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과학(Regulatory Science)’은 순수과학이나 응용과학에 비해 다소 생소하게 느껴질 수 있다. 실제로 우리 학회도 창립 당시에는 ‘한국의약품법규학회’라는 이름을 사용했으며, 규제과학이라는 개념을 보다 분명히 반영하기 위해 현재의 이름으로 변경한 것은 2021년이다. 그만큼 규제과학은 비교적 최근에 부상한 신진 학문임을 알 수 있다.
이의경 한국에프디시규제과학회 회장 |
그러나 규제과학이 추구하는 가치는 이미 오래전부터 축적되어 왔다. 1961년 독일 제약사 그뤠넨탈이 판매한 입덧약 ‘탈리도마이드’로 인해 기형아 출생이 세계적으로 속출한 사건은 의약품 안전관리의 중요성을 일깨운 대표적 사례다. 이는 규제기관이 과학적인 근거에 기반을 둔 규제, 즉 규제과학에 따라 정확하고 엄격하게 안전관리를 해야만 인류의 건강과 보건 환경을 지킬 수 있다는 교훈을 남겼다.
KFDC규제과학회 초대 회장인 심창구 서울대 명예교수는 “규제과학은 단순히 규제 절차가 아니라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는 잣대를 세우는 평가과학”이라고 설명한다. 식약처가 규제하는 제품은 과학적 기준 아래 안전성, 효과성, 품질 등을 평가받아 기준을 충족한 이후에야 시장에 나올 수 있다. 식품, 의약품, 의료기기, 화장품 등은 우리의 삶과 건강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에, 제품화·산업화 과정에 필요한 허가의 문턱이 결코 낮아져서는 안 되며 철저하게 과학적 근거에 기반해 규제되어야 한다.
문제는 기술 발전 속도가 빨라지면서, 규제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면 기술 혜택을 누릴 기회를 놓칠 뿐만 아니라 바이오헬스 산업의 성장 동력도 잃을 수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규제과학의 중요성이 부각되며 미국, 유럽, 일본 등 규제 선진국은 2000년대 중반부터 규제과학을 국가 전략으로 삼아 왔다. 우리나라 역시 2023년 기존 ‘식의약안전기술진흥법’을 전면 개정한 ‘식의약규제과학혁신법’에 식의약품 안전관리를 규제과학에 기반을 두어 합리적으로 수행함으로써 국민의 안전하고 건강한 삶에 기여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규제과학은 규제기관뿐 아니라 학계, 산업계, 연구계가 함께 협력하며 변화하는 기술 트렌드에 발 빠르게 대응해야 하는 융합 분야다. KFDC규제과학회는 지난 20년간 연구개발(R&D)은 물론 산업계와 연계한 전문가 양성 교육, 학술대회 개최 등으로 다양한 이해 관계자들과 소통·협력해 왔다. 나아가 이제는 전문성을 바탕으로 규제과학 허브 역할을 수행할 전문기관을 적극적으로 육성해야 할 시점이라는 생각이 든다.
2022년 식약처 승인 아래 설립된 재단법인 한국규제과학센터는 지난 3년간 규제과학 신진연구자 육성, 규제업무·허가심사자 등 전문가 교육, 국가 R&D 대상 규제 정합성 검토 등 규제과학 혁신을 위한 업무를 성실하게 수행하며 우리 학회와 함께 규제과학 발전을 위해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이렇게 역량을 쌓아온 기관을 더욱 잘 육성하여 우리 규제과학 역량을 높인다면, K바이오헬스의 미래가 더욱 밝아질 것이라고 기대한다.
이의경 한국에프디시규제과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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