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7인이 본 美 국가안보전략
지난 5일 공개된 2025년 미국 국가안보전략(NSS) 지침. /백악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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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외교·안보 최상위 지침인 ‘2025 국가안보전략(NSS)’은 70년간 미국이 주도해 온 ‘단극(單極) 체제’의 종언을 선언하며, 동맹국들에게 냉혹한 ‘각자도생 청구서’를 내미는 전략으로 평가된다. 8일 본지가 접촉한 워싱턴의 전문가 7인은 “미국은 더 이상 북한 비핵화에 매달리지 않으며, 중국을 제압해야 할 적이 아닌 ‘거래 파트너’로 인정했다”면서 “한국은 ‘자체 핵무장’을 포함한 근본적인 안보 전략의 재설계를 강요받게 됐다”고 분석했다.
◇北, 핵 보유국 인정하나
이번 NSS의 논란은 대북 정책의 실종이다. 역대 미국 행정부의 NSS에 빠짐없이 등장했던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CVID)’ 문구는 사라졌다. 북한은 언급조차 안 된다. 이란에 대해 “핵 농축 능력을 파괴했다”며 성과를 과시한 것과 대조적이다. 미국이 북핵의 ‘완전한 폐기’가 불가능함을 인정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닉슨 전 대통령이 설립한 국익연구소(CFTNI)의 한국 담당 국장을 지낸 해리 카지아니스 ‘내셔널 시큐리티 저널’ 회장. |
미국의 현실주의 안보 전문가로 꼽히는 해리 카지아니스 ‘내셔널 시큐리티 저널’ 회장은 “CVID는 죽었다”며 “이제 북한을 다루는 유일한 방법은 군비 통제(군축)뿐”이라고 했다.
미 인도·태평양사령부의 핵심 브레인 역할을 하는 싱크탱크 ‘퍼시픽 포럼’의 데이비드 산토로 회장 역시 “NSS에서 북한이 언급되지 않은 것은 미국이 우선순위를 설정하기를 원하고 인도·태평양에서 (북한보다) 중국이 미국의 초점이기 때문일 것”이라며 “미국의 핵우산이 충분한지는 이제 한국 정부가 스스로 판단해야 할 몫”이라고 했다. 그는 “확실한 것은 북한의 위협이 줄어들고 있지 않다는 점”이라며 “한국은 북한 억지 강화를 위해 더 많은 일을 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미국과 동맹국 간의 비공개 핵전략 회의(1.5트랙)를 주도해 온 미국의 대표적 핵 비확산·억제 전문가인 데이비드 산토로 ‘퍼시픽 포럼’ 회장. |
대안으로 ‘한국 핵무장 용인론’도 나오고 있다. 카지아니스 회장은 “미국이 진정한 동맹이라면 서울의 독자 핵무장에 ‘청신호(Green light)’를 켜줘야 한다. 북한이 핵을 가질 수 있다면 한국처럼 평화적인 동맹국은 왜 안 되는가”라고 했다.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정책 설계를 주도한 헤리티지 재단에서 핵 억제·미사일 방어 전략을 담당하고 있는 로버트 피터스 선임연구원. |
◇中, ‘경쟁자’→‘파트너’
비핵화 삭제 이면에는 미국의 대중(對中) 전략 수정이 있다. NSS는 중국을 더 이상 타도해야 할 ‘전략적 경쟁자’로만 규정하지 않는다. 문서는 미·중 관계를 “과거 성숙한 경제와 빈국의 관계에서, 이제는 ‘근접한 동등자’ 간의 관계”로 재정의했다. 나아가 “베이징과 진정으로 상호 이익이 되는 경제 관계를 맺겠다”고 명시했다.
백악관 NSC(국가안전보장회의)와 미 국방부를 거친 워싱턴의 대표적인 아시아 안보 전략가 잭 쿠퍼 미 기업연구소(AEI) 선임연구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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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리티지 재단과 함께 워싱턴의 보수 진영을 이끄는 양대 싱크탱크로 평가받는 미 기업연구소(AEI)의 잭 쿠퍼 선임연구원은 “이번 NSS는 인도·태평양을 과거 전략들과 매우 다르게 규정하고 있다”며 “트럼프 행정부 1기에는 NSS가 중국을 명확하게 전략적 경쟁자로 지목했지만 이번 문서는 그렇게 하지 않았고, 현재 트럼프는 중국을 ‘G2(양강) 파트너’로 부르기 시작했다”며 “바이든 행정부에서는 인도·태평양 전략이 미국의 이익이 중국의 관점에서 보이지 않도록 하기 위해 작성되었다면, 이번 문서는 (내가 보기에는 잘못되게) 미국의 인도·태평양에서의 이익이 거의 전적으로 중국과 관련되어 있다고 시사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이번 NSS는 또한 북한을 완전히 간과하고 있는데, 이는 서울에서 우려해야 할 사항”이라며 “이는 워싱턴이 평양에 대한 명확한 전략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시사할 뿐 아니라, 이 문서에 따르면 북한이 더 이상 우선순위가 아니기 때문에 한국은 (북한이 아닌) 다른 사안들에서 미국과 협력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점도 함의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이 전략은 또한 ‘제1도련선(중국 연안에서 가장 가까운 섬들의 띠를 가리키는 것으로 일본 규슈-오키나와-대만-필리핀-보르네오 북부 등을 잇는 가상의 방어·전략선)‘에서의 공격을 차단하는 것(추정컨대 중국으로부터의 공격)의 중요성과 동맹국들이 ‘집단방위’에 참여해야 할 필요성을 논의하고 있다”며 “아시아 국가들은 그들 스스로 더 많은 방위 능력에 투자하고 동맹에게 더 많은 부담을 떠안으라고 하는 요구에 반발할 수도 있지만, 중국이 견제되어야 할 전략적 경쟁자라는 근본적 전제는 미국이 인도·태평양에 긴밀하게 관여하고 그곳에서 강력한 군사 태세를 유지할 것임을 의미한다”고 했다. 그는 “전반적으로 인도·태평양 동맹국들은 미국이 인도·태평양을 지정학적·경제적 측면에서 여전히 중요한 초점 지역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전략에 고무되어야 한다“고 했다.
