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가 반한 이유·주거 계획 담아 부모님께 발표
‘AI로 만든 2세 사진’에…양가 부모님도 ‘활짝’
“부모님 중심서 신랑신부가 주도하는 문화로”
오는 27일 부부가 되는 황다연(28)·하동균(31)씨가 지난 6월 식당에서 열린 상견례 도중 정적을 깨고 말문을 열었다. 두 사람 앞에 앉아 있던 양가 부모님은 ‘결혼 계획서가 뭐냐’고 물으며 놀란 듯 쳐다봤다. 황씨는 준비한 PPT를 넘기며 부부가 될 이들의 일생과 서로 반하게 된 점을 시작으로 신혼여행 계획을 설명했다. AI로 만든 자녀 얼굴 사진을 소개할 때는 환한 웃음이 터져 나왔다. 황씨는 “상견례는 드라마에서 보던 것처럼 딱딱하고 어색한 자리라는 게 익숙한데 PPT를 하니 분위기가 너무 좋아졌다”고 당시 상황을 떠올렸다.
오는 27일 부부가 되는 황다연(28)·하동균(31)씨가 지난 6월 상견례 자리에서 ‘결혼 계획서’ PPT를 만들어 발표를 한 뒤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독자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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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이데일리 취재를 종합하면 최근 MZ세대에선 상견례 PPT가 트렌드로 자리잡고 있다. 어색하고 진지한 모습의 상견례를 탈피해 딱딱한 분위기를 풀기 위한 방법을 모색하면서 생겨난 문화다.
AI로 만든 미래의 자녀 얼굴도 공개
실제 황씨뿐만 아니라 상견례 자리에서 발표를 했다는 예비부부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올해 상견례에서 PPT 발표를 했었다는 30대 우모씨는 발표를 시작 하자마자 우씨의 모친은 눈물을 보였다고 했다. 전반부는 예비 남편이, 후반부는 우씨가 진행했다. 순서는 △신랑·신부와 가족 인사 △연애 이야기 △주거 계획과 2세 계획 △AI로 만든 2세 사진 △결혼 준비 일정 △양가 부모님 안내 사항 등으로 구성했다. 이들 역시 2세 사진을 올렸을 때의 반응이 가장 좋았다고 회고했다. 양가 가족들은 상견례 후 PPT 자료를 친척들에게 자랑할 만큼 예비 사위·며느리의 발표를 기특해했다고 한다.
이들이 상견례를 위해 PPT까지 준비하는 이유는 분위기 때문이다. 양가가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만들 손쉬운 방법이라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결혼을 주도하는 당사자가 부모님이 아닌 자신들이라는 MZ세대의 인식 변화도 이 같은 문화에 일조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우씨는 “부모님 세대만 해도 상견례의 중심은 혼주였지만 요즘 결혼식은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신랑·신부가 정하는 시대가 됐다”며 “그럼에도 어떻게 만났고, 서로 생각하는 마음이 어떤지 알려드리고 싶었다”고 했다. 지난해 5월 상견례를 한 신혼부부 장은아(30)씨도 “상견례 후기를 보면서 불편한 얘기가 나올까 걱정이 많았는데 PPT 발표를 하면 우리가 흐름을 주도할 수 있을 것 같았다”며 “남녀가 정식으로 부부관계를 맺는 것이 ‘결혼’인데 PPT가 그런 의미에서도 가장 잘 맞는다”고 했다.
결혼 당사자가 주도하는 문화로 변화
상견례 PPT가 트렌드가 되면서 온라인상에서는 템플릿 공유도 많아졌다. 인스타그램에서 템플릿을 공유하는 이들에게는 문의도 쇄도한다. 박지연(29)씨는 지난 4월 관련 게시글을 올린 뒤 하루도 지나지 않아 500명의 연락을 받았다. 지금까지 템플릿을 공유한 횟수만 1000건이 넘는다고 한다. 실제 이날 이데일리가 둘러본 결과 템플릿 판매 사이트에도 관련 상품이 판매되고 있었다.
상견례 외에도 MZ세대를 중심으로 전반적인 결혼 문화가 점차 바뀌고 있다. 결혼식에서도 주례 대신 양가 어른의 편지를 낭독하는 순서를 넣거나 결혼식 전 ‘식전 영상’을 만들어 재생하면서 결혼 전 연애 기간 추억을 하객들에게 공유하는 것은 이제 익숙해진 풍경이다. 여기에 흔히 아버지의 손을 잡고 걸어 들어오는 신부의 손을 신랑이 건네받는 입장 방법도 달라졌다. 결혼하는 부부와 양가 부모님 등 세 쌍이 각각 입장하거나 사돈끼리 입장하기도 한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현상이 사회 발전에 따른 자연스러운 변화라고 말한다. 최항섭 국민대 사회학과 교수는 “한국 사회가 탈(脫)근대사회로 접어들면서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가 부드럽고 유쾌한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며 “결혼식도 마찬가지다. 축제 같은 분위기로 치를 수 있도록 결혼식의 형식과 내용이 변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10월 결혼한 장은아(30)·서동혁(33)부부가 제작한 상견례 PPT. (사진=독자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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