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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10 (수)

    지메르만 "미국 공연 보이콧한 적 없다"… '완벽주의 거장'에 대해 잘 몰랐던 다섯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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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폴란드 피아니스트 크리스티안 지메르만
    6월 내한 중 한국 언론과 첫 대면 인터뷰
    무대 밖 신념과 선택, 오해 등 소상히 밝혀
    내년 1월 롯데콘서트홀서 내한 리사이틀


    한국일보

    크리스티안 지메르만. ⓒMark All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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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0년대에는 다이빙 자격증을 갖고 지중해 바위 위치를 기록하는 수중 지도 제작에 참여했고, 젊은 시절엔 앙코르를 22곡까지 한 적도 있다. 마르타 아르헤리치를 비롯해 피아니스트 친구만 50명에 이른다.

    인터뷰보다 '무결점 무대'에 집중해 온 폴란드 피아노 거장 크리스티안 지메르만(68)의 인간적 면모는 좀처럼 알려지지 않았다. 그런 그가 지난 6월 뉴욕 필하모닉 협연으로 한국을 찾으며 처음으로 한국 언론과의 대면 인터뷰를 직접 요청했다. 완벽주의적 성향 탓에 보도 여부는 한동안 신중히 검토됐고 6월 28일 서울 강남의 한 호텔에서 나눈 대화를 내년 1월(13·15·18일) 롯데콘서트홀 리사이틀을 앞두고서야 전할 수 있게 됐다.

    그의 선택과 신념, 그리고 그를 둘러싼 오래된 오해까지 한국 청중이 잘 몰랐던 지메르만의 다섯 가지 이야기다.

    ①미국 공연 보이콧, 말한 적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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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아니스트 크리스티안 지메르만이 지난 6월 27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뉴욕 필하모닉과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4번을 연주하고 있다. 마스트미디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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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6월 지메르만은 뉴욕 필과 29년 만에 협연했다. 왜 미국 악단과의 무대가 뜸했는지 묻자 그는 "초청받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뜻밖의 답변을 내놨다. 지메르만에게는 2009년 4월 미국 로스앤젤레스(LA) 월트 디즈니 콘서트홀에서 미국의 군사 정책을 비판하며 미국에서 더 이상 연주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는 일화가 그림자처럼 따라다닌다. 그는 이와 관련한 LA타임스의 최초 보도가 "명백한 오보"라고 주장했다. 내막은 이렇다.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 고국 폴란드에 미사일 방어(MD) 체계를 배치하려던 계획에 그는 공개적으로 반대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당시 매니지먼트 교체를 앞두고 있었기에 "당분간은 오늘이 마지막 공연이 될 것"이라고 말했을 뿐 다시는 미국에서 공연하지 않겠다는 말은 한 적이 없다. 그는 "1991년에 미국에 처음 집을 살 만큼 미국은 유럽, 일본과 더불어 내게 중요한 장소였다"며 "언론의 잘못된 보도로 미국에서의 내 평판과 삶은 완전히 무너졌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②앙코르, 처음부터 피한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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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리스티안 지메르만. ⓒBartek Barczy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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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메르만은 종종 앙코르를 생략한다. 6월 뉴욕 필 내한 공연에서도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4번을 연주한 뒤 앙코르 없이 무대를 떠났다. "인터미션에 휴식을 취하고 또 다른 교향곡을 연주해야 하는 악단 단원들을 자리에 앉혀 두는 건 배려가 아닌 것 같다"는 설명이다. 처음부터 앙코르를 멀리한 것은 아니다. 1975년 쇼팽 콩쿠르 우승 직후엔 연주회마다 5~7곡을 연주했고, 고향에선 22곡의 앙코르를 연주한 일도 있다. 어느 순간 그는 앙코르가 '그저 그런 공연의 리뷰를 더 좋게 받기 위한 얄팍한 술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는 "시마노프스키를 들려준 후 라흐마니노프와 베토벤을 연주한다면 충분한 메인 요리를 즐기고 디저트까지 끝낸 후 연어나 캐비어부터 코스를 다시 시작하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③막대 물고 연주한 '월광 소나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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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아니스트 크리스티안 지메르만과 지휘자 에사페카 살로넨, 뉴욕 필하모닉이 6월 27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1부 연주를 마친 뒤 무대인사를 하고 있다. 마스트미디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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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메르만은 어린 시절 피아노 곁에서 살았다. 피아노 주위에 매트리스를 둘러 텐트처럼 만들고 그 아래에서 잠들기도 했다. 피아노는 파트너이기에 그는 해외 공연에 피아노와 전속 조율사를 대동한다. 다만 항공 운송 중 파손 사례가 늘면서 요즘은 건반과 액션(건반을 누르면 해머가 현을 때리게 하는 장치)만 갖고 다니며 현지 피아노에 조립해 연주한다. "어떤 곡이든 하나도 빠짐없이 철저히 연구하고 조사하는 연주자"(지휘자 에사 페카 살로넨)인 지메르만은 베토벤의 청력 상실을 체험해 보는 실험도 해 봤다. "베토벤이 어떤 피아노를 썼는지 이해하기 위해 귀마개를 하고 오토바이 헬멧을 쓴 채 (소리를 진동으로 느끼려고) 막대를 이 사이에 끼우고 사운드 보드에 연결해 연주해 봤어요. 아내가 친구들에게 '남편이 미쳤어, 새벽 4시에 막대를 물고 '월광 소나타'를 연주하고 있어'라고 이야기했다더군요."