트럼프 1기 백악관 NSC(국가안전보장회의) 선임국장 출신의 리사 커티스 신미국안보센터(CNAS) 소장. 그는 CIA(중앙정보국) 선임 분석관과 국무부, 의회를 거쳐 트럼프 1기 백악관의 안보 전략을 설계한 20년 경력의 전략가로 꼽힌다. |
◇韓 ‘제1 방어선’ 역할 요구
NSS는 “미국이 아틀라스처럼 전 세계 질서를 혼자 떠받치던 시대는 끝났다”고 선언하며, 특히 한국과 일본을 지목해 “적대국을 억제하고 방어하는 데 필요한 능력을 더 투자해야 한다”고 압박했다. 이는 한반도 방어를 넘어, 중국 견제를 위한 최전선 방어의 책임을 동맹국에 떠넘기겠다는 의도라는 평가다.
미 공군전쟁대학(Air War College) 교수로 미군 장교들에게 군사 전략과 동맹 운용을 직접 가르쳤던 국방 전략 전문가인 켈리 그리코 스팀슨센터 선임연구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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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의 유력 외교·안보 전문 싱크탱크 스팀슨센터의 켈리 그리코 선임연구원은 “이른바 모범 동맹국에 대한 강조는 트럼프 1기 동안 시작된 더 넓은 전략적 변화의 일환으로 지금은 더 초당적 지지를 얻고 있다”며 “워싱턴은 방위 부담을 더 많이 떠안고, 정책을 미국 전략과 더 밀접하게 조정할 수 있는 동맹과 파트너들을 점점 더 선호하는데 이것은 미국이 안보 우산을 축소한다기보다는 그 안에서 역할을 재정의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했다. 그는 “미국이 여러 지역에서 여러 동맹국들의 첫 번째이자 주요 방어자 역할을 맡는 기존 모델은 더 이상 지속 가능하지 않다”며 “워싱턴은 첫 번째 방어선 역할을 맡을 수 있는 유능한 파트너들을 필요로 하고, 미국은 그들을 지원하되 여전히 필수적 역할을 수행하는 위치에 있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리코 선임연구원은 “이는 일시적 현상이 아닌, 미국의 인력·산업 능력·예산 한계에 따른 구조적 변화”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러한 기본적인 역학은 어느 대통령 아래에서도 동일할 것”이라며 “동맹국들이 훨씬 더 많은 역할을 하지 않는 한 미국은 아시아, 유럽, 중동의 방위 부담을 동시에 떠맡을 수 없다”고 했다. 그는 “모범 동맹국으로 불리는 한국은 북한에 대한 재래식 억제에서 더 큰 역할을 맡아야 한다”며 “실질적으로 워싱턴은 한국이 높은 수준의 방위 투자 유지와 탄약 생산 확대, 그리고 북한에 대한 일상적 억제 및 위기 대응을 주도하길 원한다”고 했다.
◇‘가치 동맹’의 종말
NSS는 동맹의 기준을 ‘민주주의’가 아닌 ‘공유된 경제적 이익’과 ‘기술 안보’로 이동시켰다. 문서는 “모든 미국 정부 관리는 자신의 업무 중 일부가 ‘미국 기업의 경쟁과 성공을 돕는 것’임을 이해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그러면서 “동맹국 경제가 어떤 경쟁국(중국)에도 종속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며 경제 안보를 최우선 순위에 뒀다.
바이든 행정부 백악관 NSC(국가안전보장회의)와 과학기술정책실(OSTP) 수석고문 출신으로 대중국 기술 봉쇄 전략을 직접 설계했던 린지 고먼 GMF(저먼마셜펀드) 선임연구원. |
백악관 과학기술정책실(OSTP) 수석고문을 지낸 린지 고먼 GMF(저먼마셜펀드) 선임연구원은 “이번 NSS는 미국의 기술 리더십을 경제적·군사적 강점에 필수적인 것으로 보고 있다”며 “구체적으로 미국의 기술이 방위 구매와 함께 외교적 영향력을 위한 명시적 도구로 상정했고, 중국과의 대국 경쟁 틀을 거의 버리고 대신 아시아에서의 궁극적 이해관계는 경제에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앞으로 해외 주재 미국 외교관들의 주 임무는 동맹국에 미국 테크기업들을 홍보하는 ‘세일즈맨’ 역할이 될 것”이라고 했다.
그는 또 “한국은 지역에서의 안보 균형을 지원하는 데 공동으로 도움이 될 수 있는 강력한 경제로 명시적으로 언급되어 있다”며 “이는 전략적으로 AI(인공지능), 양자 컴퓨팅, 생명공학, 자율 시스템, 차세대 방위에 필수적인 첨단 분야들에서 미국과의 공동 기술 협력 및 상용화 프로젝트로 나타날 수도 있다”고 했다. 고먼 선임연구원은 “이번 NSS는 민주주의라는 가치보다는, 공유된 경제적 이해와 증가된 (안보) 부담 분담에 기반한 기술 동맹을 시사한다”며 “한국 입장에서는 미국과 지역 차원 모두에서 경제적·기술적 관계를 성장시킬 수 있는 가능성이 포함될 것”이라고 했다.
그래픽=백형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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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박국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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