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란몰이 지겹다’는 尹·국힘
‘역사의 비극’ 반복돼선 안 돼
12·3 불법 비상계엄 이튿날인 지난해 12월 4일, 엑스(X)를 통해 확산했던 패러디 게시물. 불법 계엄을 선포했던 윤석열 당시 대통령의 모습을 1979년 전두환의 12·12 군사 반란을 그린 영화 '서울의 봄' 포스터와 합성한 풍자물이다. X 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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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전 그때 눈치챘어야 했다. 윤석열은 전두환과 비슷한 부류의 인간임을. 2021년 10월 19일 윤석열은 국민의힘 부산 해운대구갑 당원협의회 방문 때 이렇게 말했다. “전두환 대통령이, 군사 쿠데타와 5·18만 빼면, 잘못한 부분이 있지만, 그야말로 정치는 잘했다고 얘기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땐 헛웃음이 나왔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섬뜩하다. 실언이 아니었다. 윤석열은 정말로 전두환을 ‘본받았다’. 12·3 불법 계엄으로 나라가 뒤집힌 지 1년 하고도 일주일, 그리고 ‘전두환 군홧발 시대’ 개막을 알린 12·12 군사반란 46년을 이틀 앞두고 드는 생각이다. 동시에 떠오르는 단어 하나를 고르라면 ‘기억’이다.
“기억이야말로 응징의 시작임을 강조하고 싶었다.” 영화 ‘살인의 추억’(2003) 제목에 대한 봉준호 감독의 설명이다. 끔찍한 ‘살인’과 아름다운 기억을 가리키는 ‘추억’, 이질적 단어 두 개의 조합에서 오는 이 불편함. 잊고 싶을 만큼 괴로운 과거일수록, 더 철저히 기억해야만 제대로 된 청산과 회복이 가능하다는 진리를 역설적으로 표현한 은유인 셈이다.
윤석열의 기억법은 다른 듯하다. 검찰총장 시절 그는 “내가 육사 나왔으면 쿠데타 한다”고 말했다. 12·3 계엄 직후엔 “막상 해보면 별거 아냐, 아무것도 아냐”라는 식의 발언도 했다. 전두환과 12·12에 대한 기억부터 민주 시민들과는 천양지차였다. 이뿐인가. “‘김건희’가 뭡니까, 여사를 붙여야지”(10월 31일 법정 발언), “비상계엄은 (중략) 헌법수호책무의 결연한 이행”(3일 입장문) 등은 여전히 그가 ‘내란의 밤’에 갇혀 있다는 방증이다. 술 대신 ‘윤 어게인’에 취해 있어서인가.
내란중요임무 종사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됐던 추경호(가운데) 전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3일 법원의 영장 기각으로 경기 의왕시 서울구치소를 나서며 국민의힘 동료 의원들로부터 축하를 받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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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도 마찬가지다. 3일 새벽 추경호 전 국민의힘 원내대표의 구속영장 기각 당시 서울구치소 앞 풍경은 상징적이다. 구속을 면한 그를 격하게 환영했던 국민의힘 의원들 발언을 옮긴다. “내란몰이를 포기하라는 국민의 명령”(장동혁 대표), “더 이상의 내란몰이를 중단하라”(송언석 원내대표), “(더불어)민주당은 내란몰이를 통한 제1야당 말살 시도를 중단하라”(정희용 사무총장), “거짓으로 쌓아 올린 내란몰이 공포정치의 모래성”(나경원 의원).
내란 극복은커녕, ‘윤석열 체포 저지’ ‘반탄 집회’ 등 내란범 옹호에 열중했던 이들이 ‘내란몰이’ 운운하다니, 그야말로 적반하장이다. 전두환 시대 집권당(민주정의당)에 뿌리를 둔 정당, 아니 정치집단다운 행태다. 정상적인 정당이라면 추경호를 향해 진즉 ‘계엄 당일 왜 의총 장소를 여러 번 바꾸며 계엄 해제 표결 참여를 방해했느냐’고 따져야 마땅했다.
그래서 나는 그들이 ‘내란몰이’로 일컫는 움직임이 지겹지 않다. 오히려 지겨운 건 지금도 부하 탓만 하며 책임을 떠넘기는 윤석열의 비겁함, 아직도 ‘윤석열 절연’을 외치지 않는 국민의힘 주류의 뻔뻔함, ‘내란 청산’을 외치는 시민들의 법원·검찰 개혁 요구에 교묘한 법 논리를 들이대며 기득권 수호에 골몰하는 사법부와 검찰의 모습 등이다. ‘내란몰이 지겹다’는 무반성이 지겹다.
“역사는 반복된다. 한 번은 비극으로, 한 번은 소극(笑劇·웃음거리극)으로”라는 말이 있다. 역사에서 교훈을 배우지 못하면, 불행한 사태는 형태만 바뀔 뿐 되풀이된다는 의미다. 봉준호의 표현을 빌리자면 ‘내란의 추억’이 필요한 이유다.
김정우 이슈365부장 woo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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