    ④피아니스트 친구만 50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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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리스티안 지메르만. ⓒBartek Barczy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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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메르만은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했을 때 "혼자라는 느낌이 들었다". 나이가 들면 '걱정할 필요 없다'고 말해 주고 함께 연주할 수 있는, 도움 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50년간 우정을 쌓아 온 아르헤리치를 비롯해 전 세계 50명 정도의 피아니스트들과 우정을 나눌 수 있어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지난여름엔 캐나다 피아니스트 브루스 리우가 일본에서 처음 다이빙을 할 거라며 조언을 구했다. 지메르만은 1980년대만 해도 자격증을 지닌 다이버였다. 조성진, 임윤찬, 박재홍 등 한국의 젊은 피아니스트들에 대해서도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한국에 살지 않아 일부 연주만 들어 자세히 말하기는 어렵다"면서도 "나보다도 연주를 잘하는 것 같아 나도 최선을 다하고 있다"며 웃으며 말했다.

    ⑤연주란 관객과 나누는 사랑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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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리스티안 지메르만. ⓒBartek Barczy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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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메르만은 공연 중 사진과 녹음을 금지한다. 상업적 도용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과거 독일 평론가 요하임 카이저(1928~2017)가 아르헤리치의 베토벤 소나타 5번을 해적판으로 듣고 혹평한 사건, 자신의 에든버러 페스티벌 연주가 해적판으로 판매된 경험 등을 떠올렸다. 본인만 듣는다면 괜찮지만 유튜브에 게시해 수익을 올리면 연주자의 경력과 음악 시장까지 해친다는 생각이다. 개성이 담긴 연주를 만들어내는 과정을 지메르만은 "발명한다"고 표현했다. 그리고 그 발명의 마지막 조각은 언제나 청중이다.

    "거울 앞에서 '사랑해'라고 말하는 걸 연습해 본들 무슨 의미인가요. 대상이 없는 상태에서 연습하는 것과 진짜 영혼의 단짝을 만나는 것은 다르죠."

    지메르만은 내년 1월 리사이틀에서 '전주곡(Prelude)' 24곡을 서로 다른 조성으로 선별해 연주하며, 프로그램은 당일 현장에서 공개한다. 청중과 음악적 사고의 과정을 직접 공유하고자 하는 의지를 담았다고 한다.

    김소연 기자 jollylif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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