다. 지난 한 해의 미완성을 돌아보며 새로운 한 해를 향한 기대와 설렘을 품게 되는 것도 바로 이 미완성이 주는 힘 덕분이다. 미완성으로 남은 올해의 조각들 또한 언젠가 새로운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우리 삶의 한 부분으로 고스란히 이어질 것이다.

    허명현 음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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